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셰프의 품격과 한 그릇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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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요리사’ 에드워드 리 셰프
우승자보다 더 인기 있는 이유
」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한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고, 뉴욕대 영문학과 졸업 후 출판사에 잠시 일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스물두 살에 본격적으로 셰프의 길에 입문했다. 2010년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요식업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상 후보에도 여러 번 올랐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 백악관이 개최한 한·미 국빈 만찬의 셰프로 초청돼 음식을 만든 바 있다.
이런 스타 셰프가 ‘흑백요리사’에서 보여준 모습은 ‘겸손함’과 ‘진지함’이었다. 그 역시 우승에 대한 의지는 누구보다 컸지만 그 과정이 상대를 짓밟는 게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걸 묵묵히 보여줬다. 전쟁터 같은 주방에서 일하면서 그라고 ‘F××K’ 같은 욕을 안 해봤을까. 하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진짜 의미가 먼저였다. 팟캐스트 ‘데이브 장 쇼’에 출연한 그는 “‘흑백요리사’ 출연을 여러 차례 고사했다”며 “처음엔 젊은 친구들이 하는 거라 생각했지만 나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촬영했던 그는 늘 시차가 뒤섞인 상태였고, 자신의 식당과 집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한국 셰프들과 달리 호텔에서 묵으며 간이용 기구 몇 개로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에 임하는 그의 의지는 특별했다. ‘인생 요리’를 설명할 때 자신을 “비빔인간”이라고 소개했던 그는 “나는 한국 사람인가, 미국 사람인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열심히 요리할 때만큼은 그런 생각 다 없어지고 그냥 편안하게 하나의 맛을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면서 “그게 저한테는 제일 중요한 거예요, 한 맛”이라고 했다.
SNS에서 ‘한국에서 연습할 주방이 없어 불리했던 것 아니냐’ 논란이 일자 11일에는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주방이란 무엇일까. 한국에 있는 동안 호텔 방을 테스트 주방으로 바꾸고 지역 시장에서 재료를 사와 아이디어를 시험했다. 동기부여를 위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기도 했다. 주방은 화려한 장비나 고급 식자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고 사랑이며 창의성이다. 저는 늘 도마·칼 그리고 호기심만 있으면 어떤 곳이든 주방으로 바꿀 수 있다.” 호텔 방 테이블에 도마·칼·식자재를 늘어놓고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함께 게재해 많은 사람을 또 한 번 미소 짓게 했다. 그만의 조용하고 매력적인 유머 감각이다.
“심사위원에게 가는 길은 멀었어요. 가끔은 잠깐만, 돌아가서 뭔가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한 번 걷기 시작하면 끝까지 걸어야 하죠. 해봅시다.” 결과를 모르는 길, 수도 없이 뒤돌아보며 때로는 여기서 멈출까 아니면 도망쳐버릴까 망설이게 되는 길. 그의 말에서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이 ‘인생’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만화·영화 ‘심야식당’이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던 것은 마스터의 속 깊은 캐릭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건네는 ‘한 그릇의 요리’를 우린 먹어보지 않았지만 충분히 위로받았다. 음식을 오직 ‘맛’으로만 먹는다면 세상에는 아직도 고수들의 식당이 넘쳐난다. 에드워드 리가 요리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것은 뛰어난 요리 솜씨보다 더 중요한 ‘셰프의 품격’이었다.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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