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민주당, 트럼프 관세 폐지·이란전 종식 추진…제프리스 "의회 권한 되찾겠다"

김호성 기자 2026. 11. 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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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원 동시 장악 후 차기 지도부 구성 본격화…내년 1월 입법전 예고
생활비 부담 완화 전면에 내세워…메디케이드 삭감 철회·오바마케어 보조금 복원도 추진
제프리스, 하원 의장 출마 공식화…미국 첫 흑인 하원의장 탄생 유력
차기 미국 연방의회 하원의장으로 유력한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맡을 가능성이 높은 캐서린 클라크 의원(오른쪽)과 수전 델베네 선거운동위원장이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모두 확보한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되돌리기 위한 입법 준비에 들어갔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 폐지와 이란전쟁 종식을 차기 의회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의료보험 지원 확대와 저소득층 의료보험 예산 삭감 철회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지난 3일(현지시간)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의회 권력을 확보했다. 선거 결과를 토대로 차기 지도부 구성과 입법 의제 정리에 착수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제프리스 원내대표는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1월 3일 출범하는 제120대 의회의 하원의장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그가 차기 하원의장에 선출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제프리스 대표는 동료 의원들에게 보낸 출마 서한에서 생활비 부담 완화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책임 규명, 미국의 가치 회복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번 선거에서 확인된 유권자들의 정책 전환 요구를 차기 의회 운영에 반영하겠다는 구상이다.

◆ 관세 폐지·이란전 종식 입법 추진…생활비 부담 완화에 초점

제프리스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가장 앞세운 정책 방향은 '어포더블 아메리카(Affordable America)', 즉 국민이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미국이다.

물가와 생활비 부담이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 요인으로 작용한 만큼 민주당은 경제적 부담을 낮추는 데 의정활동의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한 첫 번째 과제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폐지를 내걸었다. 제프리스 대표는 트럼프 관세가 미국 소비자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관세로 인해 일반 가정이 매년 수천달러에 이르는 추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관세가 미국인의 일상적인 소비 비용을 높이고 있는 만큼 차기 의회에서 이를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관세정책을 둘러싼 민주당의 대응은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제프리스 대표는 관세 폐지를 위한 입법과 함께 의회의 무역정책 결정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권 행사에 대한 의회의 견제 기능을 복원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고 해서 관세정책을 곧바로 폐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를 무력화하려면 양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정책을 유지하려 할 경우 민주당의 입법 구상이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이란전쟁 종식도 주요 입법 의제로 올렸다. 제프리스 대표는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 계속 관여하는 것을 중단시키기 위한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쟁으로 국제 유가와 휘발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미국 가계의 생활비 부담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이란전쟁을 무모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선택적 전쟁으로 규정했다.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 식료품과 각종 상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특히 휘발유뿐 아니라 비료와 경유 가격 상승이 식품 가격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제프리스 대표는 선거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도 이란전쟁을 차기 의회의 주요 과제로 언급했다. 전쟁 종식은 단순한 외교·안보 현안이 아니라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해결해야 할 경제 문제라는 설명이다.

이란전쟁 관련 입법 역시 실제 통과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대통령의 전쟁 수행 권한과 의회의 권한이 맞물려 있는 데다 상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할 수 있어 민주당의 의지만으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 메디케이드 삭감 되돌리고 오바마케어 보조금 복원

의료보험 정책도 민주당이 우선적으로 손질하려는 분야다. 제프리스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뤄진 메디케이드 예산 삭감을 되돌리는 법안을 추진하고, 오바마케어(ACA)의 보험료 보조금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메디케이드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 의료보험이다. 민주당은 관련 예산 삭감이 의료서비스 이용 부담을 높인다고 보고 차기 의회에서 이를 되돌리겠다는 방침이다.

