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
김순덕 대기자 2022. 11. 20. 14:40
이 제목은 내가 붙인 게 아니다. 수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김용운 전 한양대 교수가 2020년 5월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남긴 책의 제목이다. “한국이 당면한 정치•외교적 위기는 근원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이성 결핍’에 있다”고 선생은 암 투병을 하면서 피를 토하듯 글을 남겼다.
19일 서울 도심에선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참여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선동했다. 집회와 표현의 자유는 존중한다. 그러나 설령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탄핵 사유가 없는 한,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는 것이 민주주의다. 데모로 정권을 갈아치우겠다는 건 민주주의(democracy) 아닌 ‘데모cracy’라고 선생은 마치 예견하듯 써두었다.
민족의 집단무의식이 역사적 사건과 시대 상황을 여과하며 특유의 문화를 창조한다는 것이 선생의 원형사관(原型史觀)이다. 툭하면 광장에 뛰쳐나와 시위하고, 정치인은 분당(分黨)이나 하는 것도 집단 무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단군신화를 보면 안다…분열의 집단무의식
단군신화를 보시라. 주인공 환웅은 부족장 천군의 서손(庶孫)이었다. 백일동안 쑥과 마늘만 먹은 곰은 여자가 돼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고, 호랑이는 못 견디고 도망갔다고? 그건 신화 속 아름다운 얘기일 뿐이다.
현실로 번역하면, ‘분열’이다. 항복한 곰족과 정복군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났지만 반대파인 호랑이족은 떠남으로써 분열의 집단 무의식이 형성됐다. 심지어 독립운동가들 사이 분열도 극심했다. 일본군을 탈출해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했던 청년 장준하(1918~1975)가 “실상을 알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통곡했을 정도다. 호랑이족은 8•15해방 후 돌아와 곰족 ‘친일파’를 색출했다. 말이 되는가.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데 없어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을 친일파로 몬다는 것이(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책에 나오는 소리다)!
6•25 전쟁 때도 그랬다. 서울이 수복되자 부역 시비가 벌어져 서로에게 비수를 겨눴다. 조선왕조 500년을 주자학 원리주의로 유지했던 이 땅의 지배계급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기들만 옳다며 적폐청산, 제2의 건국,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걸고 보복질을 해댔다.
당나라 끌여들여 삼국통일…사대주의 국가이성
우리끼리만 잘난 척하면 또 모른다. ‘국가이성’은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지도자의 대외노선으로 이 역시 집단무의식 즉 원형을 반영한다. 그래서 나라가 망했는데도 외교적 마찰을 빚은 일도 없지 않다.
한국사를 관통해온 갈등은 삼국통일을 위해 나당연합군이 벌인 백강전투(663년)에서 기인한다고 선생은 통찰했다. 신라가 당나라를 불러들이자 백제는 왜(倭)와 끌어들인 최초의 국제전이다. 여기서 백제가 패해 삼국통일과 통일신라가 나왔지만 동북아시아에 남긴 집단 무의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한반도는 부국강병 없는 사대주의다. 반면 왜는 백강전투 이후 일본으로 국명을 바꾸고 조선을 혐한(嫌韓)하며 일치단결해 목적만을 향해 매진했다. 진시황 이래 천하통일을 추구하는 중국의 집단 무의식은 지금도 계속되고.
역사는 되풀이된다…한국인의 비극적 충동성
이런 역사의 되풀이 구조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평양-원산에서 끊어진 통일신라 국토는 중국과 일본이 원하는 한반도 분단선의 마지노선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비밀리에 명나라에 요구했던 분단선이었고, 조선 왕조 말기 러시아가 일본에 제안한 39도 선이기도 했다. 헨리 키신저도 ‘세계질서’에서 “6•25 전쟁 때 미국이 여기서 북진을 멈췄다면 중공군의 참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일간의 외교 마찰이 집단 무의식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해석도 있다. 한반도 이주만 봐도 우리는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주자학을 받아들여도 바닥까지 내려간 원리주의다. 역사도 항상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다른 민족의 집단 무의식은 우리와 다르다. 외교협정을 맺고도 정권 바뀌었다고 충동적으로 뒤집으면 분쟁이 일어나는 거다.
