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느린 과학에 어울리지 않는 노벨상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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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과학상은 차분했다.
이번에는 노벨상 수상자 예측으로 이름난 학술정보기업 클래리베이트의 올해 예상 후보 명단에도 우리 과학자는 없었다.
실제로 올해 물리학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할젠이 남극의 투명한 빙하에 광(光)센서를 설치해서 중성미자를 잡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던 1988년의 우리 기초과학의 현실은 암울했다.
10월의 노벨상 계절에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기초과학에 대한 비뚤어진 관심으로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배출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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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과학상은 차분했다. 생리의학상은 광(光)유전학, 물리학상은 중성미자(뉴트리노), 화학상은 비대칭 촉매가 차지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하는 ‘느린 기초과학(slow science)'이 대세였다. 인공지능(AI)이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모두 휩쓸었던 2년 전과 같은 떠들썩한 이변은 없었다. 특히 지난 30여 년 동안 생명과학과 물리학 분야의 성과에 자리를 내주는 일이 잦았던 화학도 이제는 정상을 되찾은 모습이다.
● 노벨상에 대한 우리의 관심
과학상 수상에 대한 우리의 국민적 갈증은 여전하다. 올해도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우리 모두 ‘최초의 우리 수상자’를 애타게 기다렸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는 노벨상 수상자 예측으로 이름난 학술정보기업 클래리베이트의 올해 예상 후보 명단에도 우리 과학자는 없었다. 그런데도 실낱같은 ‘기적’이라도 기대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 수상자의 가능성을 묻고, 수상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달라는 언론의 요청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언론의 관심은 아직도 우리 과학자의 수상 여부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뜻이다.
2024년 한강 작가의 수상 이후 문학상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올해 문학상을 받은 캐나다의 시인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은 단박에 뜨거운 베스트셀러가 됐다. 3대 인터넷 서점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발표 뒤 나흘 동안의 판매량이 올해 누적 판매량의 39배에 이르렀다는 소식이다. 특히 20대와 30대의 관심이 폭발적이라고 한다. 수상 업적에는 아무 관심이 없으면서 오로지 ‘우리 수상자’만 기다리는 과학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이다.
노벨 평화상에 대한 엉뚱한 국제 정치적 논란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에 수상한 평화상의 영예와 권위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락해버렸다. 이런 논란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작년에 평화상을 받은 베네수엘라의 마리아 마차도는 자신이 받은 메달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넸다. 평화상을 수여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노벨상은 양도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고, 노벨평화센터는 메달의 ‘주인’은 바뀔 수 있겠지만, 수상자의 ‘타이틀’은 바뀌지 않는다는 옹색한 해명을 내놓았다.
일본의 과학상 수상에 대한 부러움도 계속 이어졌다. 올해 화학상을 받은 소아이 겐소(硤合憲三) 도쿄이과대 교수는 일본의 28번째 과학상 수상자(외국 국적자 포함)가 됐다. 작년에 화학상을 받은 기타사와 스스무에 이어 2년 연속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이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처음 물리학상을 받았고, 2000년 이후에만 23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이제 문학상과 평화상을 포함해 32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미국·영국·독일·프랑스·스웨덴에 이어 세계 6위권의 ‘노벨상 대국’이다.
● 장수해야 노벨 과학상 받는다
올해 과학상 수상자의 평균 나이는 75세다. 수상자 6명 중 생리의학상을 받은 미국의 칼 다이서로스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이 70세를 넘었다. 화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앙리 카강은 무려 95세로, 2019년 97세에 화학상을 받은 존 구디너프와 2018년 96세에 물리학상을 받은 아서 애슈킨에 이어 역대 과학상 수상자 가운데 세 번째로 나이가 많다.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연도별 과학상 수상자의 평균 나이는 대체로 70세를 넘어섰다. 인공지능으로 화학상을 받은 데미스 허사비스(48세)와 존 점퍼(39세) 덕분에 2024년의 평균 나이가 65.4세로 떨어졌을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과학상을 수상한 79명 중 80대가 12명이고, 90대로 4명이다. 40대 이하는 허사비스와 점퍼뿐이다. 수상자의 평균 연령은 물리학 74세, 화학 68세, 생리의학 70세였다. 이제 장수(長壽)는 노벨 과학상 수상의 필수 조건이 돼버린 것이다.
