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계 성폭력 근절하자”…전통공연예술인들 자성 촉구 한목소리

유주현 2026. 11. 8. 13: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공론화가 없어도 즉각 작동하는 상시적 보호제도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우리 후배들이 스승을 두려워하지 않고 존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근 불거진 국악계 성폭력 문제에 국악 내부에서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은일, 허윤정, 김희선, 이소영, 이지영, 백소망 등 국악계 대표 인사 30여명이 전통공연예술인 긴급행동을 조직하고 7일 오전 발표한
「국악계 성폭력 문제에 관한 공동성명」

에 대한 연서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10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남학생 2명이 동급생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하고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았음에도 징계 없이 졸업했다는 언론 보도를 시작으로 미성년 제자 성착취, 국립국악관현악단 소속 연주자의 강제추행, 교육대학원 국악교육전공 강사 강제추행 사건 보도가 잇따르자 내부 인사들이 들고 일어난 것.

전통공연예술인 긴급행동에 함께한 인사들은 국악계 성폭력 문제가 곪을대로 곪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2018년 사회 각계에서 미투 운동이 터졌을 때도 국악계는 침묵했다. 좁은 국악계에서 입시와 채용 등 생존과 얽힌 문제이기에 성폭력 피해자이자 고발자라는 사실은 일종의 '낙인'으로 작용했고, 결국 가해자가 살아남고 피해자가 업계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피해자가 국악을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하는가. 피해를 말할 수 없게 만든 폐쇄적인 문화에는 국악계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호소했다.

보도된 사례들이 원로 명인부터 국립단체 단원,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데, 이들이 버젓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사제관계와 인맥으로 얽힌 위계, 남성 중심으로 형성된 연대가 가해를 덮고 가해자를 보호해 왔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전통을 계승하는 세계에서 성폭력을 덮는 관행도 함께 계승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러한 세계에서 더 이상 국악을 가르치고, 배울수 없다. 연주하고 창작하고 공연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공동성명 공개 후 하루만인 8일 오전 11시 기준 연서명자는 1900명을 넘어섰다. 국악계 종사자뿐 아니라 공연예술계와 학계, 예술교육 현장 및 사회 각 분야의 구성원, 학생 참여자도 500명이상으로 집계됐다. 연서명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으며, 국악계를 넘어 예술계 전반과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과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통공연예술인 긴급행동은 공동성명 공개 이후 연서명 참여 규모와 명단을 지속적으로 집계·공개하고 있다. 연서명 현황과 명단은 참여자의 공개 동의 범위에 따라 전통공연예술인 긴급행동의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계속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연서명은 국악계를 넘어 예술계 전반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는 제도와 문화가 여전히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지 다시 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 참여자들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뒤 피해자가 직접 공론화하거나 공개적으로 고발해야만 대응이 시작되는 구조를 바꾸고, 피해자의 목소리가 드러나기 전에도 작동하는 상시적인 보호·예방·조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통공연예술인 긴급행동이 공동성명을 통해 요구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폭력 가해에 엄정한 책임을 묻고 피해자와 연대할 것을 촉구했다. 학교와 소속 기관, 예술단체는 피해 제기를 접수할 경우 신속하고 독립적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확인된 성폭력에 상응하는 징계와 후속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둘째, 국악계가 외면해 온 잘못을 직시하고 내부에서 자성과 반성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성폭력을 개인의 일탈로만 돌릴 경우, 피해를 말하기 어렵게 만든 입시·채용·추천·섭외의 관행과 위계적 구조는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셋째,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당국, 국공립기관과 예술단체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학교와 대학, 개인레슨, 국공립단체와 공연 현장을 아우르는 실태조사, 독립적인 신고·상담 창구, 조사 과정에서의 이해관계자 배제, 미성년 피해자 보호조치, 사제 간 개인레슨 운영 기준과 예방교육, 입시·채용·오디션 과정의 이해충돌 관리 기준 등을 구체적인 과제로 제시했다.

앞으로 전통공연예술인 긴급행동은 공동성명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어가면서 국악계와 전통공연예술계의 성폭력 실태와 구조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할 예정이다. 또한 현장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는 포럼과 토론회를 개최하고,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제언 및 관계 기관에 대한 대책 마련 촉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긴급행동 공동대표이자 문체부 양성평등정책위원장을 지낸 김희선 국민대 교양대학장은 "이번 공동성명은 그간 예술계내에서 벌어졌던 권력형 성폭력에 대해 국악계가 미온적이었던데 대한 반성차원이자 앞으로 이런일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결의"라면서 "이번 연명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포럼, 스터디, 출판, 정책세미나를 통해 정책제언까지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주현 기자 yoo.juh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