노동·연금·의료 시스템 흔들 860만이 온다 [60년대생의 은퇴, 축복인가 재앙인가①]

2024. 9. 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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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만 은퇴 대란’ 1960년대생들이 본격적인 은퇴를 시작했다. 예측 인구만 무려 860만명. 이미 시장에는 대규모 은퇴 쓰나미로 5년 이내에 사회적 재앙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란 예측이 만연하다.

파고다 공원에 하릴없이 앉아 시간을 보내는 노년, 준비되지 않은 노후에 사회적 문제로 자리할 노년…. 그러나 이러한 미래는 ‘60년대생’의 반쪽짜리 자화상일지 모른다.

한국 사회의 경제, 정치, 사회적 격변 속에서 생존하며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대가 된 60년대생. 또 다른 반쪽짜리의 자화상은 아무도 가지 않은 다른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다시, 한국 사회에 60년대생이 오고 있다.


#.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한 중견기업에서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정용현(가명) 씨. 그는 흔히 ‘586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부머 세대(1954~74년생) 중 한 사람이다. 1966년생인 정 씨는 이제 은퇴까지 2년을 남겨두고 있다. 그는 3년 전 30년간 근무했던 직장을 떠나 인생의 2막을 시작한 형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에게도 곧 다가올 그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그도 은퇴 준비를 시작했다.

올해 1964년생을 시작으로 향후 11년에 걸쳐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된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세대의 퇴장이다. 베이비부머 전체를 1955~74년으로 보면 ‘60년대생’은 그 정점에 위치한다. 숫자도 860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인구 전체의 18%, 약 5분의 1이다.

이들은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라 만 55세 이상 ‘고령자’로 분류되며 법적 정년(만 60세)을 넘겼거나 곧 맞이하게 된다. 문제는 이들 인구가 한국 사회에서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만큼 60년대생의 은퇴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상당하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차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의 은퇴연령 진입이 완료되면서 이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가 2015~2023년 기간 중 연간 경제성장률을 0.33%포인트 하락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부터는 1차보다 더 규모가 큰 2차 베이비부머(1964~74년생)들이 노동시장을 이탈하게 된다. 약 11년에 걸쳐 이뤄질 2차 베이비부머의 노동시장 이탈에 한국 사회는 성장잠재력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쉬었음’ 인구 나홀로 감소한 50대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킬 만큼 베이비붐 세대가 쏟아져 나오면서 생기는 사회적 문제들은 간단치 않다.

첫째는 노동시장의 변화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고령층 경제활동참가율은 60.6%로 전년 동월 대비 0.4%포인트 상승했다. 55~64세는 72.6%, 65~79세는 47.2%로 각각 0.2%포인트, 1.1%포인트 늘었다. 이들의 직업별 비중을 보면 단순노무종사자(23.6%), 서비스종사자(13.8%)에서 높고 관리자(2.1%), 사무종사자(7.4%)에서는 낮게 나타났다.

노동시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세대 그래프는 ‘피라미드형’이다. 상단으로 갈수록 고령 세대의 비중은 줄고 하단엔 청년층(2030세대)이 많은 구조다. 한국의 고용지표는 항아리형에 가깝다. 지난 7월엔 60세 이상에서 취업자 수가 27만8000명, 50대에서 2만3000명 각각 증가했으나 20대에서는 12만7000명, 40대에서 9만1000명이 각각 감소했다. 5060세대의 취업자는 늘고 있는 반면 2040세대 젊은 취업자 수는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취업 준비나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일할 의지나 필요가 없는 상태로 실업자와 구분된다. 보통은 고령화 시대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인구가 늘어날 때 증가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이탈이 본격화되는 지금 고령층의 ‘쉬었음’ 인구는 늘어나야 마땅하다. 그런데 한국은 50대를 제외한 전 세대에서 ‘쉬었음’ 인구가 두 자릿수로 증가한 반면, 50대는 8.5% 증가에 그쳤다. 즉 50대가 은퇴 준비 부족 또는 부양의 책임 등을 이유로 상대적으로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동거기간 20년 이상의 황혼이혼도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6월의 혼인지속기간별 이혼 건수를 보면 모든 동거기간에서 감소한 반면에 황혼이혼만이 크게 늘었다. 동거기간 20년 이상 이혼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한 8686건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동거기간 4년 이하의 이혼건수는 13.1% 감소했으며 5~9년(2.8%), 10~14년(4.0%), 15~19년(2.7%) 모두 줄었다.

