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연세대 양자컴퓨터 ‘두뇌’ 바꿨다… “희귀질환 연구 활용”

“우와, 신기하다!”
4일 낮 12시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 양자컴퓨팅센터. 유리벽 앞에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로·세로 각각 2.7m의 유리 공간 안에는 거대한 원통형 기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언뜻 보면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 같지만,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IBM이 개발한 양자컴퓨터 ‘퀀텀 시스템 원’이다. 2024년 11월 국내 최초로 도입된 이 컴퓨터는 이날 ‘두뇌’를 새것으로 바꿔 달았다. 양자컴퓨터의 핵심 칩을 교체한 것이다.
연세대는 이날 ‘차세대 양자컴퓨팅 플랫폼 가동식’을 열고 IBM의 최신 양자 프로세서인 ‘나이트호크 R2’를 장착한 양자컴퓨터를 공식 가동했다. 양자 프로세서는 일반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처럼 계산을 담당하는 핵심 부품으로, 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한다. 기존에 쓰던 ‘이글’이라는 프로세서를 IBM이 개발한 가장 빠른 양자 프로세서인 ‘나이트호크’로 교체했다. 미국 렌셀러폴리테크닉대(RPI)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이자 미국 밖에서는 최초로 도입됐다고 한다.

양자컴퓨터는 일반 컴퓨터와 계산 방식부터 다르다. 일반 컴퓨터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정보를 0 또는 1로 처리한다면, 양자컴퓨터는 0과 1은 물론 두 상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중첩’까지 가능해 동전이 수직으로 선 상태까지 표현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계산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
이번에 도입된 나이트호크는 초당 10만회 이상 양자 계산 절차를 실행할 수 있다. IBM에 따르면 기존 ‘이글’보다 계산 작업 처리량이 25배 늘었다고 한다. 계산에 사용하는 큐비트 수는 기존 127개에서 120개로 오히려 줄었다. 비결은 큐비트 사이의 ‘길’을 넓힌 데 있다. 기존에는 멀리 떨어진 큐비트끼리 정보를 주고받으려면 여러 곳을 거쳐야 했지만, 새 프로세서는 큐비트들을 바둑판처럼 연결해 이동 경로를 줄였다. 도시의 도로망을 정비해 목적지까지 돌아가는 길을 줄인 것과 비슷한 원리다. 계산의 정확도를 유지하면서도 더 많은 작업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리 차우 IBM 양자중심슈퍼컴퓨팅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나이트호크는 IBM이 개발한 가장 빠른 양자 프로세서”라며 “계산의 정확도를 유지하면서 처리 속도를 크게 높였다”고 말했다.

연세대가 새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려는 대표적인 분야는 신약 개발이다. 새로운 약을 만들려면 먼저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찾고, 여기에 달라붙어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는 물질을 찾아야 한다. 수많은 단백질과 화합물의 조합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만 수년이 걸린다.
연세대는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AI)을 결합해 신약 개발 기간을 줄이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신약 개발 표적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존 1~2년에서 5개월로, 화합물의 약물 적합성을 높이는 선도 물질 최적화 기간은 4년에서 2년으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연세대는 차세대 양자컴퓨터를 희귀 난치병인 ‘리 증후군’ 연구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리 증후군은 세포가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 문제가 생겨 뇌와 신경 등에 이상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연세대는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수퍼컴퓨터 ‘후가쿠’와 양자컴퓨터를 연결해 질병의 원인을 연구할 예정이다. 기존 수퍼컴퓨터와 양자컴퓨터가 각자 잘하는 계산을 나눠 맡긴다고 한다.
연세대는 2024년 양자 컴퓨터를 처음 도입한 이후 연간 약 2000명에게 양자 관련 교육을 진행했으며, 최근 1년 반 동안 물리·화학·금융·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자 알고리즘을 활용한 연구 논문 100편 이상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정재호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은 “지난 2년이 양자 컴퓨터를 도입하고 활용 방법을 익히는 ‘시즌 1’이었다면 이제는 실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시즌 2’로 넘어가는 것”이라며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 난치병 치료 등 인류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하는 데 양자 컴퓨터가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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