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닝계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식물을 사랑하는 프로개의 이야기.

프로개
· <모두의 pH>, <드루이드가 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저자
· 식물 블로그 ‘우리 강산 프로개 프로개’ 운영
· 가드너 커뮤니티 ‘모두가 초록에 진심’ 운영
식재료로 산 페페론치노를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는 그 페페론치노의 씨앗을 직접 골라 키우기까지 했다. ‘초록’에 미친 자, 식물 블로거 프로개의 이야기다.
프로개는 취미로 식물을 키우는 가드너다. 단순히 식물을 잘 키운다는 개념을 넘어, 건조된 식재료까지 발아시키는 모습을 블로그에 공유하면서 현재 그의 블로그는 구독자 수만 15만 명에 육박한다. 그에 따르면 지금까지 600여 종의 식물을 키워봤으며, 화분이 많을 땐 40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식물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열정과 경험을 토대로 가드닝 가이드북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폐교를 통째로 임대해 자신만의 가드닝 공간으로 가꾸기도 했다. 어쩌면 무언가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이 정도의 진심은 담아야 하지 않을까. 그가 이토록 식물에 빠져들게 된 이야기에 대해 물었다.
‘프로개’라는 이름의 의미가 궁금하다
한때 짝사랑한 상대의 반려견을 질투했다. ‘자신의 반려견 같은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말한 탓이다. 설명을 요구하니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귀 기울여 주는 존재”라고 덧붙였다. 그 덕에 목표가 생겼다. “나도 당신에게 그런 존재가 되겠다”라고 말하며, 반려견보다 뭔가 더 있어 보이고자 닉네임을 ‘프로개’로 정했다. 그때의 포부 덕분인지, 지금은 한집에서 반려견과 반려묘를 함께 키우며 살고 있다.
‘드루이드’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데
‘드루이드’는 게임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식물을 소환하거나 급속 생장시키는 등의 자연 친화적인 마법을 부린다. 내 블로그 글이 커뮤니티로 전파됐을 때, 누군가 ‘드루이드세요?’라는 댓글을 달았는데, 그 댓글이 많은 네티즌의 공감을 얻었다. 그 뒤로 내 글마다 비슷한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별명 비슷하게 쓰이게 됐다. 이제 가드너 사이에서는 ‘드루이드’가 존중의 의미로 사용되는 모양새다. 나 역시 식물을 키우는 친구들을 그렇게 부르곤 한다.



스스로 ‘식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구나’ 깨닫는 순간이 있나?
어떤 공간의 창가에 햇빛이 가득 머물러 있는 걸 보면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바닥에만 내리쬐는 햇빛은 일종의 낭비다. 저 자리에 놓인 식물이 얼마나 푸르게 자랄지 상상하곤 한다. 만약 본인 집의 창가에 햇빛이 충분히 든다면 꼭 식물을 키워보길 바란다.
식물 블로거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내가 망고스틴을 좋아해 마트에서 보일 때마다 사 먹었다. 망고스틴을 먹은 후 호기심에 씨앗을 심어봤는데, 씨앗이 발아해 자라는 모습이 유독 예뻐 보였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블로그에 식물 키우는 과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본격적인 식물 블로거의 길을 걷게 된 것 같다. 벌써 8년 전 일이다. 씨앗이 있으면 심고 보는 습관은 여전하다.
보통 ‘가드닝’은 혼자 하는 취미라고 생각하기 쉽다. 블로그를 통해 식물을 키우는 과정을 공유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이유가 있나?
똑같은 답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귀차니즘’에서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블로그가 유명해지자 식물이 자라지 않는 이유를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내 경험을 토대로 아는 만큼 답변했다. 그런데 질문을 받다 보니 계속해서 비슷한 질문과 해결법이 이어졌다. 처음엔 ‘질문과 답변’ 코너를 만들어 정리하기도 했지만 잘 읽지 않았다.
방문자가 더욱 늘어나면서 모두에게 답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함께 키워보자’는 명목으로 ‘퀘스트’를 시작했다. 지정한 식물을 함께 키우며 같은 문제를 맞이하고 해결하는 거다. 처음엔 소수의 사람만 참여했는데, 어느새 수백 명이 참여하고 있더라.
직접 운영하는 카페는 1년에 단 하루만 가입 신청을 받는다
카페는 식물을 사랑하는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었다. 상업성을 경계하고, 복잡하거나 강압적인 규정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카페를 크게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래서 지정된 날짜에만 가입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소수로 운영하는 덕분인지, 카페는 별도의 관리 스태프를 두지 않았음에도 카페에 애정을 가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운영을 도와준다. 규정을 어긴 회원이 있다면 알려 주거나, 문제가 생기면 중재한다. 식물에 진심인, 소수의 사람이 모인 구조라 가능한 것 같다.
양념으로 판매하는 페페론치노 속 씨앗을 발아시키는 등 독특한 발상으로 식물을 키우기도 했다
식물을 잘 키우는 법을 설명하기보단 식물 키우는 재미를 먼저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마트에서 페페론치노를 사 와 씨앗을 추출해 키운다니, 말만 들어도 흥미롭지 않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일이었다. 씨앗에서 싹이 나오면 ‘정말 되네?’라며 흥미를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 싹은 자라서 어엿한 식물이 되고, 열매를 맺으면 요리할 때 생페페론치노를 따서 쓸 수 있다. 이를 시작으로 ‘다른 것도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드루이드 친구를 하나 더 만들게 되는 것이다.

