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아이의 기를 살리는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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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배운 것을 시험 보지만, 삶에서는 시험으로 배운다."
그런데 내신 성적 초기화를 위해 학교를 자퇴하는 것은 합리적 전략일까? 여기 대답하려면 먼저 학교의 본질에 대해 답해야 한다.
최초의 학교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기원전 3000년께 수메르의 에두바(eduba)다.
그런데도 학교가 더욱 중요한 이유는 친구와 함께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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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교육(6) 어디서 교육하는가?

“학교에서는 배운 것을 시험 보지만, 삶에서는 시험으로 배운다.”
톰 보데트 (1955-)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문제가 발생하면 없애버리는 것을 해결책으로 여긴다. 물론 서열 경쟁의 최소화는 필요하지만, 경쟁의 경험을 아예 박탈해버리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온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는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의 사회에서는 학습을 위한 경험이라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 실패와 좌절도 미리 연습하지 못하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학교는 교육을 위해 울타리가 쳐진 특별한 시공간이다. 그 특별함은 실패에 대한 포용에 있다. 생산적 실패(productive failure)는 가장 효율적 교육 전략의 하나로 꼽힌다. 한마디로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학교는 기를 살리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기가 죽어도 보고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말 내신변경, 과목통합, 고교학점을 골자로 하는 새 교육과정이 고시되고, 작년부터 중고등학교에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내신 9등급제를 5등급제로 변경하는 것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내신의 평가 단계를 줄이는 이유는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일년이 지나 등급이 산출되기 시작하자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상위권 학생들의 자퇴가 늘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내신 등급제와 자퇴의 인과관계는 아직 명확하게 증명되지는 않았다. 제도 변화에는 이익과 손해가 동시에 뒤따르고, 불만의 목소리는 더 강하게 울리기 마련이다. 과거 1등급이 성적 상위 4%였다면 이제는 10%로 확대되었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1등급을 못 받는 경우 그 안타까움은 더 클 것이다. 그러나 4~10% 구간에 들어 1등급을 받은 경우는 조용히 만족할 것이다.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제도를 바꾸는 것은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신 성적 초기화를 위해 학교를 자퇴하는 것은 합리적 전략일까? 여기 대답하려면 먼저 학교의 본질에 대해 답해야 한다.

인류는 왜 수천년 전부터 학교를 만들었을까
학교는 인류 문명과 함께 만들어져 지속되고 있으며, 교육에 요구하는 역량은 시대 환경에 따라 변해왔다. 최초의 학교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기원전 3000년께 수메르의 에두바(eduba)다. 서기관 양성 전문학교인 에두바의 학생들은 쐐기문자와 수학을 배웠다. 이처럼 문명 초기 학교들은 지식 역량을 후대에 전승하는 장소였다. 서양 학문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고대 그리스에는 초등학교인 팔레스트라, 중학교인 김나시온, 대학인 아카데미까지 있었다. 학교(school)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여가를 의미하는 스콜라였다. 당시 학교는 여유 있는 지배층의 지적 유희를 위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까지는 권력이 정보 비대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학교는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공적 교육 도입은 근대 국가 설립 이후 시작되었으며, 이때부터 의무 교육이 제도화되면서 시민 양성이 학교의 목표가 되었다.

학교 1등이 사회 꼴등이 되는 패러독스
학교에는 일등을 할수록 사회에서 불행해지는 ‘일등 패러독스’가 있다. 얼핏 말도 안되는 것 같은 기괴한 현상의 기저에는 편향된 능력주의와 행복의 서열화가 놓여 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될 수 없다. 능력이 뛰어나면 합당한 대접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시험 성적만을 능력으로 여기는 편향은 문제가 된다. 시험이란 역량을 측정하는 수단이지 역량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의대는 부모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들이 들어온다. 물론 시험만 잘 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뻔한 말을 듣는 것이다. 일등을 많이 할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일등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열심히 시험을 봐서 일등만 밥 먹듯이 하던 아이들이 의대에 들어온다. 그런데 일등이 모여 경쟁을 하면 누군가 꼴등을 해야 한다. 일등만 하던 아이가 꼴등을 하면 그 충격은 헤어나오기가 어려울 정도다. 최근 의대 교육에서 최고의 화두인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 전무한 것이다. 일등만 해본 아이는 좌절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의대에서 교육을 통해 돕기 위해 노력하지만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것은 이미 늦은 상황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학교의 본질은?
좋은 중학교를 많이 보내면 좋은 초등학교, 좋은 고등학교를 많이 보내면 좋은 중학교,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내면 좋은 고등학교가 된다. 좋은 대학을 가는 이유는 경제적 안정을 얻고 사회적 자아실현을 하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다. 그런데 현재 인공지능의 특이점이 지나면서 사회 초년생의 직업 시장에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시험 성적의 장벽이 높았던 지식 전문직의 경우에는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 자명하다. 예측이 불확실하면 변화할 것을 찾지 말고 변화하지 않는 본질을 찾아야 한다. 학교의 본질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역량의 교육이다. 인공지능이 직업의 소멸과 탄생을 가속하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회복 탄력성이다. 회복 탄력성이 있으면 어떤 상황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되었다. 그런데도 학교가 더욱 중요한 이유는 친구와 함께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 세대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환경변화를 같이 겪어야 한다.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내신이 나쁘다는 이유로 학교를 자퇴하는 것은 합리적 결정인지 다시 고민해보자.
주철현 | 울산의대 미생물학·의학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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