노벨 과학상이 언제나 나이를 따졌던 것은 아니다. 1901년 첫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평균 나이는 51세였다. 물리학상의 빌헬름 뢴트겐이 56세로 최고령이었고, 화학상의 야코뷔스 반트호프가 49세, 생리의학상을 받은 에밀 폰 베링은 고작 47세였다. (일본은 베링과 함께 수학한 기타사토 시바사부로가 제1회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지 못한 것을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다.) 지난 125년 사이에 수상자의 평균 나이가 24세 늘어난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기적의 해’(annus mirabilis)였던 1905년에 발표한 광전효과로 1921년도 물리학상을 받았을 때가 42세였다.
수상자가 핵심 연구를 시작해서 상을 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아인슈타인에게 논문 발표 후 16년이 걸렸던 기다림의 기간이 이제는 평균 31.8년으로 늘어났다. 현대 과학이 극도로 분화되고, 난해해지면서 ‘인류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준 업적’을 가려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프레드 노벨이 유언장에 적어놓았던 ‘전년도 업적’에 대한 시상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 노벨 과학상에 대한 우리의 도전
선진국에 진입한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가 아직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노력을 게을리했던 것도 아니고, 능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다.
우리가 노벨 과학상이 주어지는 기초과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실제로 올해 물리학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할젠이 남극의 투명한 빙하에 광(光)센서를 설치해서 중성미자를 잡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던 1988년의 우리 기초과학의 현실은 암울했다.
문교부와 학술진흥재단이 대학 부설 연구소를 지원하는 ‘기초과학연구소 지원사업’ 이외에는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 사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시의 연구비로는 청계천에서 제작한 짝퉁 PC도 구입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1986년에 시작한 과학기술처의 ‘특정목적기초연구사업’도 정부의 과학기술 발전계획과 연계된 과제만 지원했다. 1992년부터 10년 동안 8개 부처가 참여해서 정부와 민간이 3조3000억 원을 투자했던 ‘선도기술개발사업’(G7)이 본격적인 투자의 시작이었다. 그마저도 신약·광대역 통신망 등 ‘제품 기술’ 과제가 핵심이었다. 국민의 정부 첫해의 국가연구개발 사업의 규모가 고작 2조7000억 원이었다.
그렇다고 절망할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산업화 기술’에 전력투구했고, ‘한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1953년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로 1주일에 1달러 수준이었던 우리가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 그 결과다. 이제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옮겨 오라고 압박하는 반도체·원전·자동차·배터리·조선 기술도 확보했다.
축구에서 월드컵 4강에 진출했으니, 야구에서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일 수밖에 없다. 물론 포기할 이유는 없다. 당장 눈앞의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인류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진정한 기초과학에 대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것은 선진국이 된 우리가 새삼 잊지 말아야 할 시대적 소명이다. 느닷없이 정체도 불확실한 ‘카르텔’을 들먹이면서 기초과학의 연구 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국가적 횡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국정과제의 장식품으로 전락해버린 과학기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바로 세워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생명복제·녹색성장·지식경제·탄소중립·인공지능이 기초과학의 뿌리를 통째로 뒤흔들도록 놓아둘 수는 없다. 궁극적인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인공지능·반도체 강국’의 꿈에 대한 냉정한 고민이 필요하다. 국민에게 생성형 AI 무료 사용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복지정책을 지향하는 ‘국가대표 AI’와 ‘AI 주권’으로는 아무도 만족할 수 없다.
10월의 노벨상 계절에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기초과학에 대한 비뚤어진 관심으로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배출이 불가능하다. 헌법 제127조에 밝혔듯이 현대의 과학기술은 ‘국민경제 발전’의 중요한 수단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자연의 섭리를 밝혀내는 기초과학까지 국정과제의 도구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노벨 과학상은 선진국의 ‘국격’(國格)의 장식이 아니라 기초과학에 대한 오랜 인내의 결과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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