당나라 끌여들여 삼국통일…사대주의 국가이성
우리끼리만 잘난 척하면 또 모른다. ‘국가이성’은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지도자의 대외노선으로 이 역시 집단무의식 즉 원형을 반영한다. 그래서 나라가 망했는데도 외교적 마찰을 빚은 일도 없지 않다.
한국사를 관통해온 갈등은 삼국통일을 위해 나당연합군이 벌인 백강전투(663년)에서 기인한다고 선생은 통찰했다. 신라가 당나라를 불러들이자 백제는 왜(倭)와 끌어들인 최초의 국제전이다. 여기서 백제가 패해 삼국통일과 통일신라가 나왔지만 동북아시아에 남긴 집단 무의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한반도는 부국강병 없는 사대주의다. 반면 왜는 백강전투 이후 일본으로 국명을 바꾸고 조선을 혐한(嫌韓)하며 일치단결해 목적만을 향해 매진했다. 진시황 이래 천하통일을 추구하는 중국의 집단 무의식은 지금도 계속되고.
역사는 되풀이된다…한국인의 비극적 충동성
이런 역사의 되풀이 구조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평양-원산에서 끊어진 통일신라 국토는 중국과 일본이 원하는 한반도 분단선의 마지노선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비밀리에 명나라에 요구했던 분단선이었고, 조선 왕조 말기 러시아가 일본에 제안한 39도 선이기도 했다. 헨리 키신저도 ‘세계질서’에서 “6•25 전쟁 때 미국이 여기서 북진을 멈췄다면 중공군의 참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일간의 외교 마찰이 집단 무의식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해석도 있다. 한반도 이주만 봐도 우리는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주자학을 받아들여도 바닥까지 내려간 원리주의다. 역사도 항상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다른 민족의 집단 무의식은 우리와 다르다. 외교협정을 맺고도 정권 바뀌었다고 충동적으로 뒤집으면 분쟁이 일어나는 거다.
한국인 개개인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해도 정치•외교가 그렇지 않은 이유는…그것이 집단적 공동체 문화여서다. 이성은 ‘옳다’고 믿는 것을 실행하는 ‘지적 정직성’을 의미하지만 정치인은 표에 반응한다. 국력의 기본은 민족의 이성에 있으나 안타깝게도 한국인의 충동성은 유명하다. 1979년 미중 국교 정상화 회담 때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이 저우언라이에게 했던 말이 “충동적인 한국인이 유발하는 전쟁을 피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였다.
해법은 있다…이성 교육과 언어 정화
우리 근현대사의 불행은 역사의 되풀이 구조에 있다. 대통령부터 군중까지…정치부터 외교까지…충동적이고 국가이성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이성을 높이려면 사회가 지적 정직성을 회복해야 하고, 학교에서 수학과 인문학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선생은 눈을 감기 전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길이 있다. 언어 정화다.
해법은 있다…이성 교육과 언어 정화
우리 근현대사의 불행은 역사의 되풀이 구조에 있다. 대통령부터 군중까지…정치부터 외교까지…충동적이고 국가이성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이성을 높이려면 사회가 지적 정직성을 회복해야 하고, 학교에서 수학과 인문학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선생은 눈을 감기 전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길이 있다. 언어 정화다.
언어는 인간의 본질이고 인지능력과 직결되는 이성이며 해당 민족의 정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언어의 오염은 민족정신과 이성의 오염이다. 욕설이 유난히 많은 우리의 언어 습관을 되돌아볼 일이다.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 中) |
언어 정화로 이성이 밝아지고, 그리하여 나라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해볼 만하지 않은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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