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은 예수회 때문에 일어났다?…‘한국인 대다수가 모르는 진짜 역사’ 주장, 사실일까
히데요시의 기독교 세력 견제는 사실…조선 침략 목적이었다는 근거 부족

1592년 임진왜란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국 내 가톨릭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라는 주장이 온라인에서 나오고 있다. 포르투갈 예수회가 조총과 화약을 독점 공급하면서 일본 영주들을 장악했고, 이를 두려워한 히데요시가 기독교 영주들을 조선으로 보내 소모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이러한 주장을 ‘한국인 대다수가 모르는 빨간약’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역사적 사실일까.
우선 예수회가 일본에 조총을 독점 공급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일본에 조총이 처음 전해진 것은 1543년이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규슈 남쪽 다네가시마에 표착하면서 화승총을 전했다.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에 도착한 것은 6년 뒤인 1549년이다.
일본은 조총을 자체 생산하기도 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군사적 우위를 확보한 데에는 조총의 역할이 컸지만, 예수회가 무기를 독점 공급해 일본 통일을 주도했다는 설명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예수회가 일본의 정치·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다. 일부 영주들은 포르투갈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과 무기를 확보하려고 기독교로 개종했다. 노부나가도 불교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선교사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예수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히데요시와 갈등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1580년 기독교 영주 오무라 스미타다는 무역항 나가사키를 예수회에 넘겼다. 예수회가 도시의 행정과 방어에 관여하면서 히데요시는 이들을 경계했다.
히데요시는 1587년 선교사 추방령을 내렸고, 이듬해 나가사키를 직할지로 편입했다. 임진왜란 발발 4~5년 전에 이미 예수회의 핵심 거점을 장악한 것이다.
문제는 히데요시가 기독교 세력을 제거하려고 임진왜란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흥미롭게도 당시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록에는 비슷한 해석이 등장한다. 예수회 선교사 알레산드로 발리냐노는 1592년 편지에서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통해 일본 영주들의 군사력을 약화하고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것은 선교사 측의 해석이다. 히데요시가 직접 밝힌 전쟁 목적은 아니다. 발리냐노가 언급한 대상도 기독교 영주들에 국한되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히데요시의 대외 팽창 야욕은 이전부터 확인된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우리역사넷의 임진왜란 항목 기술에 따르면 히데요시는 1585년 무렵부터 중국까지 정복하려는 구상을 드러냈다. 일본 통일 과정에서 성장한 무장들에게 새로운 영토와 전공을 제공하려는 정치적 계산도 침략 배경으로 거론된다.
기독교 영주 고니시 유키나가와 불교 신자인 가토 기요마사를 조선 침략의 선봉에 배치했다는 주장도 사실이다. 두 사람은 각각 일본군 제1군과 제2군을 지휘했다. 이들이 경쟁 관계에 있었다는 점도 확인된다. 그렇지만 가토를 고니시의 감시자로 배치했다거나 기독교 영주들을 제거하려고 전쟁터로 보냈다는 결정적 근거는 없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선에 출병하지 않아 병력을 보존했고,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설명도 대체로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명령을 거부하고 영지에 머물렀다는 주장은 부정확하다. 그는 조선에 건너가지 않았지만 일본군의 전진기지인 히젠 나고야에 주둔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한 고니시가 처형된 것도 기독교 탄압의 결과로 해석하기 어렵다. 당시 대립은 도요토미 정권의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이었다.
도쿠가와 막부가 기독교를 탄압했다는 설명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국적인 금교령은 1614년, 포르투갈과의 교역 중단은 1639년에 이뤄졌다. 두 정책이 모두 이에야스의 집권 직후 시행된 것은 아니다.
예수회의 무역과 군사적 영향력, 기독교 영주들의 정치적 결속을 히데요시가 경계했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선교사들의 당대 기록에는 조선 침략이 일본 영주들의 세력을 약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남아 있다.
온라인 글이 입증하지 못한 것은 그 해석이 임진왜란의 실제 결정적 원인이었다는 주장이다. 히데요시가 기독교 영주들을 제거할 목적으로 침략을 결정했다는 직접적인 사료는 제시되지 않았다. 일본의 조총 생산과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막부의 형성 과정에도 사실과 다른 설명이 포함돼 있다.
임진왜란을 예수회가 일으킨 전쟁이라고 규정하기보다, 히데요시가 어떤 이유로 유력 영주들의 군대를 동원해 대외 침략에 나섰는지를 따지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까운 접근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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