오바마케어 보조금 복원 역시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조치로 제시됐다. 민주당은 보험료 세액공제 확대를 통해 국민의 의료보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제프리스 대표는 의료보험 지원 확대를 비롯해 주거비와 공공요금, 식료품 및 에너지 비용을 낮추는 방안도 차기 의회의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민주당은 의료·주거·에너지·식료품·돌봄 등 다섯 분야에 별도 실무그룹을 구성해 구체적인 정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실무그룹은 선거 과정에서 내세운 생활비 부담 완화 공약을 실제 입법 과제로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다. 민주당은 차기 의회 출범 전까지 당내 논의를 거쳐 정책 우선순위와 추진 방안을 정리할 계획이다.

다만 복지와 의료보험 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은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이미 미국 연방정부 부채가 40조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메디케이드 예산 삭감 철회와 의료보험 보조금 복원이 재정에 미칠 영향도 변수로 꼽힌다.

◆ 민주당 지도부 세대교체…첫 흑인 하원의장 탄생 전망

민주당의 차기 의회 지도부 구성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제프리스 대표가 하원의장에 오르면 미국 역사상 첫 흑인 하원의장이 탄생하게 된다. 하원의장은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어 대통령직 승계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자리다.

제프리스 대표는 56세로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다. 뉴욕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변호사 출신으로 뉴욕주 하원의원을 거쳐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의 뒤를 잇는 민주당 차기 지도자로 평가받아 왔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자리에는 캐서린 클라크 의원(매사추세츠)이 유력하다. 현재 원내총무를 맡고 있는 클라크 의원이 제프리스 대표의 뒤를 이어 원내대표에 오르면 미국 의회 역사상 첫 여성 다수당 원내대표가 된다. 원내총무에는 피트 아길라 의원(캘리포니아)이 거론된다.

이 같은 인선이 확정되면 민주당 하원 지도부는 첫 흑인 하원의장과 첫 여성 다수당 원내대표, 첫 라틴계 다수당 원내총무로 구성된다.

클라크 의원도 생활비 부담 완화를 차기 의회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억만장자보다 노동자와 일반 가계의 경제적 부담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의료서비스 확대와 주거비·공공요금 인하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상원에서는 척 슈머 의원(뉴욕)이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 상·하원 지도부 구성이 마무리되면 민주당은 차기 의회에서 추진할 정책과 상임위원회 운영 방향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상임위원장 인선에 따른 정책 변화도 관심사다. 민주당이 상원 은행위원회와 하원 감독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원회를 장악하면 금융회사 규제와 행정부 감시 분야에서 공화당과 다른 정책 방향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상원 은행위원장으로는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캘리포니아)이 거론된다.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암호화폐 관련 규제도 한층 엄격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원 감독위원장에는 로버트 가르시아 의원(캘리포니아)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의혹과 부패 문제를 조사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 트럼프 탄핵보다 정책 전환 우선…입법 실현 가능성은 변수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책임 규명도 예고했지만, 당장 탄핵을 추진하는 데는 거리를 뒀다.

제프리스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에 대한 탄핵 추진 여부를 묻는 질문에 "하원 민주당 의원 중 그 누구도 제게 탄핵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물가 문제 해결과 행정부에 대한 책임 규명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거 직후 인터뷰에서도 정치적 보복보다 국민 생활과 직결된 정책을 우선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행정부의 부패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법과 헌법에 따라 책임을 묻겠다는 설명이다.

제프리스 대표는 공화당과의 협력 가능성도 열어뒀다. 생활비 부담 완화와 관련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면 초당적 협력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민주당의 입법 요구에 어느 정도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차지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을 넘어설 의석까지 확보한 것은 아니다. 주요 정책을 법률로 바꾸려면 공화당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관세와 이란전쟁 관련 정책은 대통령의 행정권 및 외교·안보 권한과 직접 맞물려 있어 의회 차원의 입법만으로 정책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민주당이 제시한 공약을 실제 법안으로 만들고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의회 내 협상력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민주당은 차기 의회가 출범하면 주요 입법 과제를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제프리스 대표는 새 의회에서 가능한 한 빠르게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법안 처리 일정은 당내 논의를 거쳐 확정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승리 이후 공화당 지도부 선거에 개입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공화당 지도부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차기 의회에서 민주당이 주도하는 입법 구도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이 맞물리면서 미국 정치권의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대립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