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서울의 밤을 다시 발견하다

2026. 11. 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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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밤 9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 잔을 즐기는 서울의 밤을 특별하게 여겼다.

서울의 밤은 이미 그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익숙한 공간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서울의 밤을 더욱 풍요롭게 가꿔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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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주말 밤 9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종문화회관 ‘커튼콜 가든’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너무 좋다고 했다. 무엇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냥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가을밤 재즈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시민들이 극장에서 누리고 싶었던 즐거움은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달 세종문화회관 뒤뜰에서 시작한 커튼콜 가든에는 직장인과 공연 관람객,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의 야간 경제 활성화 정책에 발맞춰 기획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찾아올지 걱정했지만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을 보며 새로운 문화 경험을 원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문득 한국을 찾았던 해외 예술가들이 떠올랐다.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를 비롯한 해외 아티스트들이 한국에서 인상 깊게 여겼던 것은 젊은 관객들의 열정, 그리고 공연 이후의 저녁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북적이는 거리에서 음식을 나누고 대화를 이어가는 문화를 즐거워했다. 2003년 재즈 거장 윈튼 마살리스와 강남의 재즈바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 잔을 즐기는 서울의 밤을 특별하게 여겼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매력적인 문화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그렇게 함께하던 저녁이 줄었다. 서울의 밤도 한동안 멈췄다. 일상이 돌아왔다고 저녁의 활기까지 저절로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제 저녁의 만남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 커튼콜 가든을 보며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마음을 채워줄 공간과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야간 경제는 상점의 영업시간을 늘리고 소비를 촉진하는 일만은 아니다. 시민에게는 퇴근 후 문화를 누릴 기회를, 관광객에게는 서울에 더 오래 머물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늦게까지 문을 여는 곳보다 하루를 마친 뒤 기꺼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장소를 찾는다. 도시의 경제를 움직이는 것도 결국 그곳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다.

서울의 밤은 이미 그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익선동과 이태원·성수동에는 저마다 다른 즐거움을 찾아 사람들이 모여든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먹고 즐기는 일상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 된다. 광화문에서도 그런 변화를 만들고 싶다. 업무를 마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자리에 음악과 만남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커튼콜 가든에서는 공연의 여운을 나누는 관객 옆에 퇴근길 직장인이 앉고, 광장을 걷던 관광객이 연주를 듣는다. 서로 다른 이유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같은 저녁을 누린다. 광화문의 익숙한 공간이 새로운 경험의 장소가 되는 순간이다.

이 새로운 경험은 지역의 이웃들과 함께 만들었다. ‘클럽 야누스’와 재즈 공연을 준비하고 지역 식음료 업체들과 협업했다. 극장의 공간에 이웃의 음악과 맛이 더해지면서 시민이 머물 이유도 풍성해졌다. 이곳에서 발견한 즐거움이 주변의 가게와 거리로 이어진다면 극장의 활기는 지역의 활력으로 번져갈 수 있다.

거리와 광장·정원에서 만나는 작은 공연이 누군가에게는 예술을 처음 만나는 계기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시간이 된다. 서울의 밤을 밝히는 것은 조명이나 늦게까지 문을 여는 상점만이 아니다. 함께 시간을 나누는 즐거움과 다시 찾고 싶은 기억도 도시의 밤을 밝힌다. 익숙한 공간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서울의 밤을 더욱 풍요롭게 가꿔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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