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서울 도심 맞나요?”… 1980년대에 멈춰있는 창신동
“2026년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풍경을 본다는 게 믿어지십니까.”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창신동 주택가. 전철 동대문역에서 낙산공원 방면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던 강대선 창신10구역 재개발추진준비위원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광화문과 종로 일대 빌딩숲으로부터 2㎞ 정도 떨어진 서울 도심이지만, 이곳의 시간은 1980년대에 멈춰 있었다. 그는 “창신동 전체 건물 건축연도 중앙값이 1981년”이라고 했다. 반쯤 지워진 벽화와 쩍쩍 금이 간 주택 외벽에 어깨를 부딪치며 폭 1~1.5m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10분 만에 숨이 가빠왔다.
창신동 주택가에는 지난 9월 17일 발생한 화재 흔적도 남아 있었다.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당시 소방대원들은 110m 떨어진 도로에서 소방호스를 들고 뛰어야 했다. 강 위원장은 “창신동 주택가 골목 60% 이상은 소방차 진입이 어렵다”고 했다.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7년 창신·숭인동 일대 84만여㎡(약 25만평)를 뉴타운으로 지정해 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창신동에서 30년 넘게 산 A씨는 “집 지은 지 50년쯤 됐는데 재개발된다는 말에 새로 짓지도 못하고 조금씩 고치며 살았지만 이제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창신동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도시재생으로 시간만 허비
창신동 주택가는 6·25 전쟁이 끝나고 산비탈에 피란민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경사는 10도 이상, 고도차가 최대 70m에 이를 만큼 가파른 언덕에 1950~60년대 지은 낡은 집이 빼곡한 이른바 ‘달동네’다. 안전 사고 우려나 기능 유지가 어려워 정비사업 대상이 되는 ‘노후 건축물’ 비율이 법정 기준(67%)를 한참 웃도는 95%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도로다. 창신9·10구역 내 도로 약 10㎞ 가운데 4㎞ 이상은 그랜저 차량 1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만큼 좁은 폭 2.4m 미만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도 움직였다. 2007년 창신동 일대를 뉴타운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인 2013년 없던 일이 됐다. 뉴타운을 해제하고 1호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한 것. 무분별한 개발 대신 기존 주거지를 보존하며 주거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2020년까지 7년간 도시재생 사업으로 875억원을 투입했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주민공동시설을 만들고, 담장에 벽화도 그렸다. 마을 꼭대기에 전망대를 설치하고 상점 간판도 바꿔달았다. 창신동 주민 B씨는 “무너져가는 건물에 간판만 바꿔 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담벼락 벽화도 빛이 바래면서 분위기가 더 흉흉해졌다”고 했다. 전망대를 찾는 발길도 끊겼다.
◇신통기획 기대했지만 또 위기
다행스럽게도 창신동 주민들은 2021년 오 시장 3기가 출범하면서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바로 신속통합기획이다. 서울시는 2022년 12월 창신9구역(2667가구)과 10구역(1875가구)을 신통기획 후보지로 선정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 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뉴타운 해제 이후 13년 만에 본격적인 개발의 길이 다시 열린 것이다.
그런데 최근 주민들의 꿈이 또 다시 좌초할 위기에 놓였다. 이번에는 인허가권을 쥔 종로구청에 발목이 잡혔다. 지난 6월 신청한 신탁방식 사업시행자 지정 고시를 5개월째 미루고 있는 것. 법적 요건(주민동의율 75% 이상)을 모두 갖췄지만 종로구청은 “기존 동의서 징구 과정에서 위법 행위가 있었다”며 동의서를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의서를 다시 받으려면 시간과 비용 증가로 사업성이 나빠질 우려가 높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탄원서와 호소문을 제출하고, 서울시도 3차례나 조속한 행정 처리를 요청했지만 종로구청은 요지부동이다.
추진위 측은 “구체적인 위법 사실과 전면 재징구의 법적 근거를 공개하라”면서 “주민들은 20년 넘게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기다렸는데, 더 이상의 막연한 지연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진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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