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PBR 딱지 붙은 기업 상승세 이어질까?

주가가 회사 장부상 순자산에 크게 못 미치는 저PBR 기업이 공표된 첫날, 명단에 포함된 종목 주가가 일제히 올랐다. 한국거래소가 지난 2일 공표한 ’저PBR’ 151곳 가운데 115곳이 상승 마감했다. PBR(주가순자산비율)은 시가총액을 자기자본(순자산)으로 나눈 것으로, 1배를 밑돌면 주식 시장이 매긴 회사 가치가 장부상 재산보다 작다는 뜻이다. 장부가보다 싸게 거래되는 데다 정부가 주가를 끌어올리라고 공개 압박까지 하니 저PBR 종목을 사 두는 쪽이 언뜻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명단에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들이면 돈이 묶일 수 있다. 저평가의 이유가 단기간 개선 가능한 것이라기보다 장기간 풀리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싼 이유가 해소되지 않으면 주가도 계속 바닥을 길 수밖에 없다. 이를 ‘가치 함정(밸류 트랩)’이라 부른다.
◇저PBR 명단이 끌어올린 주가
명단에 든 코스피 96곳 중 83.3%가 올랐고, 평균 2.04% 상승했다. 같은 날 코스피 전체 종목 중 69.5%가 올랐고, 평균 1.49% 상승했으니 상대적으로 많이 올랐다. 현대제철이 11.61%로 가장 많이 올랐고 롯데쇼핑 9.28%, 대한해운 9.20%, HL D&I 8.37%가 뒤를 이었다.

살 이유는 있었다. 거래소는 명단에 오른 151곳 전부를 상대로 내년 일대일 맞춤형 컨설팅을 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기관투자자가 이들 기업에 주주 관여를 늘리도록 스튜어드십 코드 지침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증권사 거래 시스템 종목명에 붙은 저PBR 태그는 내년 5월 다음 공표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압박을 받은 기업이 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를 사면 주가가 오를 수 있다.
◇저PBR 발표로 해소 안되는 저평가 이유
그런데 공표 첫날 수치를 뜯어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명단 151곳을 시가총액 순으로 줄 세우면 상위 20곳은 평균 3.61% 올랐지만 하위 20곳은 평균 0.11% 내렸다. 싼 종목일수록 더 오른 것이 아니라 덩치가 큰 종목이 상승했다. 코스닥 명단 55곳 중 63.6%가 올라, 코스닥 전체 상승기업 비율(60.5%)과 사실상 같았다.
명단 151곳의 싼 이유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지주회사 요인이다. 명단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지주회사가 17곳 있다. 자회사가 따로 상장돼 있으면 같은 사업 가치가 두 곳에 겹쳐 반영되고, 투자자는 지주회사 몫을 깎아 평가한다. 배당을 늘려도 이 구조가 그대로라면, 주가가 여전히 쌀 수밖에 없다. 둘째는 거래 부진이다. 명단 시가총액 하위 20곳은 공표 당일에도 절반만 올랐다. 살 사람이 적으면 재평가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셋째는 업황이다. 명단에 오른 코스피 96곳 가운데 철강·화학을 묶은 소재가 23곳, 건설이 든 산업재가 22곳으로 절반에 가깝다. 업황이 길게 눌린 업종은 특정 회사가 자본을 줄이고 배당을 늘려도 저평가가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업황이 돌아서야 풀린다.
기업들도 단기간 내 저평가 개선은 어렵다고 본다. 개선계획을 내면 1년간 명단 공표에서 빠지는데, 계획을 낸 62곳이 잡은 목표 시점은 대부분 2028년이다. 내년에 명단에 포함될 수도 있는데도, 목표 시점은 2년 뒤로 잡아 놓은 것이다.
◇지난 3월 급등 때도 되돌아왔다
지난 3월 18일 정부가 자본시장 체질개선 방안을 내놓았을 때도 저PBR 종목들의 주가가 뛰었다. 발표 전날인 17일 종가와 견주면 사흘 만에 10% 넘게 오른 종목이 이번 명단에 오른 151곳 가운데 23곳이다. DL이 44.7%, 한신공영이 37.4%, 동부건설이 32.5% 올랐다.
하지만 이후 저PBR 명단이 실제 공표되기 직전인 지난달 30일까지 이들 주가는 모두 되돌아왔다. 코스피 종목 16곳은 하나도 빠짐없이 시가총액이 줄었다. 영풍이 47.6% 쪼그라들었고, 롯데케미칼은 45.2%, 한신공영도 41.5% 줄었다.
되돌아온 16곳 가운데 11곳이 철강·화학을 묶은 소재와 건설이 포함된 산업재였다. 저PBR 해소 기대로 반짝 뛰었지만 업황이 풀리지 않자 제자리로 돌아왔다. 정부가 압박한다고 다 오르는 것은 아니다. 싼 이유가 그대로면 급등분은 되돌아왔다. 전문가들은 저PBR 명단에 들었다고 투자하기 전에, 해당 기업 주가가 낮은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따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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