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만들었다”…프랑스 최고 미녀는 왜 이곳 쟁탈전을 벌였을까 [전형민의 와인프릭]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미녀는 누구일까요? 소피 마르소부터 줄리 델피, 에바 그린, 멜라니 로랑, 레아 세이두까지… 세대마다 세기의 여배우 반열에 오른 미녀들이 존재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주저없이 이 이름을 제일 먼저 꼽는다고 합니다. 바로 ‘프랑스 최고의 미녀’ ‘작은 여왕(Reinette)’이라는 별명을 가진 퐁파두르 후작부인(Madame de Pompadour)입니다.
퐁파두르 부인은 프랑스의 군주였던 루이15세(태양왕 루이14세의 증손자)의 애인으로 베르사유 궁전에 군림하며 자기 생각대로 나라를 움직였습니다.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왕의 애인이 되겠다’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야망을 어린 나이에 실행에 옮깁니다. 어느 무도회에서 루이15세를 처음 만난 이후 우연을 가장해 왕이 자주 다니는 숲속 사냥길에서 만나는 잠복 작전을 펼친 끝에 궁에 들어갔습니다.
궁 입성 후엔 탄탄대로였습니다. 왕의 다른 후궁들과 달리 단순히 호사스러운 궁전과 아름다운 드레스, 고가의 보석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니라 문학과 음악, 학자와 긴밀히 만나며 당시 유행하던 로코코 스타일의 후원자를 자처했습니다. 이렇게 쌓은 확고한 지지층으로 정계에까지 진출하는데, 그녀의 저택엔 해가 뜨기 전부터 그녀를 만나기 위한 대기줄이 늘어설 정도로 위세가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매력만으로 루이15세를 잡아둘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아예 프랑스판 하렘이라 불리는 궁내 사창가, ‘사슴정원’을 만들어 왕을 기쁘게 하고 총애를 유지할 정도로 냉정하고 치밀한 책략가 기질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운이 좋아서 권력을 쥔 것은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나는 새도 떨어뜨리고 남을 만한 그녀조차도 최정점에서 정적에게 완전히 골탕먹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왕의 사촌 동생이자 외교관이었던 루이 프랑수아 드 부르봉(Louis-Francois de Bourbon), 일명 콩티 왕자와의 포도밭 쟁탈전 입니다.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15세를 위해 이 포도밭을 사고자 했습니다. 왕의 확실한 총애를 얻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고 싶었던 것 입니다. 하지만 곧이어 경쟁자인 콩티 왕자가 이미 그 밭을 사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당시로는 말도 안되는 파격적인 가격인 8만 리브르(livres·당시 화폐단위, 현재 가치로 약 40억원)의 웃돈을 줬다는 사실과 함께입니다. 퐁파두르 부인의 행보를 향한 노골적인 방해였던 셈입니다.
이 밭이 바로 훗날 줄여서 ‘로마네 콩티’라고 불리게 된 포도밭 입니다.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Domaine de la Romanee-Conti), 우리나라에서는 12병 1세트가 1억원이라고 알려지면서 와인에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도 유명세를 탔습니다. 지난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는 1945 빈티지 한 병이 무려 55만8000달러, 당시 환율로는 6억3000만원에 팔리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불립니다.
참고로 권력욕과 승부욕이 강했던 퐁파두르 부인은 곧바로 패배를 역전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합니다. 당시로써는 부르고뉴보다 명성이 덜했던 보르도에서 최고의 포도밭인 샤토 라피트(Chateau Lafite)를 손에 넣고, ‘젊어지는 물’이라고 마케팅해 루이15세의 환심을 사게된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루이15세의 시대 프랑스 귀족 사회의 주류 와인이 부르고뉴 와인에서 보르도 와인으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전문가마다 생각하는 답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피노누아(Pinot Noir)라는 포도 품종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합니다. 피노누아는 프랑스어로 솔방울(또는 소나무)를 뜻하는 피노(Pinot)와 검다는 뜻의 누아(Noir)의 합성어입니다. 포도송이가 검고 작은 알맹이가 다닥다닥 붙어서 멀리서 보면 솔방울처럼 보인다는 뜻인데, 직관적인 이름에서 드러나듯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재배된 유서깊은 품종이기도 합니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부르고뉴 피노누아는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귀한 포도로 취급됩니다. 부르고뉴 피노누아 와인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덩달아 원재료인 포도값까지 비싸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상 둘도 없는 예민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소홀하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입니다. 아무렇게나 방치해도 알아서 잘 자라는 까베르네 소비뇽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셈 입니다.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피노누아광인 주인공 마일즈는 “피노누아는 자신의 가능성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사람에게만 전부를 보여준다”며 “그럴 때 피노누아의 맛과 향은 눈부시고, 스릴있고, 미묘한, 지구의 태곳적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감상을 느낄 수 있는 피노누아가 많지 않지만, 극소수나마 존재한다는 것과 그 희소성이 현재 피노누아의 위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피노누아는 그런 변화와 옵션들을 가장 순수하게 반영하는 품종입니다. 예컨대 피노누아는 냉해, 병충해, 일조량, 강우량, 풍량, 토양, 가지치기 등 생장 환경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 어떤 품종보다 예민하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정직하게 떼루아를 표현해주는 것입니다.
저명한 마스터오브와인(MW) 젠시스 로빈슨은 이런 피노누아의 캐릭터를 “깍쟁이 여자아이 같은 포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전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와인 산지인 캘리포니아의 선구자이자 전설로 불린 안드레 첼리스체프는 “신이 까베르네소비뇽을 만들었다면, 악마가 피노누아를 만들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피노누아는 우아하고 미묘한 복합미가 돋보입니다. 잘 만들어진 피노누아에서는 붉은과일과 꽃, 흙, 향신료 등의 뉘앙스가 조화롭게 나타나고, 얇은 껍질 덕분에 탄닌이 부드럽고 마치 실크를 입에 물고 있는듯한 질감과 여운도 따릅니다. 덕분에 향과 맛이 강한 음식부터, 무채색의 음식까지 음식과의 페어링 역시 굉장히 뛰어난 편입니다.
붐 때문일까. 최근 재배하기 까다롭고 양조하기는 더 까다로운 특성 때문에 부르고뉴를 제외하고 잘 만든 피노누아를 보기 힘들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미국과 호주,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 고품질의 피노누아를 비교적 저렴하게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르고뉴 피노누아의 부담스런 가격 상승 틈새를 노린 전략입니다.
특히 몇몇 지역의 특징적인 생산자들은 이미 원조인 부르고뉴의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마저 받고 있습니다. 조금만 한눈을 팔거나 초심을 잃으면 순식간에 선택지에서 제외되는 냉정한 기호품의 세계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덕분에 와인 애호가들은 다양한 지역의 피노누아를 즐길 명분이 한 가지 더 생겼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밤, 퐁파두르 부인과 콩티 왕자의 이야기를 안주 삼아 우아하고 아름다운 피노누아 한 잔 즐기는 여유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음 와인프릭은 부르고뉴 피노누아를 대체할 만한 산지들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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