식물이 천천히 자라는 걸 보며
삶을 보채지 않게 되었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라
내일로 이어지는 의지라는 걸 알게 됐다.
그것만 있으면 천천히
나아가도 상관없다.
식물을 키우는 것이 어떤 매력으로 다가오나?
오래 키운 식물은 과묵한 친구와 같다. 내가 놓아둔 자리에서 묵묵하게 살아가는 친구 말이다. 나는 그 친구가 충분히 푸르른 걸 보며 안도한다. 이따금 위로가 필요한 날에는 조용히 곁을 내어주기도 한다. 나는 내 과묵한 친구들이 오래도록 푸르르다가 흙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 순환을 응원하는 과정 자체가 위안이 된다.
폐교를 임대해 그곳에서 식물을 키우기까지 했다. ‘폐교생활백서’ 프로젝트의 시작이 궁금하다
가드닝 북을 쓰려다 막힌 것이 그 시작이다. 어쩌면 우쭐했는지도 모른다. ‘가드닝 북이나 써볼까’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막상 가드닝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려 해보니 잘못된 정보가 많았다. 다른 가드닝 북에서 다루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가드닝 식물의 ‘생육 pH’에 관한 것이다.
취미로 식물을 키울 때는 단순히 해외 사이트에서 검색하고 비교하면 됐다. 그러나 출간을 위해 근거가 명확한 정보를 찾다 보니 관련 연구나 논문 자료가 없었다. 농작물이 아닌 탓에 연구나 논문 자료 자체가 부족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응원이 돌아왔다. 방을 내어줄 테니 식물을 더 키워 실험해 보라며 1000만원을 지원해 줬다. 하지만 당초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필요했기에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프로젝트 계획을 올렸다. 그렇게 해서 300여 종, 3900여 개의 화분을 다양한 환경에서 관리해 보고 생육 정보를 기록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다만 그 많은 식물을 아파트에서 키우는 게 문제였다. 급하게 장소를 찾다 발견한 것이 폐교였다. ‘폐교생활백서’는 펀딩 후원자에게 전하는, 일종의 보고서였다.
‘폐교생활백서’에 이어 ‘프로개의 숲’을 준비한다고
한적한 시골 어딘가의 땅을 조금씩 매입해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어린 나무를 심어놓고 기다리면 숲이 될 거란 생각에 시작했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숲이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숲 말이다. 다만 나무가 충분히 자라면 드루이드 친구들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싶다. 나 혼자 보기엔 아까울 게 분명하니까.

여러 방송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거절한 이유가 궁금하다
너무 큰 관심을 바라지 않아서다.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만 식물을 키워가며 지금 정도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내가 그려놓은 울타리가 지금처럼 작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가드닝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느 초여름 밤, 폐교 복도에 박쥐가 나타난 적이 있다. 건물 안에서 박쥐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처음에는 새인 줄 알았다. 이내 박쥐라는 걸 깨닫고 기겁해서 쫓아냈다. 동네 어르신께 말씀드렸더니 원래 자주 나온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더라. 다음 해와 그다음 해에도 박쥐를 쫓아내야 했다. 도시에서 살 때는 상상하지 못한 일이 종종 일어났다.
다만 내가 겪는 이런 험난한 일상이, 블로그를 통해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힐링 요소가 된 것 같다.(웃음) 사람들은 내가 식물을 키우고 연구하는 것보다는 폐교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우당탕탕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더 좋아해 줬다.
본인만의 가드닝 철학은?
매일 조금씩 지구의 생명을 연장시킨다고 생각한다. 축구장 면적의 토양에 유기물 함량을 1%만 높여도 탄소 10톤이 저장된다고 한다. 가드너는 보통 유기물 함량 50%가 넘는 흙을 사용한다. 가드닝을 하는 사람이 100명 늘었다고 가정한다면, 몇 톤의 탄소가 화분에 저장된다고 생각하나. 화분에 물을 주는 행동이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는 식물을 키움으로써 나날이 지구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식물과 교감하면서 얻은 삶의 변화가 있다면?
헐떡이지 않게 되었다고 할까. 원래 나는 빠르게 걷는 사람이었다. 동행인에겐 혼자 앞서 간다고 구박받기 일쑤였고, 혼자 걸을 땐 빠른 걸음에 숨이 차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헉헉거렸다. 식물을 곁에 둔 이후로는 호흡법이 달라졌다. 당장의 삶을 영위하며 천천히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또 간혹 병마와 싸우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는다. 내가 식물을 키우며 쓰는 글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걸 알고 난 이후로는 약간의 책임감을 느낀다. 장난스럽기만 하던 내 글이 더 다듬어지고 조심스러워진 계기이기도 하다. ‘위로가 된다’며 고맙다고 전하는 이들의 마음이 도리어 내게 위로가 되었다.
흔히 가드닝에 대해 대중이 잘못 알고 있는 오해가 있다면?
빛 없이 키울 수 있는 식물을 찾는 사람이 많다. 안타깝게도 그런 식물은 없다. 단지 빛이 없는 상태를 오래 견딜 수 있는 식물이 있을 뿐이다. 음지에서 산다고 설명한 식물도 최소한의 빛은 필요하다.
앞으로의 목표는?
프로개의 숲에 심어둔 묘목이 느리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12월호
에디터 정지환 (stop@mcircle.biz)
사진제공 프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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