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파리가 불타고 있다. 불길은 금방 꺼질 수도 있고, 오래갈 수도 있다. 파리만 불타고 있는 게 아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의 주요 도시에서도 불꽃이 튀고 있다. 연일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발생하고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다. 혁명의 도시 파리가 신호탄을 쏘아올린 대중 반란은 열악한 교육 환경이라는 이슈로 시작됐다. 그러나 곧 높은 물가와 낮은 임금, 부족한 공공서비스, 후퇴하는 사회복지,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 등 다양한 이슈들이 맞물리면서 확산됐다. 생활고와 차별에 시달리는 청년들과 빈곤층이 속속 시위에 가세하고 있다.
프랑스혁명의 이념과 공화국의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 삶에 지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이를 국가가 진압하는 모습이 내전을 방불케 해 놀랍다. 또한 사회당 출신으로 중도주의적 정치 플랫폼을 만들고 개혁의 아이콘을 자부해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대중 봉기와 극우 및 극좌의 약진 앞에서 완고한 권위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놀랍다. 그러나 잘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크롱은 ‘부자들의 대통령’으로 비난받아왔고, 그의 신자유주의적 긴축 정책은 빈부 격차를 극적으로 심화시켰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유명한 표현을 빌리면, 국가의 ‘오른손’(치안, 군대, 관료)을 늘리고 ‘왼손’(교육, 의료, 공공서비스)을 잘라낸 격이다. 그리고 분출하는 대중의 불만과 반대파의 비판을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억눌러왔다. 오늘날 프랑스의 감옥은 만원이며, 복지국가는 형벌국가로 대체되는 중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우고 팔레타도 마크롱 집권기를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의 최고 국면이라고 규정한다. 나아가 그런 정책의 결과로 ‘파시즘화’ 과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랄한 지적도 덧붙인다. 2017년 첫 집권 직후 마크롱 정부는 반테러리즘 법안을 통해 가택 체포와 사법 심사 없는 행정 단속 등 비상사태에서의 권위주의적 조치들을 일상적 법규로 전환했다. 또한 경찰의 재량권을 확대하고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안들도 권위주의의 전형적 사례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팔레타는 마크롱과 그의 내무장관이 공교롭게도 ‘법치국가’를 말해야 할 자리에 (불어로는 발음이 비슷한) ‘비상사태’로 잘못 말한 것을 가리켜 무심코 본심을 드러낸 말실수라고 꼬집는다.
현대 국가에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발동되는 비상 권력이 내재해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를 계기로 비상사태가 선포된 바 있고, 공식 선포는 없더라도 2018년 ‘노란 조끼’ 시위나 2023년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서 사실상 비상 권력이 실행됐다. 시위 진압에는 ‘비살상 무기’로 분류되지만 신체의 영구 손상과 살상도 가능한 (다른 유럽 경찰은 사용하지 않는) 스팅볼 수류탄 등이 사용되기도 했다. 반인종주의 단체도 해산됐고 좌파 원내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해산 요구도 제기된다. 지금 당장 비상사태가 선포돼도 이상할 게 없다.
물론 억압적 조치들이 조금씩 쌓여 저절로 파시즘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프랑스 국가의 권위주의적 각질화가 파시즘이 등장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사실이다. 실상 많은 관찰자들은 작금의 사태로 가장 득을 볼 정치 집단이 극우파일 거라고 본다. 이들은 무질서에 대해 불관용을 요구하고, 사회문제를 인종화하며 그 책임을 이민자와 무슬림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인기를 얻고 표몰이를 할 수 있다. 이처럼 억압적 권위주의의 가속화로 그동안 쌓아온 민주주의와 자유가 후퇴하면서 우리의 기차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돌진하고 있다. 파시즘은 그 파국의 얼굴 중 하나다. 파국은 프랑스만의 문제도 아니다. ‘파시즘화’의 징후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화재 경보를 울리고 비상 브레이크를 걸 때다.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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