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연설문 찢던 민주당 대모, 40년만에 의원 뱃지 뗀다[김창영의 실리콘밸리 룩]

실리콘밸리=김창영 특파원 2026. 11. 4.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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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 시간)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가운데 캘리포니아에서 특히 주목받는 정치 세대교체가 있다. 미국 첫 여성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의 정계 은퇴다. 가정주부에서 출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하원의장에 오른 그는 워싱턴 정가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입지전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꼽히지만, 후배들의 중앙정치 진출 기회를 막고 위선적이었다는 평가도 동시에 나온다.

펠로시는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 타이틀을 가진 미국 대표 여성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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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정치 대모 역할 해오다 86세에 불출마
연방 건물, 기차에 이름 붙을 정도로 상징적 인물
AI 비판하면서 억만장자 부유세 부과엔 입장 안내
주식 투자 등으로 막대한 부 축적해 위선적 비판도
40년만에 물러나는 펠로시 자리 놓고 민주당 싸움
2020년 2월 4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앞) 미국 대통령의 의회 신년 국정연설 직후 박수를 치는 마이크 펜스(뒷줄 왼쪽) 부통령 옆에서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이 연설 원고를 찢고 있다. AFP연합뉴스

3일(현지 시간)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가운데 캘리포니아에서 특히 주목받는 정치 세대교체가 있다. 미국 첫 여성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의 정계 은퇴다. 그는 40년 만에 샌프란시스코 지역구 연방 하원의원 자리에서 내려온다. 가정주부에서 출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하원의장에 오른 그는 워싱턴 정가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입지전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꼽히지만, 후배들의 중앙정치 진출 기회를 막고 위선적이었다는 평가도 동시에 나온다.

펠로시는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 타이틀을 가진 미국 대표 여성 정치인이다. 1940년 3월생인 그는 1987년 6월 보궐선거에 승리해 의회에 입성한 뒤 40년 가까이 의회를 지켰다. 처음 당선된 직후 본회의에서 “에이즈 퇴치를 위해 의회에 왔다”고 밝힌 그의 연설은 지금도 회자가 된다.

펠로시는 가정주부로 살다가 47세에 정계에 입문한 뒤 2002년 미국 주요 정당에서 처음으로 하원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민주당이 2006년 하원에서 다수당에 오르자 2007년 1월 미국 최초 여성 하원의장으로 선출됐다. 공화당에 다수당 자리를 뺏기면서 2011년 1월 하원 의장직을 내려놓았다가 2019년 다시 하원의장으로 복귀했다.

2022년 12월 21일(현지 시간) 미국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아래)이 워싱턴DC 의회 연단에 들어서 카멀라 해리스 당시 미국 부통령(왼쪽)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기립 박수를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8년간 하원의장을 지내면서 공공의료보험 오바마케어(ACA)를 비롯해 여러 기후 관련 법안,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의 경기 부양책 등 굵직한 법안 통과를 이끌었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 문제에서도 중국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며 대만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하며 견제를 주도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두 번 가결했다. 2020년 2월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을 찢는 모습은 트럼프와의 천적 관계임을 나타내는 장면이었다. 그밖에도 오바마 케어 예산 삭감, 연방정부 셧다운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하며 견제 역할을 주도했다.

2022년 8월 4일 당시 미국 하원의장이던 낸시 펠로시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방문한 모습. 펠로시 의장 페이스북

펠로시는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지역 현안을 해결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퇴치 운동을 주도하고 샌프란시스코 군사기지였다가 폐쇄됐던 프레시디오를 국립공원으로 보존하도록 이끌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 주요 식수원인 헤치 헤치 저수지(Hetch Hetchy Reservoir)의 보트 운항 금지 조치를 완화하려 하자 식수원 보호를 위해 금지 조치를 유지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노숙자 문제 해결, 공공주택 개선에서도 힘썼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펠로시의 위상은 대단하다. 샌프란시스코 미션 스트리트와 7번가에 위치한 18층짜리 연방 건물은 2024년 그의 이름을 따서 낸시 펠로시 건물로 이름이 바뀌었다. 미국 노동부·보건복지부·농무부·교통부 등 연방기관들이 입주한 곳이지만 펠로시가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기린다는 취지로 헌정된 것이다.

지역 기차인 칼트레인 차량에 펠로시의 이름이 붙을 정도다. 칼트레인은 샌프란시스코·팔로알토·세너제이·길로이를 연결하는 열차로 샌프란시스코 만을 감싸는 베이 에어리어(Bay area) 남북을 지난다. 2024년 칼트레인이 디젤 기관차 시대를 끝내고 전기 열차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24억 달러(3조 2275억 원)의 전철화 프로젝트에 필요한 연방 자금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칼트레인 운영사와 지역 정치인들은 올해 3월 22일 샌프란시스코 역에서 ‘여성 역사의 달’을 맞아 CA-11 열차에 ‘낸시 펠로시 기차(Nancy Pelosi train)’ 이름을 붙이는 명명식을 열었다. 펠로시의 38년 의회 경력과 열차 현대화 사업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한 이벤트였다.

지난 6월 15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의 로렌스 역에 정차된 칼트레인 열차에 낸시 펠로시 이름이 붙어 있다. 김창영 특파원

펠로시가 샌프란시스코 일대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청년들의 연방 정치 진출 기회를 막고 지역 진보 진영에서 갈등을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그는 중간선거 준비 과정에서 특별한 입장을 내지 않다가 연방 하원의원 후보자 경선을 한 달 앞두고 홍콩 출신의 코니 챈 시의원을 지지했다. 여론조사 1위를 달렸던 스캇 위너 상원의원 측과 갈등이 커졌고, 펠로시가 평소 자신의 자리를 탐내던 위너 상원의원을 떨어트리기 위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펠로시의 딸인 크리스틴 펠로시는 다음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혀 위너 상원의원 자리를 노리고 있다.

펠로시가 정치적으로는 거센 발언을 쏟아내면서 실제로는 민감한 현안에 침묵한다는 비판도 있다. 펠로시는 실리콘밸리 최대 논쟁거리 중 하나인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개발에 반대 뜻을 펴면서도 순자산 10억 달러 이상인 억만장자에게 5% 부유세를 부과하는 방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지역에서는 남편 주식 보유 등으로 펠로시 부부 순자산이 2~3억 달러로 추정되는 가운데 민주당에서 최고 부자로 꼽히는 그가 부유층에 우호적인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펠로시 자리는 위너 상원의원 또는 챈 시의원이 차지할 전망이다. 민주당 집안 싸움이다. 두 후보 모두 연방 정부의 의료 지원 확대와 주택 부문 투자에 찬성하지만 AI 규제, 주택 부족 문제 해결 방안, 부유세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챈 시의원은 노동계 지지를 받는 진보주의자로 강력한 연방 차원의 안전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설립을 일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업인 지지를 얻는 위너 상원의원은 규제와 기술 혁신의 균형을 맞춘 안전 기준 도입을 선호한다. 챈 시의원은 임대료 지원, 기존 거주자의 주거 안정에 중점을 두지만 위 상원의원은 연방 정부 지원을 활용해 신규 주택 공급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억만장자 부유세에서도 위너 상원의원은 반대, 챈 시의원은 지지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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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김창영 특파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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