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하지 않는 게 가능한 세계관 ‘우스모스’ 예술가

조재원 UNIST 교수 2026. 11. 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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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UNIST 교수

뫼비우스 띠 위를 따라 스케이트보드를 탄다고 가정하면 그 공간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 멈춤 없이 닫힌회로를 순환하듯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인공지능 시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흔히 닫힌회로에 비유한다. 아무리 빠져나오고 싶어도 닫힌회로에서 멈추면 낙오하고 마는 세계에서 뫼비우스 띠 무한궤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닫힌회로에서는 앞서는 것이 의미 없지만 무한 경쟁의 길에서 바로 옆 타인을 앞지르는 것으로 인생의 목표를 세운다. 닫힌회로 속 질주에서 빠져나올 것을 자신의 수학적 기하학과 미학으로 세운 '우스모스(OusssMos: 캐릭터 'Ousss'와 코스모스의 합성어)' 세계관 기획 전시가 현재 리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2024년 '향'을 주제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전시한 구정아 작가이다.

그의 전시를 처음 본 것은 2002년 광주 비엔날레 전시 때였다. 당시에 이미 파리와 런던 등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던 시기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찾은 그의 전시는 꽤 넓은 공간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텅 빈 공간 한구석에 나프탈렌 한 무더기가 놓여있었다.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갔지만 그때 받은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만약 나프탈렌 더미 크기보다 그렇게 크지 않은 전시 공간이었다면 좀 달랐을 것이다. 심지어 전시된 나프탈렌은 언젠가 공기 중으로 사라질 물질임을 감지한다면 작품의 의미는 가름하기 쉽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을 이보다 더 절묘하게 연결하는 작품을 만나긴 어렵다. 선험적인 조건인 시간과 공간이 물질계에서 시공간 형식으로 만나게 하는 작업이 절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술이라도 시간의 일직선에 중복된 구간이 있다는, 즉 동시성이란 개념을 실제의 모습을 지닌 작품으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작가는 시간을 도구로 덧없음과 영원성을 교차하는 작업을 이렇게 평생 예술 활동 속에 담아왔다.

시간과 공간을 그는 예술 활동의 재료로 삼는다. 설치 예술 작가의 특권을 누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무언가 더해서 보여주기보다는 덜어내어 오히려 저절로 드러나게 하는 게 그만의 예술 미학이다. 사라지는 물질, 보이지 않는 에너지, 그리고 빈 공간이란 예술적 상상을 교차시킨다. 그는 선험적 이미지 표상의 조건인 공간을 원초적인 밑그림으로 삼는 세심하고 또 엄밀한 감지력을 지닌 작가이기에 공간을 재료로 택하는 게 가능하다. 두 번째 예술 재료인 시간은 그의 작품에서 마치 공간과 별개로 우주를 설명하는 조건처럼 느껴지기까지 하지만 결국 공간 속 동시성을 만족하는 숙명을 사라지는 허무의 사물로 표현된다. 나프탈렌, 각설탕, 아스피린, 연필심같이 언젠가 사라지고 마는 물질을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이를 관찰하는 관객은 공간이 얽혀 있는 시간과 함께하는 시공간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한다.

사라지는 물질이 공간을 차지함으로써 오히려 사라지는 빈 공간을 표현한 것이라는 걸 눈치챌 때쯤 관객은 다음 공간인 마그네틱 도시로 안내된다. 자석이 서로 엉켜 기둥을 이루고 철벽에 강하게 붙어 공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도시 공간으로 이동한다. 사라지는 물질에서 덧없음을 경험한 관객은 강력한 집착과도 같은 자석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이 또한 작가의 의도란 걸 잠시 후 눈치챌 수 있다. 자석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택한 '향'이란 물질도 자석 에너지와 맥을 함께 한다. 사라지는 물질과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모두 시간의 동시성 속에서 공간의 형태를 보여준다. 물질과 에너지가 사물이 되는 동양철학 대학의 격물치지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까지 단번에 이해하게 한다.

이제 뫼비우스 띠의 닫힌 무한궤도에서 빠져나와 열린회로로 이루어진 시공간 세상을 창조하는 일만 남았다. 이번 리움 미술관 기획 전시의 하이라이트에 도달한다. 물질의 시공간을 바로 알면 지금 발 딛고 있는 여기에 닫힌 세계에서 열린 우주로 가는 진리가 놓여있었다. 소를 타고 소 찾지 않아도 된다. 시공간이 그렇게 열렸으니, 쳇바퀴 돌 듯 방황하던 인류는 열린회로를 감지하면서 자유로운 여행을 비로소 떠날 수 있게 허락된다. 뫼비우스 띠의 형상은 언제든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해진 스케이트장으로 변하면서, 닫힌 코스모스는 열린 '유니버스'를 형상화한 '우스모스'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우스모스' 세계관이 등장하는 순간, 형광으로 빛나는 별은 축하 메시지를 인류에게 보낸다.

조재원 UNIST 교수
 

조재원 UNIST 교수 (iusm@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