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미스터리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얼마 전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과 국제 로비스트 박동선씨가 사흘 간격으로 별세했다. 남재희와 박동선은 공통 분모가 거의 없는 인물들이지만 두 사람의 타계 소식에 ‘김형욱’이란 키워드가 떠오르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박정희 정권 전반부에 해당하는 1963∼1969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부장을 지내며 막강한 권세를 누린 그 김형욱이다. 먼저 남재희는 김형욱의 권력이 절정에 달한 1960년대에 언론인으로서 그와 대면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정권 실세와 몇몇 일간지 정치부장들이 함께한 저녁 자리에 중정부장 김형욱과 조선일보 정치부장 남재희도 함께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두 사람 사이에 술 시합이 벌어졌다. 맥주 잔에 가득 따른 양주를 김형욱이 거침없이 한숨에 넘기자 남재희는 “술 마시는 모습을 보면 실력을 알 수 있는데 내가 졌다”며 한 발 물러섰다. 이에 김형욱은 “부전승을 거뒀다”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김형욱은 1977년 6월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박정희 정권을 맹비난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코리아게이트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박동선을 활용해 대미 공작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을 향해 “당장 하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 의회 하원이 한·미 관계의 치부를 조사하겠다며 연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선 유신 정권 치하에서 벌어진 온갖 비리 의혹을 진술했다. 핵심은 ‘박 대통령이 중정을 통해 자신의 정권에 유리하게끔 미국 사회 여론을 조종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부글부글 끓었다. 그래도 김형욱은 개의치 않고 “박정희씨가 유치한 방법으로 나를 계속 중상모략한다면 이를 천하에 폭로할 작정”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심지어 중정부장 시절의 비밀스러운 경험담을 담은 책 집필에 나섰다. 이는 훗날 ‘김형욱 회고록: 혁명과 우상’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김형욱의 구술을 토대로 김경재(전 국회의원)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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