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약은 있어도 물어볼 곳 없다…'무약촌' 정책의 빈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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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가 시행 14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판매 품목과 판매처 확대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심야·휴일 의약품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정책적 필요성과 비전문가 판매에 따른 안전관리 우려가 맞서고 있다.
이에 약사공론은 그간 제기된 판매업소 관리 실태와 국정감사 주요 쟁점, 대한약사회의 국회 정책제안서 및 약사단체의 정책보고서 등을 종합해 판매현장의 안전관리 실태, 의료취약지역의 의약품 접근성, 품목 확대의 안전성 근거와 해외 제도를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이른바 '무약촌'의 의약품 접근성 개선을 명분으로 판매업소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 정책이 정작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과 주민들의 실제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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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판매기준 완화 실효성 논란…공공심야약국 등 기존 인프라 활용 필요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가 시행 14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판매 품목과 판매처 확대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심야·휴일 의약품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정책적 필요성과 비전문가 판매에 따른 안전관리 우려가 맞서고 있다.
이에 약사공론은 그간 제기된 판매업소 관리 실태와 국정감사 주요 쟁점, 대한약사회의 국회 정책제안서 및 약사단체의 정책보고서 등을 종합해 판매현장의 안전관리 실태, 의료취약지역의 의약품 접근성, 품목 확대의 안전성 근거와 해외 제도를 3회에 걸쳐 짚어본다. - 편집자주
<순서>
① 판매현장의 안전관리 ②의료취약지역의 실제 접근성 ③품목 확대의 안전성 근거와 해외제도 비교
의료취약지역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편의점의 안전상비의약품 판매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약국이 부족한 농촌지역에서 의약품을 보다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정작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의 의약품 이용 실태를 살펴보면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전국 82개 군 가운데 75개 군에서 일요일 영업약국이 확인됐고, 의료취약지역 주민 10명 중 9명 이상은 이미 가정에 상비약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상당수 주민은 의약품의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약사 상담과 약국·의료기관 이용을 위한 교통 지원에 대한 수요도 높았다.
이른바 '무약촌'의 의약품 접근성 개선을 명분으로 판매업소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 정책이 정작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과 주민들의 실제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약촌, 정말 일요일에 약을 살 곳이 없나?
농촌지역의 의약품 접근성이 얼마나 취약한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이 지난 8월 발표한 '농촌 의약품 접근성의 실태와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82개 군 가운데 75개 군(91.5%)에서 일요일 영업약국이 최소 1곳 이상 확인됐다.
조사 기준일은 2026년 8월 9일 일요일로, 확인된 영업약국은 최소 274곳이었다.
약준모는 네이버지도 검색 결과에 지방자치단체 당번약국표, 휴일지킴이약국, 공공심야약국 등 공개자료를 추가로 대조했다.
최초 지도 검색에서는 일요일 영업약국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던 14개 군 가운데 7개 군에서도 운영약국이 추가로 확인됐다.
나머지 7개 군 역시 실제 영업약국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정된 지역은 아니다. 공개자료만으로 해당 날짜의 영업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지역이다.
약국과 하나로마트의 일요일 운영시간을 비교한 결과도 주목된다.
운영시간 비교가 가능한 55개 군 중 35개 군(63.6%)에서는 확인된 약국의 가장 늦은 폐점시각이 대표 하나로마트와 같거나 더 늦었다.
31개 군(56.4%)에서는 약국의 이용 가능 시간대 범위가 하나로마트와 같거나 더 넓었다.
다만 약국의 이용 가능 시간대는 군 내 여러 약국의 가장 이른 개점시각과 가장 늦은 폐점시각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으로, 해당 시간 내내 약국이 연속적으로 운영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농촌지역에 일요일 영업약국이 전혀 없다는 인식과는 차이를 보여준다.
물론 약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민들이 필요한 시간에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약국까지의 거리와 이동수단, 실제 영업시간에 따라 접근성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매처를 늘리기 전에 기존 약국을 주민들이 얼마나 이용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집집마다 상비약은 있는데…제대로 쓰고 있을까?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이 약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대한약사회가 2026년 의료취약지역 주민 4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3.7%는 가정에 상비약을 보유하고 있었다.
