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맛, 아내의 밥상이 그리운 시대 [‘난임 전문의’ 조정현 원장의 자자손손]

2026. 11. 4.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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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밥 한 끼 먹기가 참 편해졌다.

이제는 남편이 아내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줄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차려준 밥 한 끼의 기억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물론 따뜻한 밥 한 끼나 감동이 정자의 질을 높이고 난자의 건강을 개선한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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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을 얻은 식탁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요즘은 밥 한 끼 먹기가 참 편해졌다. 냉동실에서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 완성된다. 국도, 찌개도, 반찬도 마찬가지다. 포장지만 뜯으면 웬만한 식당 못지않은 한 상을 차릴 수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은 물론이고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서도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이제 밥을 짓는 일보다 데우는 일이 더 익숙한 시대가 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먹을 것은 넘쳐나는데 그리운 맛은 점점 많아진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찌개, 아내가 정성껏 차려주던 저녁상, 별다른 반찬도 없었지만 유난히 맛있었던 그 밥 한 그릇이 문득 생각난다. 그 시절 음식이 지금보다 특별히 맛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음식에 담겨 있던 무언가를 우리가 잃어버린 것일까.

●음식은 영양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난임환자를 진료하면서 음식과 건강의 관계에 관심을 가져왔다. 임신을 준비하는 부부에게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떤 생활습관을 바꿔야 하는지 설명하는 일도 진료의 일부다. 그런데 최근에는 무엇을 먹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먹느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최근 중국 연구진은 남성의 몸속 미세플라스틱 노출 지표와 정자 운동성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특정 미세플라스틱 지표가 높을수록 정자의 운동성이 낮아지는 경향이 관찰됐고, 장내 미생물의 변화가 그 관계에 관여할 가능성도 제시됐다. 물론 관찰연구이므로 미세플라스틱이 정자 운동성을 떨어뜨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매일 먹고 마시고 사용하는 것들이 우리 몸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 우리는 음식을 지나치게 편리하게 먹는 데 익숙해졌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을 데우고, 일회용 포장을 뜯어 식탁에 올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환경호르몬이다. 일부 플라스틱 관련 화학물질은 남성의 몸에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비슷하게 작용하거나 남성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할 수 있다. 이러한 호르몬 교란은 정자 생성과 생식기능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모든 플라스틱 용기가 위험한 것은 아니며, 전자레인지용으로 적합하게 만들어진 용기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편리함이 식생활의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

●엄마 손맛의 비밀은 사랑이었을까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밥상을 떠올려 보자. 그 시절에는 영양성분표도 없었고,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비율을 따져가며 밥을 짓지도 않았다. 제철 나물에 된장국 하나, 김치 한 접시가 전부인 날도 많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밥상을 오래 기억한다. 아내의 밥상도 그렇다. 가족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누가 속이 좋지 않은지 살피고, 때로는 입맛 없는 사람을 위해 국 하나를 더 끓인다. 같은 된장찌개라도 누구에게는 두부를 넉넉히 넣고, 누구에게는 조금 싱겁게 끓인다. 그 작은 차이가 집밥의 맛을 만든다.

물론 집밥이라고 모두 건강한 것은 아니다. 짜고 기름진 집밥보다 영양 균형을 갖춘 간편식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어머니의 손맛이나 아내의 정성이 특별한 의학적 효능을 갖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고 마음을 나누는 방식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함께 먹는 밥상이 사라지고 있다 요즘 진료실에서 만나는 젊은 부부들은 참 바쁘다. 맞벌이에 야근까지 하다 보면 저녁을 함께 먹기도 어렵다. 남편은 편의점에서, 아내는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는 날이 많다.

난임치료는 약과 주사, 시술만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충분한 수면과 적절한 운동, 균형 잡힌 식사, 부부가 서로의 마음을 살피는 시간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함께 밥을 먹으면 임신이 잘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힘든 치료 과정을 견디는 부부에게 따뜻한 밥 한 끼가 작은 위로가 될 수는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내의 맛은 여성이 부엌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평생 밥을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이제는 남편이 아내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줄 수도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밥을 짓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생각하며 밥을 짓느냐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밥상이 아니라 마음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숫자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정자 수와 운동성, 호르몬 수치와 배아의 등급은 측정할 수 있지만, 식탁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이 나누는 따뜻한 마음까지 검사할 수는 없다.

세상은 점점 편리해진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식단을 짜고 로봇이 음식을 만드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차려준 밥 한 끼의 기억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오늘 저녁에는 냉동실 문을 열기 전에 한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가족을 위해 직접 밥을 지은 날이 언제였는지, 누군가와 마주 앉아 천천히 식사한 날은 언제였는지.

사람의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누군가 자신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는 감동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서로를 더욱 가깝게 만든다. 이러한 정서적 친밀감은 남녀 모두에게 성적 욕구, 즉 리비도(libido)를 북돋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성욕과 성적 친밀감은 부부의 생식생활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따뜻한 밥 한 끼나 감동이 정자의 질을 높이고 난자의 건강을 개선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임신을 준비하는 부부에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소중한 요소다.

어쩌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엄마의 맛, 아내의 맛은 음식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밥을 차려주던 사람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던 시절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밥은 전자레인지로 데울 수 있지만, 사랑은 전자레인지로 데울 수 없다.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음식이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리고 생명의 시작에도 그 따뜻한 마음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조정현 원장/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학술전문위원, 현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연세대 의대 졸업, 전 강남차병원 교수, 전 미즈메디강남 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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