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톡] 이래서야 의약품 주권 지키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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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국가예방접종 공급을 약속한 빅파마가 올가을 독감 유행 초기 갑자기 내부 생산 차질을 이유로 보건당국에 일부 물량을 못 준다고 했다.
필수의약품과 관련 원·부자재를 비축해야 한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나왔다.
중요한 건 의약품 주권을 떠받치는 기업들이 사명감과 자부심을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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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약품, 부자재 대느라 노심초사
우리 제약산업 경쟁력 지키는 정책을
편집자주
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최근 독감 백신을 맞으러 간 의원 입구에 백신 제품별 가격이 적힌 안내문이 있었다. 국산은 3만 원대, 외국산은 4만~5만 원대였다. 주요 성분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하는 대로 만드니 같을 텐데, 물류비용을 감안해도 가격 차이가 꽤 난다. 제약업계에 이유를 묻자 한숨이 돌아왔다. 효능은 어차피 같지만 소비자들이 외국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여전해 병·의원들이 해외 빅파마 제품을 더 사고 가격을 높여 받는다는 것이다. 국내 제조사로선 답답한 노릇이다.
민간 시장뿐 아니라 영·유아나 고령층이 무료로 맞도록 지원하는 국가예방접종 사업에도 국내 제조사와 해외 빅파마가 제품 공급에 참여한다. 국가예방접종용 제품은 대개 민간용보다 싸게 공급하지만, 일정 수량을 정부가 구입하기 때문에 제조사 입장에선 안정적인 수익원이 된다.
그런데 국가예방접종 공급을 약속한 빅파마가 올가을 독감 유행 초기 갑자기 내부 생산 차질을 이유로 보건당국에 일부 물량을 못 준다고 했다. 가뜩이나 독감이 빨리 와 접종 수요가 커진 상황이라 정부는 부랴부랴 국내 제조사에 국가예방접종용 추가 공급을 요구해 빅파마가 펑크 낸 물량을 채워 넣었다. 덕분에 급한 불을 껐지만, 이 회사는 보상은커녕 손해가 나게 생겼다. 민간용 물량을 국가예방접종용으로 돌렸으니 예상한 만큼의 수익을 못 내게 됐기 때문이다.
정작 이 사태를 일으킨 빅파마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뒤늦게 들여온 물량을 민간용으로 돌리게 됐으니 한국과의 약속을 변경하고도 오히려 이득을 보게 됐다고 업계에선 수군거린다. 독감 백신은 국가필수의약품이다. ‘백신 주권’을 지키는 자국 기업을 이렇게 대우하니 누가 필수의약품을 생산하려 하겠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항생제나 분만유도제처럼 의료 현장에 없어선 안 될 국산 의약품도 공급 불안 상황이 끊이질 않는다. 대개 제조사가 적절한 환경을 갖춘 위탁생산업체와 계약을 맺고 물량을 확보해 의료기관에 공급하는데, 물량을 대겠다는 위탁생산업체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제조사들은 토로한다. 약가가 낮다 보니 위탁생산업체로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의약품을 만드는 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몇 차례 공급 불안 사태를 겪은 뒤 약가가 좀 올라가긴 했지만,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 언제 또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고 업계는 우려한다.
미국·이란 전쟁 초기부터 필수의약품 기업들은 수액을 담는 플라스틱 백이 부족해질 것을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프타 수급에 갑자기 위기가 닥치자 의료 현장에선 수액 대란 조짐이 나타났다. 수액은 수분과 영양 공급용이기도 하지만, 항암제 같은 약을 투여하는 데도 필요하다. 당시 수액 제조사들은 긴급히 대체 물량을 댔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필수의약품과 관련 원·부자재를 비축해야 한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전쟁 같은 상황이 아니면 대체로 공급이 원활하니 힘이 실리질 않는다. 팔아봐야 얼마 남지도 않는 제품 공급을 몇몇 제조사가 책임지느라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생산을 포기해 수입을 늘리기 시작하면 애써 쌓아온 의약품 주권이 허무하게 무너질 텐데 말이다.
물론 아무리 필수의약품이래도 무작정 약가를 올리고 비축량을 늘릴 순 없다. 중요한 건 의약품 주권을 떠받치는 기업들이 사명감과 자부심을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정책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과오가 적진 않았지만, 제약을 수출산업으로 키워온 공도 크다. 제약 역시 반도체 못지않게 중요한 미래 산업이다.
임소형 산업1부장 겸 과학전문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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