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놓아준 엄마, 5분 뒤 달라진 지하철 풍경… 음악극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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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따라 한산했던 지하철 객차 통로가 열 살짜리 발달장애 아이에게는 활주로처럼 보였나 보다.
'격리'나 '소외'라는 단어로는 다 담아내기 어려운 학대와 인권유린을 겪었던 한센인들의 슬픈 과거와 오늘날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고통을 씨줄과 날줄 삼아 엮어낸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고지선의 가족이 그 하나다.
한센인들을 회색 머플러로, 발달장애 아이를 노란 모자로 표현한 연출도 섬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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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따라 한산했던 지하철 객차 통로가 열 살짜리 발달장애 아이에게는 활주로처럼 보였나 보다. 지원이는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태세였고 엄마 고지선은 순간 고민에 빠졌다. ‘아, 내가 이 아이를 놔줘야 하나, 붙잡고 있어야 하나.’ 억지로 붙잡으면 벌어질 일이 눈에 선했다. 고민 끝에 엄마는 아이를 놓아주기로 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달린다. 언제든 돌발행동이 일어나면 자신이 나서겠다는 것을 다른 승객들에게 온몸으로 보여주면서.
“열 살짜리 발달장애인이 어떤 소리를 내고 어떻게 달리는지 본 적 있으세요? 지원이는 절대로 일자로 뛰지 않습니다. 머리를 흔들면서 갈지자로 뜁니다. 아갸갸갸! 하는 소리를 내면서 뜁니다. 기분이 너무 좋다는 얘기예요!”

“사람들은요. 익숙해지면 더는 시선을 주지 않아요.”
음악극 ‘섬: 1933~2019’에서 기억에 남는 여러 장면 중 하나다. ‘격리’나 ‘소외’라는 단어로는 다 담아내기 어려운 학대와 인권유린을 겪었던 한센인들의 슬픈 과거와 오늘날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고통을 씨줄과 날줄 삼아 엮어낸다.
무대는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이 소록도에서 40여 년간 한센인들을 돌본 실화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헌신을 기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들이 만났던 한센인들의 비참한 삶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사람들의 고통에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그러한 섬이 오늘날에도 수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고지선의 가족이 그 하나다. 식당이든 극장이든 화장실이든 어디를 가든 힐끔대고 피하는 시선에 지친 장애인 가족들이 결국 제 발로 들어가는 섬이다.
작품에는 세 개의 시간이 흐른다. 1933년 일제강점기 소록도로 강제 이주된 한센인 백수선의 삶, 1966년부터 소록도에서 환자들을 돌본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삶, 2019년 서울에서 발달장애 아들 지원이를 키우는 고지선의 삶이다. 시대도 사연도 다르지만 그들을 고립시킨 사회의 편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작품은 세 시대를 끊임없이 오가면서도 극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간대가 교차하면 자칫 혼란을 주거나 이야기의 밀도를 떨어뜨리기 쉽지만 ‘섬’은 인물들의 감정과 장면을 촘촘하게 연결하며 이를 자연스럽게 극복한다. 한센인들을 회색 머플러로, 발달장애 아이를 노란 모자로 표현한 연출도 섬세하다.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자극적으로 재현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겪는 현실은 선명하게 드러낸다. 낡은 나무판자로 이어진 무대와 짙푸른 조명, 어둠 속에 떠오르는 둥근 달도 시대를 넘나드는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묵직한 사회적 주제를 공감과 감동으로 끌어올리는 힘은 서정적 음악에서 나온다. 한센인들의 비극을 노래하는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몰라서 3년, 알고서 3년, 썩어서 3년”이라는 처절한 가사를 담은 ‘세 번 죽는다’ 등이 심장을 울리고 때로는 통곡하고 싶게 만든다. 비참한 역사를 다룬 노래와 평범한 일상의 온기를 담은 노래가 대비를 이룬다.
배우들 호흡도 좋다. 노동운동가 전태일을 그린 ‘태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을 다룬 ‘백인당(百人堂) 태영’까지 ‘목소리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장우성 작가·이선영 작곡가·박소영 연출가와 세 작품에 모두 출연한 백은혜 등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팀워크가 무대 곳곳에서 느껴진다. 2019년 초연, 2024년 재연을 거쳐 세 번째 시즌을 맞은 작품이 공연 때마다 호평받은 이유 중 하나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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