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의 역사 한 눈에 보기! -국내편-
오늘날 전세계의 자동차 산업을 주름잡고 있는 SUV. 그 SUV의 기원은 바로 미국이다. SUV는 잘 알려진 대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ports Utility Vehicle)의 약자다. 여기서 말하는 '스포츠'란, 고성능 자동차를 의미하는 '스포츠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각종 레저 및 아웃도어 활동을 이른다. 즉, SUV는 여행 및 레저활동에서의 활용을 염두에 둔 다목적 차량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SUV는 종주국인 미국을 넘어, 전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세그먼트로 자리잡았으며, 심지어 세단, 해치백, 왜건 등의 전통적인 승용차들마저 대체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에서도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야기다. 이번 시간에는 대한민국 SUV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주요 모델들을 살펴보며 SUV의 변화상을 짚어본다.
대한민국의 첫 자동차는 재생된 지프 - 국제차량제작 시-바ㄹ(1955)
'국제차량제작(國際車輛製作)'이라는 자동차 제작 회사가 내놓은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상 첫 차, '시-발'. 국제차량제작의 시발(始發)은 '첫 출발', 혹은 '어떠한 일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것'을 이르는 말로,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첫 출발을 기록한 자동차에게 그 어떤 것 보다도 어울리는 이름이다. 국제차량제작은 본래 광복 후 미군으로부터 불하(拂下)받은 군용 차량의 정비와 폐차 처리 등을 업으로 삼았던 '국제공업사'를 모체로 하는 기업이었다. 다라서 기본 구조는 폐차된 지프를 기반으로 하고, 차체는 드럼통을 자르고 펴서 만들어졌으며, 엔진은 원본 지프의 부품을 주물로 복제해다 만들었다. 기술적으로는 조잡하게 만들어진 '영운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화마가 지나 간 이후, 황폐해졌던 국내 환경에서 시-발의 존재 가치는 상당히 컸다.
대한민국 최장수 브랜드는 SUV - 쌍용자동차 코란도(1969)
쌍용 코란도는 1969년, 신진자동차가 생산한 미국의 민수용 지프(Civilian Jeep, CJ)인 '신진 지프'를 그 조상으로 한다. 이 차는 카이저(Kaiser) 사의 CJ-5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카이저 사의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생산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신진자동차의 인천 부평공장에서 먼저 생산되었다가 1970년도부터 부산 주례공장에서 생산되었다. 코란도라는 이름이 최초로 사용된 것은 거화 시절이었던 1982년부터였다. 코란도는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인은 할 수 있다"를 영역한 "KORean cAN DO"에서 가져왔다. '코란도'는 신진지프자동차 이후로 거화, 동아, 그리고 쌍용으로 주인이 세 차례나 바뀌면서도 존속되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를 상징하는 모델의 이름으로도 쓰였고, 온갖 악재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 선 오늘날에는 쌍용자동차의 SUV 브랜드로 사용되고 있다. 이 덕분에 '코란도'는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가장 장수하고 있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현대적인 SUV의 시작 - 쌍용자동차 코란도훼미리(1988)
1980년대 들어서 민수용 지프를 기반으로 한 코란도와 그 가지치기 모델들은 상품성이 크게 저하되고 있었다. 태생이 군용차량이었던 탓에 투박한 외관과 부족한 편의장비, 그리고 뒤떨어지는 승차감과 포장도로 주행성능 때문이었다. 이에 舊 거화자동차(現 쌍용자동차)는 그동안 대한민국에 없었던 '신개념' 차종, '승용차형 지프'를 개발하는 데 착수했다. 이 차는 일본 이스즈(Isuzu)社가 생산하고 있었던 SUV 모델 '트루퍼(Trooper)'의 섀시를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이 차는 거화그룹이 붕괴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동아, 그리고 쌍용으로 주인이 두 차례나 바뀌는 동안에도 결국 살아남아 1988년, 쌍용자동차의 손에서 비로소 생산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차가 바로 코란도 훼미리다. "지프의 장점을 살리면서 승용차의 안락함과 거주성을 극대화한다"는 컨셉트를 반영한 코란도훼미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적인 유틸리티 비클로서, 당시 중산층에서 큰 인기를 끌며 대한민국 SUV의 역사를 이끌었다.
