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집주인이 되는 세상? 부동산 ‘87년 체제’ 바꿀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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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국정 운영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단연 부동산 정책이다. 정부는 주택공급 정례 브리핑까지 열며 약속한 150만 호 착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90년대 초, 분당·일산 1기 신도시 등 수도권에 주택 약 100만 호를 쏟아부었을 때처럼 대규모 공급이 가능하다면 이야기가 다를지 모른다.
그럼에도 2000년대 이후 역대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 비율이나 금융 규제, 그린벨트 해제 여부만 조금씩 달랐을 뿐, 모두 '87년 체제'라는 낡은 틀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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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국정 운영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단연 부동산 정책이다. 정부는 주택공급 정례 브리핑까지 열며 약속한 150만 호 착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묻고 싶다. 만약 정부가 약속한 주택공급 목표치를 전부 채운다면, 보통 사람들의 주거 문제는 해결될까?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지금도 시장에 집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에도 10억원 이상의 현금만 있다면 당장 살 수 있는 아파트가 꽤 많고, 매달 70만원 이상의 월세를 감당할 수 있다면 번듯한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공급량’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주택(Affordable Housing)이 얼마나 공급되고 유지되느냐에 있다.
5년 전 서울 송파구에 공급된 신혼부부 특별공급 사례를 보자. 2021년 6억원대에 분양된 30평형 아파트는 5년이 지난 지금 시세가 22억원으로 뛰었다. 당첨된 소수의 가구에게는 인생 역전의 ‘로또’였겠지만, 탈락한 대다수 시민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공공분양이라도 전매제한 기간이 끝나면 민간 아파트와 똑같은 시세로 거래된다. 말만 공공분양일 뿐, 한 번 분양하고 나면 공공성이 완전히 휘발되는 구조다. 오히려 신축 공공주택이 주변 집값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공급을 늘리면 집값이 잡힌다’는 통념이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1990년대 초, 분당·일산 1기 신도시 등 수도권에 주택 약 100만 호를 쏟아부었을 때처럼 대규모 공급이 가능하다면 이야기가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서울 및 서울 근교에는 개발할 땅이 없다. 더구나 인구 감소와 수도권 일극화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과거처럼 수도권 인근 개발제한구역을 풀어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선택할 수는 없다. 과거의 방식을 고집한다고 해서 현재의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1960년 28%에 불과하던 도시화율은 1990년 81%로 치솟았다. 1995년만 해도 전체 주택의 절반가량이 최저주거기준 미달이었다. 당시에는 말 그대로 ‘얼마나 많은 집을, 얼마나 빨리 짓느냐’가 곧 주거복지였다. 그 결과 2000년대 중반 전국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겼고, 2015년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는 11%까지 줄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집값은 소득 증가 속도를 아득히 추월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풀면 집값이 잡힐 것처럼 말하는 보도를 보며 청년들은 “서울엔 집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살 수 없는 비싼 집만 많다”라고 자조한다.
현재 한국의 주거 시스템은 1960~1970년대 주택공사 설립과 선분양·청약제 도입을 거쳐 1989년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한 신도시를 발표하면서 완성됐다. 민주화 직후 완성된, 이른바 ‘87년 주거 체제’다. 이 체제의 절대 목표는 ‘전 국민 내 집 마련(자가점유율 상승)’이었고, 수단은 ‘신속한 대량 공급’이었다.
그러나 4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었다.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선 지 오래고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경제는 다른 선진국과 같이 3% 이하의 저성장 늪에 빠졌고,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 역시 일부 핵심 지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2000년대 이후 역대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 비율이나 금융 규제, 그린벨트 해제 여부만 조금씩 달랐을 뿐, 모두 ‘87년 체제’라는 낡은 틀을 고수했다. 고성장과 인구 팽창기에 맞춘 옷을 저성장과 인구 감소 시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니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반복된 실패를 끊으려면 패러다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정책의 목표를 ‘얼마나 짓느냐’에서 ‘부담 가능한 주택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공급하느냐’로 전면 수정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최초 수분양자가 막대한 시세차익을 누리며 주택 가격을 올려놓고 마는 ‘로또 분양’을 멈추고, 공공이 주택을 다시 사들여 다음 세대에게도 적정 가격에 재공급하는 ‘공공선매입(다회 분양)’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물론 모든 분양 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토지수용권을 발동해 조성한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주택에 한정하여, 공공성이 휘발되지 않도록 선매입 제도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사유재산 침해’나 ‘자산 형성 기회 박탈’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 있지만, 막대한 공적 자원과 공권력이 투입된 토지에서 소수가 과도한 불로소득을 독식하는 구조를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불공정 시비를 만든다.
고성장기 ‘87년 체제’ 넘어서야
공공선매입 제도는 처음엔 기존 분양제도와 같은 가격으로 분양하여 사업비를 회수하므로 추가적인 재정이 들지 않는 구조여서, 관리 역량만 투여하면 즉시 시행이 가능하다. 가령 6억원에 최초 분양한 뒤, 입주자가 이사할 때 미리 정해둔 가격(가령 7억원)에 공공이 사들여 다음 입주자에게 그대로 재공급하는 방식이다. 일각에서는 2007년 군포 ‘반값 아파트’ 시범사업의 저조한 분양률을 실패 선례로 지적하지만, 2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주거비용이 치솟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주거 안정을 바라는 수요는 충분하며, 시세차익이 제한되는 만큼 청약 문턱을 대폭 낮추는 것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또한 공공임대를 늘릴수록 부채가 쌓여 성과가 깎이는 공기업의 현행 평가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이 구조 속에서는 공기업에 공공성 높은 주택사업을 주문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과거처럼 유휴택지 개발 수익으로 사업을 지탱하기 어려워진 만큼, 부담 가능한 주택 공급을 위해 과감한 재정을 투입하는 것도 필수다.
무엇보다 정부가 ‘모두가 집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의 자가점유율은 1980년대에 비해 오히려 떨어진 뒤, 수십 년째 60%대 내외로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이 그러한 것처럼 한국도 자가점유율의 극적인 반등을 기대하긴 어렵다.
“왜 자산 형성의 사다리를 걷어차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을 돕는 정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처럼 보통 사람들이 집을 통해 시세차익을 누리던 시대는 저물었다. ‘집을 통한 자산 증식’이란 이제 일부 소수에게만 허락된 환상일 뿐이다.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노후에 대비할 수 있는 정책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이제 정부는 국민 60%는 자가로, 40%는 세입자로 살아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임차인 비율이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35~40%이고, 독일의 경우 절반 정도가 임차인임을 감안하면 한국의 세입자 비율 역시 결코 특이하거나 이례적인 정도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임대차 시장엔 불공정과 차별이 만연하고, 임대주택 시장엔 부담 가능한 장기 공공·민간 임대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집을 사지 않더라도 불안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공공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 집 마련이라는 구호 속에 가려져 뒷전으로 밀려났던 40% 세입자의 삶을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패러다임 전환의 완성이다.
권지웅 (전 경기도 주거복지센터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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