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검지애

한겨레21 2026. 11. 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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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푸르름이 짙어지면 저마다의 색으로 알록달록해진다. 한 분야에 깊이 정진해 완숙한 노란색을 띠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익혀 푸르름을 간직한 노년도 있다.

1년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수련해 초단으로 승단한 문씨는 "비행 훈련 때 보조날개·승강키·방향키의 '삼타일치'란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은 것처럼, 검도에서도 '기·검·체 일치'를 가장 중요시한다"며 "이런 공통점을 깨닫고 마음껏 죽도를 휘두르며 기합을 넣고 땀 흘리다보니 정신적 평온함을 찾게 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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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데자뷔]팔순 사부와 칠순 제자가 검을 맞대고 나누는 정… 우리 고유 무예인 ‘본국검법’ 알리기에 열정
이수엽 7단(왼쪽)과 문봉섭 초단이 2026년 10월24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의 한 공원에서 진검으로 검도의 ‘본\'을 펼치고 있다.

청춘의 푸르름이 짙어지면 저마다의 색으로 알록달록해진다. 한 분야에 깊이 정진해 완숙한 노란색을 띠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익혀 푸르름을 간직한 노년도 있다. 열정으로 타올라 붉은색을 띠기도 한다.

검으로 만난 이수엽(80) 사부와 문봉섭(70) 초단이 가을이 깊어가는 2026년 10월24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공원에서 은빛 진검을 마주한 채 검도의 ‘본’이란 겨루기를 펼쳤다. 검도 1급부터 8단까지 승단 심사에 들어 있는 본은 사전에 약속된 10가지의 기본 형식이다. ‘선도’를 맡은 스승이 각 본의 동작을 이끌어 ‘후도’인 제자가 특정한 기술로 대응하도록 상황과 기회를 만들어준다. 선도가 “이얍”이란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공격을 펼치면, 후도가 “도~”란 우렁찬 함성으로 기술을 닫는다.

전북 정읍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던 1982년 2월 친구의 권유로 검도에 발을 들인 이수엽씨는 “정읍은 물론 전북 전체에도 도장이 없어 동네 중학교 강당에서 2단인 약사님의 주도로 동호회 형식으로 검도를 배웠다”며 “45년을 이어온 검도 인생의 출발점이었다”고 돌아봤다. 오전 9시에 안경점 문을 열어 밤 10시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던 그는 새벽에 검도를 하고 일터로 가는 운동 습관으로 건강을 지켰다.

2013년 안경점을 정리하고 아들이 사는 고양시 일산으로 온 그가 검도 강좌를 운영하는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검도 수련을 이어오던 중, 2025년 1월 문봉섭씨가 이곳을 찾았다.

1978년 공군 소위로 임관해 F-86F 전투기 조종을 시작한 뒤 1990년 소령으로 예편해 민간 항공사에 들어간 문씨는, 2021년 12월 B-747-400 기장으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43년간 비행기 조종사로 일했다. 수백 명의 안전을 짊어진 점보기 기장으로서 늘 팽팽한 긴장과 집중 속에 살아온 그는, 은퇴 후 마주한 일상에서 깊은 공허를 느꼈다.

이를 씻어내려 고희를 앞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는 난생처음 검도를 배우기 위해 도장 문을 두드렸다. 당시 강좌는 전문 강사의 공백으로 2016년 7단에 오른 생활체육지도자 이수엽씨가 사범을 맡고 있었다. 두 노익장 검도인의 사제 인연은 이렇게 맺어졌다.

1년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수련해 초단으로 승단한 문씨는 “비행 훈련 때 보조날개·승강키·방향키의 ‘삼타일치’란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은 것처럼, 검도에서도 ‘기·검·체 일치’를 가장 중요시한다”며 “이런 공통점을 깨닫고 마음껏 죽도를 휘두르며 기합을 넣고 땀 흘리다보니 정신적 평온함을 찾게 됐다”고 말한다.

초단 승단 기념으로 이수엽 사부로부터 진검을 인도받은 문씨는 신라의 화랑정신을 발판 삼은 우리 겨레의 고유 무예인 본국검법을 익히고 있다. 1790년 조선 정조 때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24기 중 하나인 본국검법은 33가지 자세로 이루어져 있다. 이 검법은 4단 승단 때까지 심사 과목이기도 하다.

이수엽 사부는 조선세법을 익혀 이를 후학에게 가르치고 펼쳐 보이는 데 열심이다. 조선세법은 명나라의 모원의가 펴낸 ‘무비지’에 자국의 검술이 부족함을 한탄하며 ‘조선에서 빌려온 검보’라며 수록한 것에서 유래한다. 검을 기본으로 창·대도·봉 등 여러 병장기에 적용할 수 있는 검술로 역시 ‘무예도보통지’에 실렸다.

두 사제는 일본이 검도를 세계화하면서 검도가 일본에 뿌리를 둔 것으로 아는 대중에게 우리 고유의 검술과 검법을 많이 알려 검도가 더 큰 사랑을 받게 하는 것에 뜻을 모았다. 사제 연을 맺은 지 한참 뒤에야 둘 다 전주공고를 졸업한 선후배임을 알게 된 이들은 2026년 10월17일 동문가족축제에서 검도의 본과 조선세법을 함께 시연하기도 했다.

검도에는 칼을 맞대며 정을 나누는 ‘교검지애’란 문화가 있다. 이수엽 7단은 “오랜 수련으로 얻은 유익함을 후배들과 나누고 즐겁게 수련하도록 돕는 것이 기쁨”이라고 말한다. 문봉섭 초단도 “힘으로 젊은이들을, 기량으로 고단자를 이길 수는 없다”며 “승패보다는 배우는 자세로 인격 수양을 하며 교검지애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청춘의 도전 정신과 열정을 잔뜩 품은 이들은 아직 인생의 가을에 채 들어서지 않은 것 같다. 푸르름이 극에 달한 늦여름쯤일까? 이수엽 사부가 필자에게 묻는다. “검도 배워보지 않겠습니까?”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이수엽 7단이 진가검(날을 벼리지 않은 진검)으로 조선세법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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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봉섭 초단이 진검으로 본국검법을 펼치고 있다. 사고를 막으려고 날에는 테이프를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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