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페어에 참가비가 없다고?”…힙한 콘텐츠로 군산을 ‘선동’하다[디자이너가 만난 디자이너]

구선아 기자 2026. 11. 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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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중심부, 어느 건물 안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문득 바깥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지난 8월 29일 북페어가 열린 군산회관 주변 주차장은 이른 아침부터 차량으로 가득 찼다.

군산북페어는 민간이 최초로 제안하고, 지자체가 호응해 실현된 행사입니다.

북페어 기간 동안 군산 거리 풍경이 살짝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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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전북 군산 영화동의 ‘프로파간다’ 김광철 대표
서울 떠나 군산으로…독립출판사가 지역 북페어 만들기까지
광고 없는 잡지 ‘그래픽’부터 별난 소재의 책까지…기성 출판 관습에 도전
“참가비 없고 부스 크기도 똑같죠.” 북페어에서만큼은 누구나 평등하게
이상선과 최저선을 함께 정한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이어가는 출판 실험
[편집자주]
서울 종로구의 중심부, 어느 건물 안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문득 바깥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각자의 장소와 공간에서 특별한 지금을 보내고 있을 그들과 만나 또 다른 미지의 장소와 공간을 탐험해 보고자 합니다.
군산 영화동에 위치한 그래픽숍에서 만난 ‘프로파간다’ 김광철 대표. 군산=구선아 기자

전북 군산 구도심에는 일제강점기의 흔적과 오래된 건물들로 가득하다. 옛 건물과 골목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경으로 여행객들의 발길을 끄는 이 도시에 몇 년 전부터 다른 이유로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크게 늘었다. 2024년 시작해 올해 3회째를 맞은 ‘군산북페어’ 때문이다.

지난 8월 29일 북페어가 열린 군산회관 주변 주차장은 이른 아침부터 차량으로 가득 찼다. 행사장 역시 책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이를 기획한 사람은 출판사 ‘프로파간다’의 김광철 대표. 2007년 디자인 잡지 ‘그래픽(Graphic)’을 창간하고 기발하고 유머러스한 출판물을 펴내며 이름을 알린 프로파간다는 돌연 2021년 서울 사무실을 남긴 채 본사를 군산으로 옮겼다.

서강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광고업계를 거쳐 영화 주간지 ‘필름2.0’ 창간에 참여했다. 2006년 프로파간다를 설립한 뒤, 시각문화와 서브컬처를 중심으로 출판의 새로운 형식을 모색해 왔다. ‘연필 깎기의 정석’, ‘탐정사전’ 등 독특한 소재의 책들을 선보였으며 군산에 서점 겸 프로젝트 공간 ‘그래픽숍’을 열고 지역 서점들과 함께 군산북페어를 이끌고 있다.

◇작업실 이야기

Q. ‘프로파간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중 영화 주간지에서 오래 활동해 왔습니다. 잡지라는 매체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와 경험을 종합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픽(Graphic)’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기 위해서는 출판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잡지사로 출범했지요. 벌써 20년 전이네요.

“영화 잡지를 하다가 왜 디자인 잡지인가?”라는 질문이 항상 뒤따르죠. 영화 잡지는 씨네필들이 모여 만드는 간행물입니다. 의외로 저는 영화보다 ‘잡지’라는 매체에 더 매료됐던 것 같아요. 매체에 대한 관심이 연구, 수집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새로운 잡지를 만들기까지 한 셈이지요. 잡지를 분해해 보면 이미지와 텍스트만 남는데, 그 둘을 재료로 하는 원형 같은 잡지는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마침 ‘그래픽’을 제호로 하는 시각 문화 잡지가 적절해 보였습니다.

Q. ‘프로파간다’라는 이름에도 특별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싶으셨는지요.

정론직필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진영을 대변하는 ‘주류’ 저널리즘에 대한 반어적 의미가 있지요. ‘정론’이라는 겉과 속이 다른 허울만의 명제를 던져 버리고, 차라리 투명하게 선전하고 선동하는 것이 덜 해롭지 않겠냐는 메시지를 담은 이름이랄까요. ‘밑 바닥에서 비주류 시선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는 출판사의 태도가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군산 영화동에 터를 잡은 프로파간다 본사 ‘그래픽숍’ 주변 풍경. 군산=구선아 기자

Q. 서울 합정에서 활동하다 전북 군산으로 본사를 옮겨 ‘그래픽숍’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서울 중심의 출판 환경을 떠나기로 결심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울에선 도무지 불가능한 것을 꿈꿨기 때문입니다. 자원과 사람이 가득한 서울은 무엇이든 ‘적당히’ 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지요. ‘세련’과 ‘윤기’로 가득한 매너리즘의 중심지이기도 하고요.

