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호주·EU “조율된 대북제재 필요” 거듭 요청에도 한국은 불참

김경진 2026. 11. 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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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낸스 가상자산 탈취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사이버 범죄와 불법 외화벌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호주·유럽연합(EU)과 함께 지난달 추가 대북 독자제재를 추진하면서 한국에도 여러 차례 동참을 요청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첫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 결의 1718호를 채택한 뒤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개발에 대응해 대북제재를 거듭 강화했습니다.

MSMT 참여 11개국과 EU가 함께 발표한 성명은 미국·호주·EU의 제재 조치를 설명하고,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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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낸스 가상자산 탈취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사이버 범죄와 불법 외화벌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탈취한 가상자산과 해외 노동자의 수입 등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줄로 활용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판단입니다. 제재를 피해 확보한 자금이 무기 개발을 뒷받침하고, 북한은 다시 새로운 외화벌이 수단으로 제재를 우회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호주·유럽연합(EU)과 함께 지난달 추가 대북 독자제재를 추진하면서 한국에도 여러 차례 동참을 요청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유사입장국들이 시기를 맞춰 ‘조율된 제재’를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의 참여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정부 내 이견 속에 우리나라는 제재 공조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이후 미국·호주·EU의 제재 조치를 설명하고 대북제재 이행 의지를 재확인한 공동성명에는 참여했지만, 참여 사실을 알리는 별도 보도자료는 배포하지 않았습니다.

2024년 3월 UN 안보리에서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에 반대하는 러시아 대표


■ 러시아 거부권으로 사라진 유엔 감시망…한국 등 11개국이 만든 MSMT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첫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 결의 1718호를 채택한 뒤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개발에 대응해 대북제재를 거듭 강화했습니다. 무기 거래와 금융 활동, 주요 품목의 수출입 등을 제한하고, 해외 북한 노동자의 송환도 요구했습니다. 제재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조사하는 역할은 대북제재위원회를 지원하는 전문가패널이 맡았습니다. 2009년 설치된 전문가패널은 북한의 제재 위반과 회피 실태를 조사해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그러나 북러 군사협력이 심화하던 2024년 3월 러시아가 전문가패널의 임기 연장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패널은 그해 4월 말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대북제재 결의와 제재위원회는 유지됐지만, 위반 실태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던 감시 체계에 공백이 생긴 겁니다.

이에 한국이 설립을 주도하고 미국·일본·영국·호주·뉴질랜드 등 11개국이 참여한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 MSMT(Multilateral Sanctions Monitoring Team)가 2024년 10월 출범했습니다. 유엔 밖에서 참여국 간 정보 협력과 공개 자료 분석을 통해 대북제재 위반·회피 실태를 조사하고 공개하는 체계입니다. MSMT는 지난해 5월 북러 불법 군사협력을 다룬 첫 보고서에 이어, 같은 해 10월 북한의 사이버·정보기술(IT) 인력 활동을 다룬 두 번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올해 9월 16일 나온 세 번째 보고서의 주제는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한 제재 위반과 회피였습니다. 보고서는 북한 노동자 약 3만 5,600명에서 10만 1,280명이 최소 17개국에서 활동하며, 지난해 4억 5천만~8억 달러의 수입을 창출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2024년 10월 MSMT 출범 당시 외교부에 모인 참여국 주한대사들


■ "유사입장국의 조율된 제재 필요"…한국에 거듭 동참 요청했지만 불참

KBS 취재를 종합하면, 세 번째 보고서가 나온 뒤 미국을 중심으로 추가 독자제재를 위한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과 사이버 활동 등을 통해 확인된 불법 수익 창출망에 대응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미국의 제안에 호주와 유럽 국가들이 호응했고, 이들은 한국에도 여러 차례 제재 동참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10월 중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ies)들이 '조율된(coordinated) 제재'로 보조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직접 노출된 당사국이자 MSMT 설립을 주도한 한국이 함께해야 한다는 뜻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교부는 독자제재안을 검토했고,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이를 제시했습니다. 조 장관은 이 자리에서 미국 등 우방들의 동참 요청과 제재 공조 필요성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시는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건 이후 대북 대응 방안을 논의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조 장관은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을 겨냥한 독자제재를 대북 안보 조치의 하나로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정 장관은 북한의 사이버 활동에 대한 제재를 지뢰 사건 대응과 연결하는 데 무리가 있고, 한국이 추가 독자제재에 나서더라도 실효성이 낮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반대 의견을 설명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대북제재의 효과에 회의적인 인식을 드러낸 대목도 언급했습니다.

