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위기 속 수백 년 넘게 탑 지킨 마을 주민 모두 문화유산···‘옥천 마을 탑제’ 충북도무형문화유산 지정된다[현장]

“없애지 말고 이어가야죠. 우리 마을이 남아있는 한 계속 유지하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지난 3일 충북 옥천군 안남면 지수2리에서 만난 신현제 이장(72)이 돌탑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2.5m 크기의 돌탑은 400년 된 당산나무와 함께 굳건히 이 곳을 지키고 있었다.
신 이장은 돌탑을 돌아보며 나뭇가지와 낙엽 등 주변을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돌탑과 당산나무에는 주민들이 올해 초 직접 꽈 만든 새끼줄이 촘촘하게 둘러쳐져 있었다.
소멸 위기 속에서도 묵묵히 탑제를 지켜온 옥천군 주민들이 무형 문화유산 전승 주체로 인정받게 됐다.
충북도는 오는 13일 무형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달 중으로 ‘옥천 마을 탑제’를 도 무형문화유산으로 최종 지정 고시할 계획이다.
옥천 마을 탑제는 특정 기예를 지닌 장인이나 보유단체를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김장’ ‘아리랑’ ‘한복’ 등과 같이 전통을 이어갈 뜻이 있는 마을 주민 전체가 전승 주체가 되는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되는 충북 첫 문화유산이다.
국가유산청과 충북도·옥천군이 2022년 진행한 ‘미래무형유산 발굴·육성사업’ 조사 연구를 보면, 옥천지역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마다 돌탑 앞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탑제를 지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제물을 마련하고 부정을 막기 위해 당산나무에 금줄을 두르고 절을 한 뒤 술과 음식을 함께 나눠 먹었다.
탑제는 수백 년간 옥천지역 마을 곳곳에 이어져 온 공동체 의례다.

수백 년을 버텨온 굳건한 돌탑도 농촌 지역 인구감소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2012년 조사 당시만 해도 옥천 9개 읍·면 231개 마을 중 탑이 남아있고 탑제를 지내는 마을은 50여곳이었다. 그러나 인구 감소와 급격한 고령화 등으로 지난 5월 기준으로 탑이 남아있는 마을은 32곳이 전부다. 이 중 탑제를 지내는 마을은 20곳에 불과하다.
탑제 전승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마을 구성원도 줄고 있다. 탑과 당산나무에 두르는 금줄은 왼쪽으로 꼰 새끼를 쓴다. 신 이장은 “보통 새끼는 오른쪽으로 꼬는데 탑에 두르는 새끼는 왼쪽으로 꼬아야 한다”며 “이 일을 하던 분이 연세가 많아져 이제는 다른 마을 사람이 대신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옥천군은 이번 무형유산 지정이 소멸 위기에 놓인 향토 신앙을 보존하고 전승을 이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공동체 종목은 충북에서 처음인 만큼 지원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
강병숙 옥천군 학예연구사는 “기존 무형 문화유산은 보유자나 보유단체에 행사비와 전승지원금을 지급했지만, 공동체 종목을 어떻게 지원할지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탑제를 이어가는 마을이 자생력을 갖추고 의례가 활성화되도록 지원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이장은 “그동안 마을에 큰 사고가 없었던 것도 다 탑제 덕분”이라며 “수백 년간 탑제를 지켜온 주민들도 이번 문화유산 지정 예고를 기뻐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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