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억원 경품에 베끼기 상품 ‘혼탁한 ETF시장’

이동훈 기자 2024. 10.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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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자산운용사는 신규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을 앞두고 다수 증권사를 통해 1억 원 상당의 경품을 내걸고 거래량 이벤트를 실시했다.

수백만 원대의 골프채와 백화점상품권 등 화려한 경품을 내건 이벤트가 ETF 거래량을 사실상 좌우하며 가요계 '음반 사재기'처럼 시장 질서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증권사의 ETF 상품 관련 거래량 이벤트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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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과열… 유튜버에 수억 주기도
ETF 경품 이벤트 4년새 21배 급증
“음반 사재기처럼 거래량 부풀리기
마케팅 비용 결국 소비자에 전가돼”
최근 A자산운용사는 신규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을 앞두고 다수 증권사를 통해 1억 원 상당의 경품을 내걸고 거래량 이벤트를 실시했다. 이벤트 효과는 적지 않아 거래 시작 1시간 만에 100억 원 이상의 거래가 발생했다. ETF 시장 관계자는 “운용사 간 경쟁이 치열한 상품일수록 경품 규모도 커지고, 거래량도 늘어난다”고 귀띔했다.

수백만 원대의 골프채와 백화점상품권 등 화려한 경품을 내건 이벤트가 ETF 거래량을 사실상 좌우하며 가요계 ‘음반 사재기’처럼 시장 질서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만들어진 거래량 통계 숫자가 도리어 소비자의 선택을 방해한다는 우려도 크다.

● ETF 거래량 이벤트, 4년 만에 21배 증가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증권사의 ETF 상품 관련 거래량 이벤트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는 ETF 거래량을 늘리기 위해 일정 기간 ETF 거래액이 많은 고객 중 추첨을 통해 적게는 수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에 이르는 경품을 제공하고 있다.

2019년 11건이었던 거래량 이벤트는 지난해 238건으로 늘었다. 경품 금액도 6850만 원에서 14억5524만 원까지 불어났다. 올해 상반기(1∼6월)까지 진행된 이벤트 건수는 119건, 경품 금액은 7억8604만 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건수는 23%, 금액은 43% 이상 증가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신규 ETF 상품 출시가 늘어나면서, 거래량을 늘려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거래량 경품 이벤트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 신규 ETF 상장 건수는 48건에 불과했으나 2022년 139건으로 처음 100건을 넘겼다. 지난해에 160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상반기까지 116건의 ETF 상품이 상장했다.

전문가들은 ETF 거래량 이벤트가 자칫 소비자의 잘못된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 거래량이 많으면 시장에서 인기가 많고, 환금성이 좋다고 여겨진다. 투자자가 거래량 숫자만 믿고, 이벤트를 통해 일시적으로 거래량이 늘어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투자했다가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거래량 이벤트의 경품만을 노린 ‘체리피커’(혜택만 챙기는 소비자)가 활개를 치면서 왜곡 현상이 더 커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량 이벤트를 시작할 때 30분에서 1시간가량 거래량이 급증한다”며 “일부 ‘꾼’들이 다수의 계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거래량을 높이고, 경품을 받아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체리피커가 몰리면서 증권사의 거래량 이벤트가 중단되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달 한 증권사에서 실시한 해외 주식 거래량 이벤트에 이상 거래가 발생하면서 일부 미국 ETF 종목에 거래량이 급증하자 온라인 매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 “베끼기 상품에 국내 ETF 시장 차별성 잃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ETF 시장에서 ‘베끼기 상품’이 급증하면서 운용사들이 상품 차별화보다는 광고나 마케팅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규 상품 개발보다 마케팅이나 광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운용업계 내부에서는 “금융회사가 아니라 광고회사를 다니는 느낌”이라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운용사 간 ETF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기 유튜버나 대형 블로거 등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인기 유튜버 등을 대상으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광고비를 집행하기도 한다”며 “마케팅이나 광고 비용은 결국 고객들에게 전가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들의 다양한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차별화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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