언젠가부터 지방으로 가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습니다. 수십년 동안 맺어온 네트워크에서 빠져 나와 완전히 새로운 지역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요체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어요. 사는 곳이 달라지면 많은 것에 변화가 생길 테니까요. 방향은 비교적 명확했어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일하지 않고,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르지 않는 것. 말하자면 온갖 상업적, 규범적 압력을 고민 없이 분쇄하는 것이지요. ‘이런 짓’을 하기에 로컬은 아주 적지입니다(웃음). 그곳이 반드시 군산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우연이 만나 이곳에 정착하게 됐네요.

군산 ‘그래픽숍’ 내부 전경. 다양한 디자인·시각문화 관련 서적과 군산북페어 포스터 등이 전시돼 있다. 군산=구선아 기자

Q. 프로파간다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고 계신가요?

기본적으로 소규모 출판입니다. 편집자, 디자이너, 번역가, 사진가 등 스태프들이 프로젝트마다 다르게 헤쳐 모이는 프리랜스 기반의 횡적 조직을 추구해 왔습니다. 저희 활동이 잡지, 단행본 출판뿐만 아니라, 전시와 이벤트까지 아우르고 있어 고정 인력을 여럿 두는 것보다 오히려 효율적인 면이 있어요. 회사가 아니라 일종의 공동체인 셈이죠.

Q. 직접 경험해본 군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자주 찾는 맛집이나 장소들도 소개해 주세요.

이곳 구도심은 오후 5시쯤 되면 인적이 사라집니다. 소도시의 조용한 생활, 나른함은 즐길 만하지요. 유서 깊은 월명 공원 산책을 포함해서요. 군산에 유명한 호수가 세 곳 있습니다. 월명호수, 은파호수, 군산호수. 거대한 숲이 짙은 그림자를 만드는 군산호수의 오싹한(?) 매력을 잊지 못하겠네요.

조금만 나가면 새만금방조제 너머로 고군산군도 풍경이 펼쳐져요.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웃한 김제, 부안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말로만 듣던 ‘평야’의 위엄도 느낄 수 있죠. 막대한 평평함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걸 이곳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맛집이라면 떡갈비 전문점 진갈비가 먼저 떠오릅니다. 서울서 지인이 찾아오면 방문하는 ‘접대용’ 식당인데, 하나같이 “여태까지 먹어 본 최고의 떡갈비”라는 반응입니다. 그래픽숍과 이웃한 ‘명궁칼국수’도 추천합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 장률 감독)란 영화에서 문숙 배우가 주인장으로 나오는 바로 그 식당이에요. 칼국수도 좋지만, 김치 맛이 기가 막힙니다.

◇작업 이야기

프로파간다의 디자인 잡지 ‘GRAPHIC’

Q. 2007년 창간한 ‘그래픽’은 디자이너들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주도하던 흐름 속에서 등장했습니다. 당시 어떤 편집 방향을 고민하셨나요?

제가 아는 한, ‘그래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본격적인 ‘원 이슈, 원 테마’ 잡지, 그러니까 한 호에 하나의 주제만을 다루는 편집 방침을 처음 도입한 케이스일 겁니다. 그때만 해도 ‘잡지란 잡스러워야 한다’란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이었어요.

제 입장에서 ‘원 이슈, 원 테마’는 편집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잡지가 발산하는 정보 성격과 소통 방식이라는 ‘매체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었어요. 역으로 말하면 이런 형식의 에디토리얼 방식을 실험하기 위해 ‘그래픽’을 창간했다고 봐도 됩니다 .

구체적으론 공감을 얻을 만한 단일 주제를 설정하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복수 인터뷰와 피처 기사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편집 구조를 단순화했습니다. 일반적인 잡지의 구성 방식, 기승전결식 선형 구조를 혁파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는데요. 독자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편집보다 독자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정보를 선택적으로 취득케 해, 스스로 ‘어떤’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2007년 ‘그래픽’을 처음 선보였을 때 독자들은 어리둥절해했지만, 1년쯤 지나 반응이 오기 시작했어요.

2009년, 그러니까 2년간 8호를 발행했을 무렵에는 발행부수나 영향력 측면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느꼈습니다.

