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파운드리인가 ②] 분사 후 고객사 3배…삼성 파운드리, ‘HPC 66%’로 체질 바꾼다
스마트폰 AP 의존 벗고 AI·HPC로 재편…매출 비중 2017년 5%서 2029년 66%로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이 격화되면서 반도체 산업의 중심축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로 이동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인한 설계·제조 분업의 필연성 속에서, 파운드리는 이제 단순 하청을 넘어 글로벌 IT 빅테크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는 관문이자 국가 안보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미디어펜은 2회에 걸쳐 파운드리 산업이 갖는 전략적 본질과 글로벌 생태계 변화를 짚어보고, 대한민국 반도체가 나아갈 길을 조명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1987년 설립 이후 40여 년에 걸쳐 제조 공정과 고객 네트워크를 구축해 온 대만 TSMC가 글로벌 시장의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체질 개선과 기술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중심의 산업 재편 속에서 독자적인 첨단 제조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은 국내 반도체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하는 핵심 기반이기 때문이다.

◆ 2017년 분사 후 고객사 3배 확대…2029년 4배 로드맵 제시
파운드리 사업은 설계자산(IP) 확보와 수율 안정성, 고객 신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고난도 영역이다. 삼성전자는 사업부 독립 이후 팹리스 고객사 유치와 제조 공정 안정화에 집중해 왔다.
이러한 내실 다지기는 실제 지표로 확인된다. 노미정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상무는 최근 열린 기업설명(IR) 행사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에서 “현재 고객사 수는 파운드리 사업부가 독립사업부로 출범한 2017년과 비교해 약 3배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사업 초기 특정 대형 고객사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국내외 다양한 팹리스 기업들로 거래 기반을 넓힌 결과다.
삼성전자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오는 2029년까지 고객사 수를 분사 당시 대비 4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제시했다. 거시경제 둔화나 IT 수요 변동에 흔들리지 않도록 고객 풀(Pool)을 단계적으로 확장해 사업 기반을 한층 공고히 다지겠다는 전략이다.
◆ 모바일 편중 탈피…HPC 매출 비중 5%서 66%로 대전환
사업 포트폴리오의 구조적 전환 역시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삼성 파운드리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고 교체 주기가 길어지면서, 모바일 칩 중심의 매출 구조로는 지속적인 외형 성장과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고성능컴퓨팅(HPC)과 AI 반도체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파운드리 전체 매출 가운데 HPC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업부 분사 초기였던 2017년 5% 수준에 머물렀으나, 현재는 28%까지 확대됐다.
삼성전자는 이 비중을 2029년까지 66%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향후 전체 파운드리 매출의 3분의 2 이상을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와 AI 가속기 등 고성능 컴퓨팅 분야에서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노 상무는 “2029년에는 HPC 고객사가 과반을 차지하고, 매출 구조에서도 HPC가 절반을 넘어서는 구조가 정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2나노 기반 빅테크 협력 가시화…2029년 1.4나노 양산 전개
포트폴리오 전환의 중심축은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의 2나노미터(㎚) 이하 최선단 공정이다. 삼성전자는 2028년 2나노 3세대 공정 진입에 이어 2029년 1.4나노 공정을 적용한 제품 양산에 돌입하는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선단 공정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도 점차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 칩 ‘AI6’ 수주를 비롯해, 글로벌 생성형 AI 선도 기업인 앤스로픽과도 2나노 기반의 차세대 칩 개발 협력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정 파운드리 공급망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분산하고 안정적인 조달처를 확보하려는 빅테크들의 수요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 파운드리 2.0 국면…‘메모리·제조·패키징’ 일괄 공급 시너지
반도체 미세화의 기술적 난도가 높아지면서 부상한 ‘파운드리 2.0’ 흐름은 삼성전자에 차별화된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AI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대규모 연산 장치는 로직 칩과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초정밀로 연결하는 후공정 기술이 제품 성능을 좌우한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최선단 파운드리 공정과 고성능 HBM, 그리고 첨단 2.5D·3D 패키징 기술을 모두 보유한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웨이퍼 제조부터 최종 패키징까지 한 번에 아우르는 ‘원스톱 턴키(Turnkey)’ 솔루션은 공정 간 이송 시간을 단축하고 수율 안정성과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는 막대한 자본뿐 아니라 공정 제어 경험과 설계자산 생태계가 장기간 축적되어야 하는 분야”라며 “2017년 분사 이후 9년간 축적해 온 고객 저변과 모바일에서 HPC 중심의 체질 개선 노력이 2나노 선단 공정과 맞물릴 때 사업의 확장성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