정 장관은 지난달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도 반대 입장을 공개했습니다. 정 장관은 "한국이 제재를 해 봐야 실효성도 없는 데다가 또 지뢰사고 문제와는 연관성도 없기 때문에 통일부 입장에서는 사이버 제재는 이것은 연관성과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 미국·호주·EU는 제재…한국 불참에 우방도 의문 표시

결국 EU는 지난달 12일, 호주는 23일, 미국은 28일 각각 추가 제재를 발표했습니다. 북한의 불법 외화벌이와 핵·미사일 개발 지원, 북러 협력에 관여한 개인과 단체 등이 대상이 됐습니다. EU는 개인 3명과 단체 4곳을 독자제재 명단에 추가했습니다. 러시아의 북한산 미사일 운용을 지원한 북한 기술자와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러시아 기업,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정제유를 운송한 해운사 등이 포함됐습니다. 호주는 북한 IT 인력의 위장취업 등을 지원한 개인 2명과 단체 2곳에 금융제재를 부과하고, 해당 개인들의 입국을 금지했습니다. 미국 재무부는 북한 IT 인력의 위장취업과 수익 이전 등에 관여한 개인 10명과 단체 1곳을 제재했습니다.

MSMT 보고서가 공개한 제재 위반·회피 실태가 실제 제재 조치로 이어졌지만, 한국은 이 시기 추가 독자제재를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의 결정은 우방 외교가에서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 등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정보공유 동맹인 ‘파이브아이즈’ 국가 대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외교소식통은 “정보공유와 대미투자, 쿠팡,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에 한미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북제재 참여를 두고도 이견이 불거졌다”고 설명했습니다.

EU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동성명. 한국과 영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홈페이지에 성명을 게재.


■ 공동성명에는 참여…외교부는 별도 발표 생략, 왜?

한국은 추가 독자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았지만, 지난달 28일 발표된 대북제재 공동성명에는 이름을 올렸습니다.

MSMT 참여 11개국과 EU가 함께 발표한 성명은 미국·호주·EU의 제재 조치를 설명하고,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는 내용입니다.

성명 첫머리에는 호주·캐나다·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네덜란드·뉴질랜드·대한민국·영국·미국과 EU가 이 성명을 공표(released)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는 참여 사실이나 성명 내용을 알리는 별도 보도자료를 배포하지 않았습니다.

공동성명은 참여국 정부가 합의한 대외 입장을 담습니다. 이를 정부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는 것은 국민에게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공식 기록으로 남기는 의미가 있는데, 이를 공개하지 않은 건 이례적입니다.

호주·캐나다·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네덜란드·뉴질랜드와 EU는 각국 정부 또는 공식 기관 홈페이지에 이번 성명이나 관련 발표를 게재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성명을 공개했습니다. 현재 공개 검색으로 자국 정부 홈페이지 게재가 확인되지 않은 곳은 한국과 영국뿐입니다. 영국이 게재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외교부는 성명을 별도 배포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KBS 질의에 "공동성명 대외 공개 방식은 각국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번 공동성명 내용이 여타국의 대북 독자제재 지정에 관한 것이며, 기존 MSMT 차원에서 발신해 온 메시지와 큰 차이가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해 별도의 보도자료를 배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 북한은 제재·성명에 반발…외교부 “독자제재안 여전히 검토 중”

북한은 추가 제재와 공동성명에 반발했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담화에서 MSMT 일부 참여국과 EU의 제재를 비난하고, 제재와 압박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로우키' 대응에 대해 조성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교수는 "국제 공조 차원에서 성명에는 참여하면서도 실질적인 제재 행위에는 자제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관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선 정부가 지나치게 북한을 의식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한국이 가장 큰 잠재 피해 당사국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인상을 주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라며 "제재는 제재대로 가고 대화 시도는 대화 시도 대로 해야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레버리지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독자제재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의 독자제재안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검토 중이며, 최종 결정은 NSC 논의를 거쳐 이뤄진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또 각국의 사정이 다르고, 한국이 공동성명에 참여해 제재 이행 의지를 확인한 것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바이낸스 사태로 북한의 해킹과 불법 자금 조달 문제가 다시 부각되면서, 독자제재안이 NSC에서 재논의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통일부는 바이낸스 사건에 대해서도 정확한 상황 파악이 우선이며, 이를 토대로 관계부처와 대응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10월 중 조율된 제재를 추진하자는 우방들의 요청에는 동참하지 않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불법 외화벌이를 둘러싼 추가 대응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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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kj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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