‘연필 깎기의 정석’, ‘탐정사전’, ‘좀비사전’ 등 프로파간다의 대표 출간물들.

Q. ‘연필 깎기의 정석’, ‘탐정사전’, ‘좀비사전’, ‘문신유희’ 등 출판업계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는 주제들을 꾸준히 선보였습니다. 상업적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이런 실험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출판계 특유의 지적 엄숙주의의 반대편에서 뭔가를 구축하고 싶었습니다. 보통 출판사라면 고려하지 않거나 엄두도 내지 못할 서브컬처를 축으로 삼아 일련의 타이틀을 발간해왔죠. 예상대로 대부분의 책은 손익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연필 깎기의 정석’처럼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사례가 간혹 있었어요. 덧붙이자면 ‘연필 깎기의 정석’은 이후 비슷한 책들이 등장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저는 주장합니다(웃음). 웃기고 사소하면서도 한 줄기 영감을 주는 책들이요.

프로파간다는 시작부터 ‘독립출판’에 대한 자의식이 강하고, ‘곤조’ 하나는 투철한 출판사였어요. 광고 없는 잡지 ‘그래픽’이 주류 저널리즘과 다른 편집 방식을 고수한 것처럼요. 출판을 결정하는 과정부터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방식까지, 기존 출판과는 전혀 다른 정서와 감각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상업적 성공과 무관하게 이런 ‘지조’를 끝까지 지킨 덕분일 겁니다. 아직 살아 있는 이유가.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2016년 6월 6일 초판 발행)

Q. 그동안 선보인 출판물 가운데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2016)이란 소책자를 들 수 있겠네요. 2016년, 선거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 끊이지 않던 시기에 출간한 책입니다. 이 도감에는 정부 수립 이후 한국에서 등장한 기상천외한 부정선거 수법을 ‘가치 판단 없이’ 담았습니다. 당시 정치 현실의 알레고리로 받아들여지면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잡지로는 ‘아카이브 프리즘’(2020-2023)이라는 한국영상자료원 기관지를 꼽고 싶어요. 저희가 발행 책임을 맡아 4년간 15회 이슈를 발간했는데요.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한 막대한 영화 자료를 아카이브 잡지 형식으로 소개, 비평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만사 제쳐 놓고 이 잡지를 만드는데 시간을 다 썼지요. 공공부문이 발행하는 잡지로서는 내용, 형식 등 모두 범상치 않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Q. 온라인이 미디어의 중심이 된 지금도 종이 매체와 오프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새로운 매체나 방식이 있으신지.

진(zine)이라는 매체, ISBN 없는 비공식 출판물을 리서치하고 있습니다. 상업 잡지, 단행본이 담아 내지 못하는 종류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는 용기라는 점에서 관심이 가요. 진 출판뿐 아니라 진을 알리는 활동, 진 도서관, 진 워크숍 등 진을 매개로 한 프로젝트가 가능한지 가늠하는 중입니다.

지난 8월 29일부터 30일까지 전북 군산에서 열린 ‘2026 군산북페어’ 현장. 군산=구선아 기자

Q. 지난 여름 군산북페어에 직접 다녀왔습니다.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임에도 책을 매개로 모인 사람들의 열기가 뜨거웠는데요. 군산북페어를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은 무엇인지요.

군산북페어는 참가 신청에 제한이 없고, 참가비가 없으며 참가사를 초청할 때 출간 종수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참가사들은 출판사 규모와 상관없이 동일한 크기의 테이블을 배정받고, 부스 위치는 랜덤하게 배치됩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위계를 최대한 줄이고, 북페어에서만큼은 누구나 평등하게 관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죠.

내용 측면에선 책을 사고 파는 것을 넘어 전시, 토크, 워크숍 같은 컨텐츠가 페어의 중심이 되도록 했어요. 어쩌면 이런 컨텐츠를 전개하기 위해 북페어가 필요했는지도 모르죠. 명백히 컨텐츠가 우선이라는 겁니다.

Q. 지자체와의 협력 과정은 어땠나요? 북페어가 지역사회에 가져온 변화도 궁금합니다.

북페어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지자체는 일단 함께 만들어 가자는 태도로 저희 의견을 존중해 줬습니다. 군산북페어는 민간이 최초로 제안하고, 지자체가 호응해 실현된 행사입니다. 이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官)스런’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군산북페어가 군산의 대표적인 문화 행사로 인식된 것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적산가옥으로 대표되는 근대 이미지의 도시에서 정보와 지식, 문화를 담는 책이라는 레이어가 생겨난 셈이니까요.