집념으로 완성한 혁신적인 SUV - 기아 스포티지(NB-7, 1993)
포드 페스티바(기아 프라이드)의 대성공으로 기아의 능력에 주목한 포드는 1987년, 'UW-52'라는 프로젝트의 공동 진행을 제안했다. 이는 오늘날 포드 이스케이프 급의 '작은 SUV' 컨셉트였다. 하지만 포드가 공동진행을 대가로 무리한 조건을 들이밀면서 기아는 포드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하지만 이 컨셉트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기아는 이 컨셉트를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개발하는 모험을 감행하게 되었고, 이렇게 완성된 차가 1세대 스포티지다. 이 차는 전통적인 바디-온-프레임 구조를 기반으로 세련된 크로스오버 SUV의 외관을 구현해낸 것이 특징이다. 이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설계혁신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2.0리터급 엔진으로도 충분한 동력성능을 제공할 수 있도록 경량화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국내 최초로 60km/h 이하의 속도에서 구동방식을 전환할 수 있는 시프트-온-플라이 시스템을 적용한 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하는 등, 당시 국내에서 가장 진보된 SUV로 통했다. 스포티지는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정통파 SUV의 대명사 - 현대정공 갤로퍼(1991)
이 차는 현대자동차가 아닌, 지금의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의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태어난 차다. 이 차는 초기에는 'M-CAR'로 명명한 현대정공의 독자개발 프로젝트로 시작해 시제차까지 나왔지만, 처참한 테스트결과로 인해, 다른 제조사의 차량을 라이센스 생산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게 된다. 그 대상은 한 때 현대자동차의 스승이었던 미쓰비시자동차의 베스트셀러 SUV, 파제로(Pajero)였고, 이를 생산한 것이 바로 갤로퍼다. 1991년도부터 생산을 시작한 갤로퍼는 '다목적 승용차'로 소개되며 마이카 붐 및 레저 붐이 일고 있었던 국내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먼저 출시된 코란도훼미리에 비해 한층 세련되고 진보된 설계와 뛰어난 성능을 보이며 쌍용과 아시아자동차가 양분하고 있었던 SUV 시장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이 차는 현대정공이 현대자동차에 흡수된 이후에도 생산이 이어진 것은 물론, 갤로퍼 단종 이후 개발된 플래그십 SUV 테라칸에도 갤로퍼의 설계가 활용되기에 이른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로 완성된 국내최초 고급 대형 SUV - 쌍용자동차 무쏘(1993)
1990년 프로젝트명 FJ(Future Jeep)로 개발을 시작한 무쏘는 ‘승용 감각을 극대화한 SUV’를 목표로 개발되었다. 디자인은 영국 왕립 예술 대학의 캔 그린리 교수가 맡았고, 엔진은 메르세데스-벤츠로부터 도입한 2.9리터 OM602 계열의 디젤 엔진을 적용했다. 개발비는 총 3,200억원이 투입되었다. 1993년에 출시가 이루어진 무쏘는 그동안 국내 완성차 업계에없었던 ‘고급 SUV’라는 카테고리를 개척하기에 이른다. 이는 쌍용자동차의 제휴선인 메르세데스-벤츠의 후광을 입은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에서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고급 승용차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었고, 쌍용자동차 역시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 무쏘는 그 시작은 플래그십 SUV였지만, 8년 뒤인 2001년부터는 쌍용자동차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형급의 SUV로서 포지셔닝이 바뀌게 된다. "대한민국 1%"를 표방하며 나타난 새로운 플래그십 SUV인 렉스턴(Rexton, Y200)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본래 쌍용자동차는 렉스턴을 무쏘의 후속 차종으로 개발했지만, 렉스턴이 출시되고 나서도 무쏘가 꾸준히 인기를 누리자, 두 모델을 병행생산하기로 한 것에서 기인했다. 지금도 무쏘는 쌍용자동차가 영광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시절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도심형 크로스오버 SUV의 시작을 알리다 - 현대자동차 싼타페(SM, 2000)
지금까지 다뤄왔던 SUV들이 모두 전통적인 바디-온-프레임 SUV의 역사였다면, 여기서부터는 승용차의 모노코크(Monocoque) 차체구조를 적용한 '크로스오버 SUV'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첫 크로스오버 SUV라고 할 수 있는 모델은 바로 현대자동차의 초대 싼타페로, EF쏘나타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현대자동차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의 혁신적인 스타일링으로 완성되었다. 이 차는 종래의 SUV 대비 한층 편안한 온로드 주행질감과 SUV의 기능성을 양립, 출시 당시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파격적인 외관 디자인은 국내외 전방위적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출시된 2000년도에 우수산업디자인(Good Design) 대통령상을 수상하기까지 이르렀다. 도심지향 소프트로더 SUV의 선두주자로 등장한 싼타페는 다양한 파워트레인과 편의사양을 갖춰,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 이름은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중형 SUV의 이름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SUV 대중화의 첨병 - 현대자동차 투싼(JM, 2004)
앞서 등장한 초대 싼타페가 EF쏘나타를 바탕으로 개발된 중형급 크로스오버였다면, 투싼은 아반떼XD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된 소형~준중형급 크로스오버 SUV 모델이다. 외관 디자인은 호평이 이어졌던 초대 싼타페의 디자인을 더욱 깔끔하고 균형잡힌 스타일로 가다듬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우수한 주행성능과 연비, 차체크기 대비 넉넉한 공간 덕분에 가족용 자동차로도 손색 없는 구성을 가져 인기를 끌었다. 이 차는 싼타페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도 평가가 좋았으며, 심지어 같은 설계기반을 공유하는 기아 스포티지(KM)와 나란히 2006년 美 모터트렌드 트럭 오브 더 이어(Truck of the Year)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투싼의 등장은 싼타페로 인해 촉발된 크로스오버 SUV의 붐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투싼은 싼타페와 더불어 국내 SUV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오늘날의 준중형급 SUV 세그먼트를 정립하는 단초가 되었다.
더 작은 SUV, 소형 크로스오버의 역사의 첫 페이지를 쓰다 - 쉐보레 트랙스(2013)
쉐보레 트랙스는 한국지엠이 2013년에 처음 선보인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상 최초의 소형 SUV다. 더 작은 SUV를 표방하고 나선 쉐보레 트랙스는 그 획기적인 컨셉트 때문에 국내 자동차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간 활용에 제약이 있는 소형~준중형 세단을 대체할 수 있는 더 작고, 더 효율적인 SUV이면서 1.4리터 터보 엔진에 기반한 경쾌한 주행성능 등의 강점을 내세웠다. 하지만 출시 직후, 이러한 기대감은 배신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지나치게 비싼 가격과 더불어, 당시 대한민국 SUV 시장의 상식인 디젤엔진의 부재로 비난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트랙스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은 경쟁자들은 국내시장의 요구를 반영해 트랙스가 문을 연 소형 크로스오버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들어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쌍용자동차의 티볼리다. 물론 트랙스도 2015년에 디젤 모델을 추가하고 2016년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하며 상품성을 올렸지만, 이미 잠식당한 시장을 되찾아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쉐보레 트랙스는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지만, 제품노후화와 경쟁력 약화로 곧 단종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