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빵’ ‘카부키공제회’ 들어보셨나요 [양종곤의 노동 톺아보기]

양종곤 기자 2026. 11. 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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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출범한 사단법인 '노동공제연합 풀빵'은 전태일 정신을 계승했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등 45개 단체와 5000여 명의 노동자가 뭉쳤다.

카부기공제회도 노동자 개인의 헌신에 기댄다.

한국노총 주도로 2021년 10월 출범한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한국노동공제회)'는 기존 노조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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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 대신 ‘관계’ 로 만든 민간 공제 실험
성과냈지만, 법적 근거 없어 영세성 한계
비정규직 869만…상호부조론 지원 공백
K-노동복지회의소, 정부 주도 역할 ‘기대’
참여·재정 확보·지배 구조…세가지 난제
서울 강남의 한 번화가에서 배달 라이더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출범한 사단법인 ‘노동공제연합 풀빵’은 전태일 정신을 계승했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등 45개 단체와 5000여 명의 노동자가 뭉쳤다. 풀빵은 비정형 노동자를 위한 대안 금융을 구축했다. 신용점수 대신 노동자 간 관계를 ‘담보’로 삼았다. 667명의 노동자에게 연 3% 저금리로 총 12억 8000만 원의 긴급 생활자금을 빌려줬다. 시민과 노동계는 1구좌당 100만 원을 3년간 무이자로 신탁했다. ‘풀빵금고지기’를 통해 독자 기금을 만들고 상호부조를 실천했다.

하지만 풀빵의 성과 뒤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민법상 비영리법인에 머물러 있어 공제사업 확장에 제약이 따른다. 정부나 지자체의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회원 회비와 신탁에 주로 기대왔다. 만성적인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사단법인 ‘카부기공제회’는 차량(Car)과 우직한 거북이를 합친 이름이다. 부산·울산·경남 지역 대리기사들의 온라인 모임인 ‘카부기밴드’에서 출발했다. 2022년 1월 1일 회원 90명으로 정식 출범했다. 회원들은 매달 2만 원의 회비를 모았다. 2026년 8월까지 회원 441명에게 총 1억 9000만 원을 지급했다. 입원·수술비와 대리운전 사고면책금, 경조사비 등을 도왔다. 심야 이동이 잦은 기사들을 위해 무료 셔틀인 ‘카부기 반딧불’도 운영했다. 신입 기사를 위한 안전 직무교육도 자체적으로 열었다.

카부기공제회도 노동자 개인의 헌신에 기댄다. 상근 인력이 없어 행정 부담이 크다. 기사들은 운영비를 벌기 위해 쉬는 날에도 대리운전 ‘재정콜’을 탄다. 낮에는 공제회 일을 보고 밤에는 생업을 뛴다. 이미영 카부기공제회 공동대표는 “회원들이 먼저 노를 저어왔다”며 “실천이 이어지려면 국가와 기업도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주도로 2021년 10월 출범한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한국노동공제회)’는 기존 노조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다. 금융산업공익재단과 함께 목돈마련 응원사업을 진행했다. 건강검진을 지원하고 권익센터를 통해 법률·세무 상담도 펼쳤다. 경력·소득활동 증명 시스템도 구축했다. 20개 넘는 직종에서 회원 8000여 명을 모았다. 노조가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평가가 뒤따른다.

그러나 외형 성장에 비해 회원 자치 기반은 약하다. 혜택 중심 사업에 참여한 뒤 정작 장기 활동으로 남는 회원은 적다. 공익재단 기부금과 지자체 위탁사업에 재정 의존도가 높다. 지원기관의 결정에 따라 사업이 흔들릴 수 있다. 불연속적인 예산 속에서 15명의 사무국 인력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플랫폼·프리랜서 노동공제 제도화 방안’ 토론회 자료집에 실린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의 노동시장 분석 그림.

5일 국회에서 열린 ‘플랫폼·프리랜서 노동공제 제도화 방안’ 토론회의 자료집에 실린 사례들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모두 이들 공제회의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보고서에서 “정부가 K-노동복지회의소 설립을 논의 중인데 이 역시 민간 공제회가 아니었으면 정부 차원으로 논의를 시작하기 쉽지 않았다”며 “민간 노동공제회는 정부의 노동공제회 설립을 이끈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말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노동공제의 의의는 노동법·사회보험·노동조합이라는 세 겹의 보호망이 동시에 비는 자리를 당사자 스스로 메우고 있다는 데 있다”며 “이 공백은 ‘예외’가 아니라 구조다, 공제는 이 구조에 대한 당사자의 응답이자 신용점수가 아니라 관계를 담보로 삼는 관계금융의 실증”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시장은 전통적인 고용관계 밖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846만 명에 달한다. 사업소득세(3.3%)를 원천징수당하는 비임금 노동자는 2024년 기준 869만 명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플랫폼 종사자도 배달과 운송, IT·전문직 등으로 빠르게 번지며 90만 명 안팎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1%에 불과하고 비임금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도 1%를 밑돈다. 일하는 사람 열 명 중 아홉 명은 노동기본권과 사회보험, 기업복지의 울타리 바깥에 방치된 셈이다.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K-노동복지회의소’는 이 같은 사각지대 노동자를 위한 공적 복지·퇴직공제 전달체계다. 특정 사업주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일한 이력을 누적해 퇴직급여를 보장하고 생활안정 금융과 경력증명 등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보낸다. K-노동복지회의소가 정부 주도의 획일적인 공공기관으로 설립되면 관변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앙기구는 퇴직공제와 재공제망 같은 공적 인프라에 집중하고, 현장 복지와 조직화는 민간에 위탁하는 구조를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플랫폼 기업의 사회연대분담금을 법제화해 재원을 다원화하고, 노동자 대표가 운영에 참여하는 공익법인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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