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 리뷰] <보통의 가족> 네 인물이 그리는 인간의 민낯

영화 <보통의 가족>

손이 저릿해지는 줄도 모른 채 꽉 쥐고 있을 수밖에 없던.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극장의 불이 켜진 후에야 비로소 모두가 얕은 숨을 내뱉던. 영화 <보통의 가족>이다. 개봉하기 전부터 유수의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받으며 기대작으로 떠오른 <보통의 가족>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2023년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 상영으로 전 세계 최초 공개된 이후 제26회 타이베이영화제, 제35회 팜스프링 국제영화제 등에 이름을 올리며 완성도 높은 한국 영화가 탄생했다는 기대감을 심어준 작품이다. '웰 메이드'라는 타이틀은 자연히 만듦새에 대한 눈높이를 올려놓기 충분했지만, 미리 만나 본 <보통의 가족>은 그 부담감을 뛰어넘고 잘 짜여진 이야기만이 줄 수 있는 기분 좋은 끝맛을 안겼다. 올해의 한국 영화로 손꼽아도 부족함이 없을 <보통의 가족>은 어떤 영화일까.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의 가족
감독
출연
평점
3.6

당신의 아이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영화 <보통의 가족>은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Herman Koch)가 2009년 발표한 소설 <더 디너>(The Dinner)를 원작으로 한다. 전 세계 누적 1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인 만큼 이미 네덜란드, 이탈리아, 미국에서 영화화됐다. 국적을 불문하고 감독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은 흥미로운 이야기다. <더 디너>가 그렇듯, <보통의 가족> 역시 남부러울 것 없는 '보통의' 가족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한다. 형제인 두 사람. 소아외과 전문의 재규(장동건)와 스타 변호사 재완(설경구)의 집을 번갈아 비추며 어떤 면에서는 특별한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보통의' 하루를 보내는 두 가정을 담아낸다. 두 가정에, 아니 서사에 커다란 균열이 찾아온 건 사촌지간인 두 집 아이들의 끔찍한 범죄 현장이 담긴 CCTV가 공개된 이후부터다. 부모는 믿을 수 없었지만, 믿기 싫었지만 CCTV에는 누워있는 노숙자를 무자비한 발길질로 때려대는 재규의 아들, 재완의 딸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연고가 없는 노숙자는 병원에서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인자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경찰은 범죄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 순간부터 두 부모는 자신도 몰랐던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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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이
<보통의 가족>을 선택한 이유

<보통의 가족>은 허진호 감독이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 이후 5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기도 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부터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5) <행복>(2007) <호우시절>(2009) <위험한 관계>(2012)까지. 한국 멜로 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며 꾸준히 '멜로길'만 걷던 허 감독은 <보통의 가족>으로 스릴러에 처음 도전했다. 그가 <보통의 가족>을 택한 건, 장르적 도전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은 아니었다. 허 감독은 영화가 그리는 윤리적 문제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개인이 가진 도덕적 기준의 해이함, 좋은 부모에 대한 정의와 가치관, 인간의 양면성에 관한 아이러니함을 보여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지점들에 대해 묻는다.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에 있어서는 허진호 감독의 노련미가 빛난다. 카메라를 통해 캐릭터의 감정선 변화를 포착하는데 능한 허 감독은 중요한 순간마다 제 재능을 꺼내 들며 인물이 마주한 도덕적인 딜레마를 잘 담아냈다. 특히 원작 제목(<더 디너>)에서 알 수 있듯, 영화 속에서 재규와 재완 가족이 갖는 저녁 식사 장면은 영화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하는데.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인물을 비추는 허 감독의 연출 감각을 눈여겨볼 만하다. 장동건, 설경구, 김희애, 수현. 네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각 배우의 얼굴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클로즈업해 비추는 연출은 캐릭터의 심리를 포착할 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알 수 없는 불쾌감을 안기며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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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과 김희애, 설경구와 수현이
그리는 인간의 민낯

시각적인 효과나 화려한 기교 없이 이야기의 짜임새가 돋보이는 영화인 만큼 <보통의 가족>은 배우들의 연기 난이도가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베테랑 배우들이 필요했던 이유다. 장동건, 김희애, 설경구, 수현. 탄탄한 경력과 실력을 가진 네 배우의 앙상블은 <보통의 가족>에서 가장 확실한 미장센 역할을 한다. 장동건과 김희애, 수현과 설경구가 각각 부부로 출연하며 자식의 범죄를 어떻게 처리하고 해결할지를 논의하는데. 이 네 사람은 영화가 필요로 하는 감정과 갈등을 정확히 표현해 내며 관객 역시 그들이 마주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특히 부부로 호흡을 맞춘 김희애와 장동건의 연기 내공이 돋보인다. 자식을 위해서는 못 할 것이 없는 엄마를 연기한 김희애는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간의 양면적인 얼굴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보통의 가족>의 중심을 잡았다. 감정 과잉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장면에서도 김희애 특유의 완급 조절이 빛난다. 오랜만에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장동건은 변화하는 캐릭터의 얼굴을 영리하게 짚어냈다. 도덕적으로 선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 자식의 문제를 맞닥뜨리며 겪게 되는 혼돈을 감정적으로 잘 표현했다. 특히나 영화의 후반부, 아들이 폭행한 노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재규(장동건)가 숟가락 가득 밥을 먹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이 장면에서 장동건의 모습은 몇몇 관객에겐 다소 불쾌하고 역겨운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 인간의 본능을 잘 표현하며 영화의 입체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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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의 단짝
조성우 음악 감독

<보통의 가족>은 음악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적재적소, 완벽한 타이밍에 재생되기 시작하는 음악은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가 지녀야 하는 긴장감을 더욱 크게 증폭시킨다. 오랜만에 플레이리스트를 저장하고 싶게 만드는 한국 영화다. 엔딩크레딧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보통의 가족>의 음악은 베테랑 작곡가 조성우 작곡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사건의 방향이 틀어질 때마다 변화하는 음악들은 대사가 없는 장면에선 인물의 감정을 대신 설명하며 영화 속에서 음악 그 이상의 기능을 한다. 허진호 감독과 조성우 음악 감독은 영화계 오랜 단짝으로도 알려져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봄날은 간다><외출> 등 영화 <호우시절>을 제외하곤 허진호 감독의 모든 작품을 조성우 감독이 함께했다. 음악으로 영화를 기억하게 만드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조성우 감독의 깊이는 <보통의 가족>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화를 보다 보면 특별히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음악과 함께 서사를 좇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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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어떻게 할까?

그래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결국 허진호 감독이 <보통의 가족>을 통해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 물음은 간단하다.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스스로를 대입하게 만들어 과연 당신은 떳떳할 수 있냐고, 당신에게도 추악한 가면이 있지는 않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의 가족>이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안달 난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무조건적인 부모의 자식 사랑, 인간의 타락적 본성과 같은 무거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메시지에 집중하기보다는 사건과 인물 그 자체를 묘사하는 일에 좀 더 힘을 쓰며 영화적 흥미를 잃지 않는다. 서스펜스 장르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부분들이 충분히 채워져있다는 의미와도 같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가미된 블랙코미디 요소는 관객의 근육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특히 재완(설경구)의 아내가 사별한 후 가족이 된 젊은 아내 지수를 연기하는 배우 수현과 김희애의 관계성은 극의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는 건 물론 이야기의 스펙트럼을 넓히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나우무비 유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