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산더미 고철 속 '폭탄 돌리기'…제강 현장의 폐배터리 포비아[영상]

부산CBS 박중석 기자 2026. 11.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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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휴대용 선풍기와 전동 킥보드, 보조배터리 속 리튬 이차전지가 고철에 섞여 제강소로 흘러들고 있습니다. 동네 고철 행상에서부터 소상과 중상, 대상을 거쳐 제강사에 이르는 동안 배터리를 걸러낼 장치는 사실상 없고, 열폭주와 함께 한번 불이 붙으면 꺼지는 데 하루에서 이틀 가까이 걸리기도 합니다.

일반 소화기로는 폐배터리 불이 꺼지지 않아서, 원료장 곳곳에 이런 소화기를 열 대 비치했다고 한다.

원료장 벽에는 고철에서 나온 배터리 사진과 불길에 휩싸인 배터리 사진이 '열폭주 현상 발생'이라는 설명과 함께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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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배터리 포비아①]고철에 섞여 든 폐배터리가 불씨로…제강업계 '폭탄 돌리기'
이틀 가까이 탄 불, 2년 연속…YK스틸 야적장 가보니
열화상 경보 울릴 때마다 긴장…일반 소화기로는 안 꺼지는 불
쉬는 날·비 오는 날도 불안…"휴지 기간엔 대응할 근무자가 없다"
대상·중상·소상 내려갈수록 취약…"퇴근 뒤 열폭주 나면 대처 어렵다"
소방 집계 5년간 201건…업계 "자체 진화하는 불은 한 달에도 몇 번씩"
편집자 주
휴대용 선풍기와 전동 킥보드, 보조배터리 속 리튬 이차전지가 고철에 섞여 제강소로 흘러들고 있습니다. 동네 고철 행상에서부터 소상과 중상, 대상을 거쳐 제강사에 이르는 동안 배터리를 걸러낼 장치는 사실상 없고, 열폭주와 함께 한번 불이 붙으면 꺼지는 데 하루에서 이틀 가까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제강업계에서는 폐배터리를 폭탄에 비유합니다. 부산CBS는 제강업계의 '폐배터리 포비아'와 제도의 공백, 그리고 해법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3차례에 걸쳐 보도합니다.
YK스틸 야적장에서 집게차가 고철을 옮기고 있다. 박중석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산더미 고철 속 '폭탄 돌리기'…제강 현장의 폐배터리 포비아
(계속)
부산 사하구 YK스틸 야적장. 산처럼 쌓인 고철 더미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굉음을 내며 고개짓하는 스크랩 그래 풀(집게차)이 더미 한쪽을 헤집을 때마다 구부러진 철근과 전선 뭉치가 쏟아져 내린다.

집게차 기사들을 비롯해 현장 작업자들의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진 건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큰불이 난 뒤부터다.

첫 번째 불은 지난해 4월 12일 오후 11시 35분쯤 야적장 내 폐기물 더미에서 났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시간에 발생한 불은 이틀이 지난 14일 오후 7시 50분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450만원(소방추산) 상당의 재산 피해 났다. 화재 뒤처리를 위한 운영 차질을 감안하면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장시간 이어진 연기와 타는 냄새로 180건이 넘는 주민신고가 접수되는 등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업체 측의 가장 큰 부담으로 남았다.

지난해 4월 YK스틸 야적장에서 진화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화재의 기억이 잊히기도 전인 올해 8월 1차 화재가 일어난 야적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실내 원료장에서 또 불이 났다.

인근 창고에 가연성 가스가 생길 수 있는 페로실리콘이 보관돼 있었던 터라 10시간이 넘는 진화 작업은 극한의 긴장 속에서 진행됐다.  

두 번의 화재 모두 고철과 함께 야적장으로 흘러 들어온 리튬 이차전지 폐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조사됐다.

작업자들에게 폐배터리가 포비아(특정 사물, 환경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현상)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부터다.

작업자들은 폐배터리를 '폭탄'이라고 불렀다. 동네 고철상에서 소상, 중상, 대상에 이어 YK스틸과 같은 제강업체로 사슬이 이어지는 이 업계에서 이른바 '폭탄 돌리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하차 중 피어오르는 연기

야적장 한쪽에 있는 통제실에는 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모니터에는 막 들어온 고철 트럭의 하역 장면이 비친다. 검수는 영상과 육안, AI 카메라를 함께 쓴다. 집게로 고철을 앞에 쫙 펼쳐 놓고 샘플링도 하는데, 배터리가 보이면 하역을 멈춘다.

YK스틸 오성균 팀장은 "이미 내리다 보니까 연기가 나고 조그만 불꽃이 일어난 경우도 왕왕 있다"고 했다. 그런 차는 하역을 중단하고 그대로 돌려보낸다.

통제실 구석에는 특수 소화기 두 대가 서 있다. 일반 소화기로는 폐배터리 불이 꺼지지 않아서, 원료장 곳곳에 이런 소화기를 열 대 비치했다고 한다. 불을 덮어 산소를 막는 방화포와 방화수도 갖춰 놨는데, 모두 불이 난 뒤에야 쓸 수 있는 것들이다.

