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를 위한 개혁이 주가를 위한 정치가 될 때[류영재의 제3의 자본주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2026. 11. 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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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조원의 영업이익과 30조원의 배당 결정에도 주가는 떨어졌다. 지난달 29일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발표한 삼성전자의 주가는 장중 6% 넘게 하락했다.

전날 올해 약 100조원의 주주환원 계획을 구체화한 SK하이닉스가 이틀 연속 오른 것과 대조적이었다. 호실적만큼이나 시장이 주목한 것은 환원의 규모와 집행 일정이었다.

삼성전자도 잔여 환원 재원으로 55조~75조원을 제시했다. 최종 규모와 집행 방안은 내년 1월 말 이사회에서 확정하기로 했다. 환원의 불확실성이 투자심리를 눌렀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하락 원인을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실적은 이미 알려졌고, 전날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과 세부 실적 평가도 작용했을 수 있다.

약속한 환원을 명확히 집행하라는 요구도 정당하다. 두 회사가 대규모 투자 계획도 내놓은 만큼, 투자가 환원에 밀렸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반응이 다른 이사회에 보내는 신호는 별개의 문제다. 투자와 환원의 질보다 즉각적인 주가 반응을 얻을 발표부터 준비하라는 압력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투자는 성과보다 지출이 먼저다. 연구·개발과 인재 육성, 생산 시설과 공급망 투자는 결실까지 오래 걸리고 실패할 수도 있다. 외부 투자자가 과정과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기도 어렵다. 반면 환원 규모와 일정은 비교하기 쉽고, 시장의 평가도 즉시 내려진다. 경영진의 임기와 보상 주기가 짧을수록, 오래 걸리는 투자보다 당장 평가받기 쉬운 선택으로 기울 수 있다. 단기 투자자라고 늘 환원만 원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 기대가 오늘의 가격에 반영된다면 기업의 장기 투자도 반길 것이다. 문제는 보유 기간 자체보다 장기 투자의 질을 평가하기 어려운 정보 환경과 단기 주가에 연동된 유인 구조다. 어떤 결정이 장기 가치를 만드는가보다 어떤 발표가 지금 가격으로 보상받는가가 경영의 기준이 될 때, 기업의 투자 시계는 짧아진다.

여기에 정치의 시간표까지 겹치면 위험은 커진다. 투자자는 보유 기간의 수익을, 경영진은 임기 중의 성과를, 정부는 집권 기간의 지수를 의식한다. 정부가 특정 지수의 달성을 정책 성적표로 삼을수록 시장의 등락은 정치적 성패로 읽히기 쉽다. 세 주체의 짧은 시간표가 맞물리면,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투자를 지지할 힘은 약해질 수 있다.

주가 상승은 시장의 신뢰와 자본조달 여건 개선을 보여주는 지표다. 정책이 지속적인 기업가치 상승을 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단기 지수 성과가 정책 판단을 지배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무엇이 공정한 시장과 생산적인 투자를 만드는가보다 무엇이 당장 주가를 올리는가를 먼저 묻게 된다.

한국에서 이런 경고를 꺼내기는 조심스럽다.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와 불공정한 자본거래, 설명 없는 현금 축적이 쌓아온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라는 말이 소수 주주에게 기다리라는 주문으로 쓰여서도 안 된다. 주주권 강화와 투명한 자본 배분은 더 필요하다. 다만 그 불신의 해법이 더 많은 현금을 더 빨리 돌려주는 것일 수는 없다. 주주권 강화와 단기 주가 극대화는 같은 말이 아니다.

자본시장에는 기업에서 돈이 나오는 길과 들어가는 길이 함께 있어야 한다. 환원된 돈이 다른 기업의 생산적 투자로 옮겨간다면 시장은 제 기능을 한다.

반대로 수익성 있는 투자마저 당장의 환원 요구에 밀린다면 미래의 성장 기반이 약해진다. 중요한 것은 환원의 규모가 아니라, 어떤 투자가 어떤 근거로 선택되고 버려지는가다.

기업은 투자와 환원을 아우르는 다년간의 자본 배분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필요한 투자와 재무 완충 자금, 잔여 재원의 환원 방식, 상황 변화에 따른 원칙 조정 조건을 밝혀야 한다. 이사회는 현금 유보와 환원 양쪽의 결정 근거에 책임져야 한다. 투자 판단과 집행 과정, 사후 성과를 함께 평가하되, 결과만으로 합리적인 위험 감수까지 벌해서는 안 된다.

평가와 보상의 시간표도 바꿔야 한다. 경영진의 보상은 장기 투자 성과가 드러나는 기간과 연계하고, 기관투자가의 운용평가도 단기 수익률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지수의 등락을 넘어 장기 자금의 기반과 공정한 거래 질서, 생산적인 자본조달 여건을 성과로 삼아야 한다. 주주권을 지키면서 기업이 미래에 투자할 시간도 확보해주는 것, 그것이 자본시장 정책의 어려운 본령이다.

이번 시장 반응을 지켜본 이사회들이 ‘다음에는 투자보다 소각 발표부터 준비하자’고 학습한다면, 우리는 오늘의 주가를 위해 내일의 경쟁력을 지불하는 셈이 된다. 자본시장의 성공은 지수가 얼마나 올랐는가만이 아니라, 그사이 ‘기업이 어떤 미래를 준비했는가’로도 평가받아야 한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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