북페어 기간 동안 군산 거리 풍경이 살짝 달라집니다. 늘 보던 일반 관광객과 북페어 방문객은 연령부터 인상까지 꽤 다른 편이라 주민들 눈이 휘둥그레 커져요. 방문객의 구매력도 무시 못해요. ‘북페어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라는 인식이 생겨나는 중이라고 봅니다.

Q. 현장에는 외국인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해외 출판인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군산북페어의 가능성도 확장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해외 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셨어요. 입소문 덕분일 겁니다. 확실히 글로벌 팀들의 이질적인 풍모가 북페어에 긍정적인 아우라를 더해줘요.

군산북페어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동아시아, 좀 더 넓게는 동남아시아까지 아우르는 출판 교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지금이 적기인 듯합니다. 물 들어왔을 때 기회를 놓치면 아쉽겠지요. 국제 출판 플랫폼으로 가 보자고 지자체에 제안해 놓았습니다.

Q. 독립출판이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금, 그 의미도 과거와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독립출판 생태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독립출판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게 2010년 전후였습니다. 그 시절 독립출판이란 상업출판에 대한 반대 테제였습니다. 그러니까 내용, 미학적으로 기존 출판의 관습을 깨는. 아방가르드에 가까운 출판이었죠. 이후 ‘독립출판’이란 용어가 창작자 중심의 개인 출판물 정도로 인식되면서, 무엇이 독립출판인지, 개념 정리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독립출판의 외피를 두른 일부 출판물들이 보여주는 도식성, 안일함 같은 것들은 경계해야 할 징후입니다. 저를 포함한 독립출판계 종사자들이 더욱 분발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죠.

이런 것들 때문에 다시 한번 진(zine)을 주시하게 되죠. 조금 더 본질적인 독립출판, DIY 기반 진 출판이 독립출판의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해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군산북페어가 ‘풀 스프레드’라는 이름의 진 마켓을 개최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이야기

Q. 오랫동안 자신만의 취향과 작업 방식을 지켜오셨습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작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부끄럽지만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자비 없는 ‘노력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동 시간을 막대하게 투입해, 시행착오를 거듭 교정하는 과정을 거쳐 과업을 완수하는 타입이니까요.

잡지, 책, 전시, 이벤트를 막론하고 저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예산과 상관없이 먼저 이상적인 기준선 떠올립니다. 목표를 정한다기보다 제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이 어디쯤인지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거죠. 실무에선 현실적인 선도 존재합니다.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마지노선, 어떤 경우에도 그 밑으로 내려 가선 안 되는 경계선인 거죠. 처음에는 이상을 목표로 뛰다가 이런저런 여건과 타협하면서 결국 이상선과 최저선 사이, 어느 지점에서 마무리돼요. 하지만 높은 수준의 기준 지표가 있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선명하게 그려지고 다음 프로젝트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어요.

저의 경우 프로젝트를 거듭하면서 최저선을 점진적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해 온 작업자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언젠가부터 체득한 직업 윤리 같은 것일 수도 있겠죠.

군산의 장소와 지리를 소개하는 시티 가이드 프로젝트 ‘아틀라스 군산’ 출판물. 군산=구선아 기자

Q. 군산이 독립출판과 로컬 문화의 새로운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군산에서 이어가고 싶은 활동이나 새로운 계획이 있으신가요?

로컬 생활의 특징 중 하나가 미래를 점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유동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군산북페어 이후의 단계로 2차 문화 페스티벌, 조금 더 획기적인 이벤트를 지자체 쪽에 제안해 놓은 상태인데요. 시 재정이 어려워 큰 기대를 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군산북페어가 명실상부한 국제 행사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군산의 문화 위상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찬스라고 보지만 이것도 재정이 필요한 사업이라서 추이를 봐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역의 장소와 지리를 매핑하는 방식의 시티 가이드 프로젝트, ‘그래픽숍’ 같은 소규모 공간 운영 등 작은 스케일의 문화 과업에도 흥미를 느낍니다.

미래 계획을 생각할 때 왜 이곳에 왔는지 되묻곤 합니다. 지역에서 새로운 일을 추진하다 보면 여러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이곳에 온 의미가 희석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서울을 떠날 때 목표로 삼았던 것이 완수되지 않은 이상 뭐라도 할 것입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는지 모르죠.

구선아 기자 schatzs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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