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미래 도시 그리기 숙제

윤은성 시인·기후생태활동가 2026. 11. 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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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날이었던가. 어린 시절, 미래 도시를 상상한 글을 짓거나 그림을 그려 학교에 매년 제출해야 했다. 농업을 중심으로 한 산과 들판이 대부분인 지역에서 자라면서 미래 도시가 어떠할지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 내가 그렸던 미래 도시는 농촌이 배제된 채 우주를 배경으로 존재했다. 어디서 봤음직한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첨단의 도시, 밀폐된 공간에서 자라는 작물 같은 것들이었다. 내면화된 이미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한참이 지났다. 요즘 뜻밖에도 고향 해남이 여기저기서 언급된다. 지난 8월 해남군 산이면 솔라시도에 국가 인공지능(AI) 컴퓨팅센터 건립 공사가 시작됐다. 2조5000억원이 투입되고 2028년까지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5000장이 구축될 예정이다. 해남의 넓은 부지와 재생에너지, 전력과 용수를 확보하기 좋은 조건이 데이터센터의 입지로 꼽힌다. 이미 지역 내 학교는 마이스터고로 지정돼 2028학년도부터 AI·에너지·반도체 분야 교육을 시작할 예정이다. 지역 인재를 키울 방향이 담겼겠다. 어릴 적 그렸어야 했던 미래 도시란 결국 데이터센터였을까.

나는 미래 도시를 그리면서 농촌을 그리지 않았다. 농촌은 미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그림에서 농촌은 미래를 그린 도화지 바깥에 있었다. 실제는 다르다. 데이터센터는 그 기반이 들어설 조건과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의 땅과 물, 전력망을 필요로 하면서 들어온다.

데이터센터 건립은 지역 개발의 호재로 여겨지곤 한다. 거대한 자본이 오갈 텐데 동요가 큰 것은 당연하다. 표면적으로는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감이 들 수 있지만, 그런 이익은 땅의 소유주를 비롯한 일부에게만 돌아간다. 농지를 구입하거나 임차해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다른 이야기다.

부모님은 올해 비가 오지 않아 농사에 차질을 겪으셨다. 기후위기로 농업에 필요한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데이터센터의 용수는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마련되는 것일까. 데이터센터 용수와 농업용수의 취수원이 분리돼 있다고 설명되곤 하지만, 물이 부족해지는 시대에 한 지역에서 필요한 물의 양이 계속 늘어난다면 그 선택과 우선순위는 결국 누가 결정하게 될까. 대만은 산업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이 가 농민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

한편 그 환경적 부담에는 노동자의 몸과 함께 대두되는 문제도 들어간다. 반도체 산업은 오랫동안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문제를 안고 있었다. 올해 6월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에서는 불소계 가스 누출을 동반한 화재와 TMAH 누출 사고가 잇따랐다. AI와 반도체가 미래산업으로 이야기되는 동안 노동자의 안전도, 인근으로 노출될 위험이 있는 화학물질과 방사능에 대한 대책도 중대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반도체와 AI가 한국 경제의 미래라는 말이 쏟아진다. 초광역특구법은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첨단산업의 투자와 사업화를 빠르게 하기 위한 규제특례까지 제시한다. 어릴 때 상상했던 미래는 누구의 미래였을까. 두렵다. 미래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파괴적인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는 것이.

윤은성 시인·기후생태활동가

윤은성 시인·기후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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