연령별 이혼율은 여자는 60세, 남자는 40대를 제외하고 모든 연령대에서 감소했다. 이는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와 베이붐세대의 은퇴를 겪은 일본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전체 이혼건수가 감소세인 것과 달리 이혼 부부 넷 중 한 쌍이 동거 기간 20년 이상인 황혼이혼으로 집계됐다. 황혼이혼 비율은 전체의 23.5%다. 이는 1947년 통계 집계 이후로 최대치라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비영리법인 일본 가족문제상담연맹의 오카노 아쓰코 이사장은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 자녀가 독립하고 퇴직한 후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며 “성격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새 인생을 찾기 위해 부부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사례가 눈에 띈다”고 밝혔다.

50대 이후 임금피크제와 비슷한 일본의 ‘역직 정년’으로 남편의 급여가 감소할 경우에도 노후 준비 문제나 자녀 양육비를 이유로 황혼이혼이 급증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오카노 이사장은 퇴직금과 연금 등 재산 분여를 생각할 경우 “아내는 통상 남편의 정년 2~3년 전부터 (이혼 준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문제의 모든 시발점은 노후 대비다. 1988년 복지국가를 표방하며 전격 도입된 국민연금은 60년대생들이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게 될 ‘복지 1세대’로 통했지만, 장기간 꾸준히 납부하지 못했다면 이마저도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장기간 꾸준히 납부하지 못한 근로자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에 실제 연금 수령 시 소득 대체율은 기대보다 훨씬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중고령자들이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월평균 생활비는 부부 기준으로 약 268만원, 개인 기준으로는 165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은퇴 후 근로소득이 사라지면 이를 충당할 다른 소득원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법적으로는 정년이 만 60세로 정해져 있지만 현실적으로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5년을 버텨야 한다.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 즉 은퇴 후 소득 공백 기간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기간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60년대생은 점점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조기노령연금의 신규 수급자 수는 2023년 11만2031명으로 전년 대비 2배가량 급증했다. 조기노령연금은 수급 연령보다 3년 일찍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1963년생의 신청이 폭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60년대생의 부익부 빈익빈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2018년 기준 43.4%로 OECD 국가 평균 노인 빈곤율인 13.1%에 비해 크게 앞서고 세대 간 갈등은 점점 심해지는 추세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노동계에서는 연금 수급 연령과 정년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년 연장 요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났을 때부터 경쟁에 놓였던 60년대생은 죽음 이후의 시간도 경쟁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베이비붐 세대(1946~64년생)의 사망이 집중돼 일정 기간 사망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메가데스’ 현상을 겪었다. 이미 한국의 화장률은 90% 수준을 넘어섰다. 올해 1~4월 화장률을 보면 인천이 96.7%로 1위다. 최저인 제주마저 80%를 훌쩍 넘긴다. 고령화의 진전에 따라 연간 사망자 수는 2020년 처음으로 30만 명을 넘어섰으며 2023년에도 35만2000명을 기록했다. 통계청 추계로는 연간 사망자가 계속 늘어 2029년 4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이미 90% 넘은 평균 화장률이 유지되어도 2028년에는 최소 4320건의 화장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60년대생 사이에선 웃지 못할 얘기도 나온다. 날 때부터 경쟁사회에 던져진 60년대생이 갈 때에도 경쟁사회에 처한다는 하소연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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