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풍년의 역설···속 타는 해남 배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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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는데. 제값 받기 어려워 수확도 못 하고 폐기해야 하니 허탈감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죠."
백 씨는 배추 한 포기를 뽑고 반을 갈라 보여주며 "올해 비도 적당히 내렸고 일조량이 풍부하다 보니 수확하기엔 조금 이른데도 이렇게나 속이 꽉 차 상태가 좋다"면서 "그럼에도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해 곧 폐기할 계획"이라고 했다.
특히 충북 등 해남보다 수확시기가 빠른 지역의 물량이 김장철 수요를 감당하면서 해남 배추의 위기는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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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 늘고 작황 호조…가격 '반토막'
수확 포기에 '밭떼기' 파기 속출
자구책 절임 등 가공품도 하락세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울 듯…허탈"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는데…. 제값 받기 어려워 수확도 못 하고 폐기해야 하니 허탈감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죠.”
6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황산면의 한 배추밭에서 만난 백인조(72) 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배추 가격이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수확할수록 오히려 적자를 보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만평 남짓한 그의 배추밭에는 묵직하게 속이 꽉 찬 배추들로 가득했다. 백 씨는 배추 한 포기를 뽑고 반을 갈라 보여주며 “올해 비도 적당히 내렸고 일조량이 풍부하다 보니 수확하기엔 조금 이른데도 이렇게나 속이 꽉 차 상태가 좋다”면서 “그럼에도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해 곧 폐기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내 배추 농가들이 최근 가격이 폭락하면서 존폐 기로에 섰다. 특히 주산지로 전국 생산량 35%가량을 책임지는 해남은 직격탄을 맞았다. 해남 배추는 삼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밭이 어우러져 섬유질이 촘촘하고 속이 단단하게 여문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김치를 담근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무르지 않고 특유의 아삭한 식감이 고스란히 유지돼 김장철 인기가 높다. 배추 하면 해남이 대명사가 된 이유다.
그러나 가격 폭락 대란에서 해남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배춧값 폭락 원인은 전국의 재배 면적이 늘어난 데다 올해 유난히 작황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금배추’라 불렸던 지난해 가격이 치솟자 올해 재배 농가가 늘었다. 또 올해 적은 강수량과 풍부한 일조량이 더해지면서 생산량이 올라가면서 출하 물량이 늘어났다. 특히 충북 등 해남보다 수확시기가 빠른 지역의 물량이 김장철 수요를 감당하면서 해남 배추의 위기는 더 커지고 있다. 겨울배추 출하시기까지 가을배추 물량이 소진되지 않는다면 지역 농가들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8천평 밭을 가꾸는 김현수(60) 씨도 수확을 10여 일 앞두고 폐기를 할지 고민 중이다. 앞으로의 가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확에 드는 인건비, 운송비,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산지 폐기가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어서다. 김 씨는 “지금도 가격이 형편없는데, 11월 중순부터 물량이 더 쏟아져 나오면 더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농사를 지을 수도, 그렇다고 손을 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절임배추 가공을 병행하는 농가도 근심 가득하긴 마찬가지다. 북평면에서 2만 5천평 규모 배추 농사와 절임공장을 운영하는 김광석(57) 씨는 “배추 원물 가격보다 한번 가공하면 가격이 훨씬 낫지만 올해는 박스당 가격이 20% 이상 떨어졌다”며 “배추 사업에 뛰어든 15년 중 올해가 인건비·전기세·포장비·유가·비룟값 등이 가장 많이 올라 절임배추 판매 가격으로 농사 손해를 겨우 보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해남군농민회와 전국배추생산자협회 해남지회는 정부를 상대로 행동에 나섰다. 정부에1천500㏊에 달하는 배추 재배지에 대한 선제적 시장격리와 산지 폐기 지원 단가 현실화, 공공형 유통 플랫폼 도입 등 수급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후에도 실효성 있는 대책이 즉각 실행되지 않을 시 자체 산지 폐기 등 집단 행동을 예고했다. 해남군농민회 관계자는 “농민들이 판로 불안·가격 폭락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생산 지속성이 무너지고, 식량주권까지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승현기자 hon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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