상비약 보유자의 86.6%는 약국에서 직접 의약품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약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전한 사용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비약 보유자의 43.7%는 의약품의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답했고, 33.7%는 복용 전 사용기한을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이나 이웃이 먹던 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43.0%에 달했다. 특히 80세 이상에서는 부작용과 주의사항을 알지 못한다는 비율이 62.0%로 높았다.
고령층은 만성질환으로 여러 의약품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의약품을 추가로 사용할 때도 기존 처방약과의 중복 여부나 약물 상호작용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가정에 보관된 의약품은 이러한 점검에서 벗어나기 쉽다. 의약품을 쉽게 구입하는 것 못지않게 이미 보유한 의약품을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돕는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다.
주민들은 편의점보다 무엇을 원할까?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서도 판매처 확대와는 다른 요구가 확인됐다.
대한약사회 조사에서 응답자의 82.4%는 약사가 가정 내 상비약을 점검하고 상담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별도로 실시된 경기지역 주민 88명 대상 조사에서는 95.2%가 약사의 의약품 확인과 복용법 안내가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갑자기 의약품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는 75.4%가 '교통 지원을 받아 약국이나 병원을 이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는 전문가 상담서비스(38.2%)와 교통 지원(35.3%)이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반면 편의점 이용을 1순위로 선택한 응답은 1.4%에 그쳤다.
두 조사는 대상과 문항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 어렵고, 특히 경기지역 조사 결과를 전국 의료취약지역 주민의 선호도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조사 결과는 의약품 구매 장소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 외에 기존 약국과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중요한 정책 대안임을 보여준다.
특히 약사 상담에 대한 높은 수요는 가정 내 보유 의약품 점검과 방문형 복약상담 등으로 정책의 범위를 넓힐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약국 없는 곳, 정말 대안이 없나?
약국이 없는 지역에 이미 설치된 공공보건시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약준모 보고서는 별도의 지도 기반 분포자료에서 하나로마트는 있지만 약국은 없는 것으로 분류된 전국 275개 읍·면의 공공보건시설 현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270개 읍·면(98.2%)에서 보건진료소가 확인됐고, 나머지 5개 면에서도 보건지소가 확인됐다.
약국이 없는 지역에도 공공보건시설이 상당수 설치돼 있다는 의미다.
다만 보건진료소와 보건지소는 의약품 취급 범위와 운영시간에 제한이 있어 일반약국의 역할을 그대로 대신할 수는 없다.
약사사회는 이와 함께 공공심야약국 확대를 의약품 접근성 개선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한약사회가 지난 10월 국회에 제출한 정책제안서에 따르면 당시 전국 146개 시·군·구에서 공공심야약국 321곳이 운영되고 있었다.
공공심야약국은 의약품 공급뿐 아니라 약사의 복약상담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의료취약지역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 공공보건시설의 운영 실태와 공공심야약국 확대 가능성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약사사회의 주장이다.
편의점 늘리면 심야 의약품 공백도 줄어들까?
정부가 추진하는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업소의 24시간 운영기준 완화는 의료취약지역에서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를 늘리겠다는 취지다.
현행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는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시간에도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판매업소의 24시간 연중무휴 운영을 등록기준으로 두고 있다.
이 기준을 완화하면 기존에 등록하지 못했던 판매업소가 새롭게 진입할 수 있다.
문제는 판매업소가 늘어나는 만큼 실제 의약품 구매 공백도 줄어드느냐다.
주간에만 운영하는 편의점이 새롭게 등록한다면 낮 시간대 의약품 구매 편의는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심야시간의 구매 불편은 여전히 남을 수 있다.
반대로 기존 약국이나 의약품 판매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새로운 판매업소가 주민들의 구매 편의를 높일 가능성도 있다.
결국 판매업소 확대의 효과는 지역별 약국 분포와 운영시간, 주민들의 이동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한약사회는 공공심야약국과 휴일 운영약국 활성화, 교통 지원, 방문형 복약상담, 가정 내 보유 의약품 점검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의료취약지역의 의약품 접근성 개선을 위해 정부가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판매업소가 얼마나 부족한지가 아니라 주민들이 실제로 약을 구하지 못하는 지역과 시간대가 어디인지다.
24시간 운영기준을 완화해 새로 등록하는 편의점이 정작 약국이 문을 닫는 시간에도 운영할 것인지, 기존 약국과 공공보건시설을 활용하는 방안보다 의약품 접근성 개선에 효과적인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