고철더미에서 나온 폐배터리를 한 곳에 모아뒀다. 박중석 기자


'방화수'라고 적힌 물통 옆으로 그간 골라낸 배터리와 전자제품이 쌓여 있다. 전동공구 배터리팩, 분홍색 셀 뭉치, 삭은 전장 부품이 뒤섞여 있다.

배터리가 나오면 일단 물을 채운 통에 넣어 둔다고 한다. 스스로 열폭주를 일으키거나 물기에 불이 붙는 경우가 있어서다. 전태훈 구매팀 차장은 모아둔 폐배터리는 흘겨보며 "이렇게 모아두는 것조차 불안하다"고 했다.

전 차장은 "폐배터리가 정책상 유입이 안 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계속 올라오게 되고, 저희 제강사로 수렴이 된다"며 "외형으로 구분이 힘든 것들이 계속 유입되다 보니 검수할 때도 그 부분을 유의해서 민감하게 체크하고 있다"고 했다.

열폭주 공포…쉬는 날도 불안

두 번째 불이 났던 실내 원료장. 당시 고철을 내리고 4시간쯤 지나 불이 시작됐다. 물기와 충격이 더해지면 불이 날 수 있는 리튬 이차전지의 특성을 모두 비껴간 상황에서 일어난 화재다. 지붕이 있어도, 비가 오지 않아도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원료장 벽에는 고철에서 나온 배터리 사진과 불길에 휩싸인 배터리 사진이 '열폭주 현상 발생'이라는 설명과 함께 걸려 있다. 열폭주 현상은 말 그대로 불길이 한 번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힘이 커진다는 뜻이다.

유명훈 구매팀 원료관리 조장은 건물에 사람이 없는 휴일이 더 걱정스럽다고 했다.

원료장 안에 배터리 역폭주 현상을 설명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박중석 기자


유 조장은 "공장 휴지 기간에는 화재에 대응할 수 있는 근무자가 없어서 그 부분이 상당히 불안하다"며 "배터리 자체가 소형이다 보니 눈에 안 띄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하역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찾아내려고 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다"고 했다.

그는 "비 오는 날 스파크로 화재가 난 적이 있어서, 항상 비 오는 날은 집에서 쉴 때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번쩍이는 경고등

24시간 근무자가 있는 회사 입구 경비초소에는 열화상 카메라와 함께 붉은색 비상경고등이 설치됐다.

화면이 모두 아홉 칸으로 나뉘어 떠 있는 열화상 카메라 모니터는 울그락불그락 하면서 현장의 온도를 알려준다. 앞서 다녀온 하역장과 원료장 등이 감시 대상이다.

경비초소에 있는 열화상카메라 모니터 옆에 경고등이 번쩍이고 있다. 박중석 기자


일순간 모니터 한 개가 붉게 달아오르면서 비상 경고등이 요란하게 번쩍인다.  초소 낮 근무자인 한대영씨가 가리킨 화면을 보니 굴착기 팔 부근이 158.0도를 가리키고 있다.

다행히, 화재가 아니라 기계가 달궈져 오른 수치다. 조금만 열이 발생해도 경보가 울리는 건데, 근무자들은 그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피곤하지만 경보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했다.

한씨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경보등이 울린다"며 "대부분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에 의한 것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투루 넘어갈 수 없다"고 했다.

아랫단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

같은 불안은 사슬의 맨 위에 있는 제강업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짙어진다. 철스크랩은 가정과 상가에서 행상이 모은 고철이 소상, 중상, 대상을 거쳐 제강사로 들어가는 구조다.

아랫단으로 내려갈수록 업체 수는 많아지고, 규모와 자본은 그만큼 작아진다. 불은 이 모든 단계에서 난다. 하지만, 업계 최상단에 있는 YK스틸처럼 24시간 화재 발생 여부를 감시하고 대응할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야적장 고철더미. 박중석 기자


부산에서 대상 규모의 고철 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는 "상하차와 가공 과정에서 일부는 발견되지만 발견되지 않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 화재가 나서 '아, 이게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퇴근 후에 불이 나면 무방비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10년에 한 번 불이 날지, 5년에 한 번 날지, 아예 안 날 수도 있는데 그것 때문에 경비원을 상주시키는 건 일반 업체에는 사실상 힘들다"고 한숨 섞어 말했다.

큰불 사이사이, 일상이 된 작은 불

소방당국 집계로 지난 2020년부터 5년간 전국 야적장과 폐기물 처리시설에서 폐배터리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는 201건이 발생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부산에서는 2021년과 2022년 한 건도 없던 폐배터리 화재가 2023년부터 2025년 4월 사이에만 8건 났다.

제강업계에서는 이 숫자에 잡히는 불은 일부라고 말한다. 오성균 팀장은 "대형 화재는 작년과 올해 났지만, 자체적으로 진화하는 화재는 빈도가 한 달에도 몇 번씩 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어느어느 업체에서 불이 났다는 남의 일 같지 않은 소식이 심심찮게 오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A대표 역시 "최근 들어 화재 빈도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사람들이 편리해지려고 휴대용 기기를 많이 사고, 수명이 다해 버려지는 것도 갈수록 늘어서가 아닐까"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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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CBS 박중석 기자 jspar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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