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92만정으로 ‘42억원어치’ 필로폰 1.36㎏ 제조한 일당

이다겸 기자 2026. 11. 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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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시 포승읍의 한 아파트 단지.

마약 투약 등으로 복역한 김 씨는 출소 후 평택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다 빈 호실 하나를 골라 지난해 4월 필로폰 시험 제조에 나섰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경기 파주시의 한 건물을 빌려 감기약을 10통씩 사다가 슈도에페드린을 추출한 뒤 화학약품과 섞는 등의 방식으로 필로폰 약 9g을 만들었다.

이런 점을 토대로 경찰은 이 한약사가 필로폰 제조에 쓰일 줄 알고도 감기약을 팔았다고 보고 제조 방조 혐의 등으로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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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된 일당은 감기약에서 추출한 성분과 황산 등 화학물질을 가공해 필로폰 약 1.3kg을 제조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제공
경기 평택시 포승읍의 한 아파트 단지. 7개 동 곳곳에 건축 폐기물이 쌓였고, 입구엔 유치권 분쟁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이 단지의 한 집에서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 동안 필로폰이 만들어졌다. 원료는 약국에서 파는 감기약이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감기약에서 마약 원료인 슈도에페드린 성분을 뽑아 필로폰 약 1.36kg을 만든 총책 김모 씨(67) 등 제조 일당 5명과 감기약 무단 판매 사범 등 13명을 검거해 4명을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약 4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42억 원어치로, 감기약으로 필로폰을 만든 국내 사건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 ‘감기약 필로폰’ 전과자 영입해 대량 제조

마약 투약 등으로 복역한 김 씨는 출소 후 평택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다 빈 호실 하나를 골라 지난해 4월 필로폰 시험 제조에 나섰다. 유치권 분쟁으로 인적이 드문 데다 폐쇄회로(CC)TV와 주차 차단기가 있어 외부인 출입을 감시하기에 좋았다.

A 씨 등이 감기약을 이용해 필로폰을 제조하던 아파트 내부 .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제공
하지만 처음 데려온 기술자가 만든 건 팔 수 없는 수준이었다. 김 씨는 감기약으로 필로폰을 만들어 본 ‘경력 기술자’ 2명을 새로 끌어들였다. 그중 1명은 김 씨와 함께 수감 생활을 한 사이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경기 파주시의 한 건물을 빌려 감기약을 10통씩 사다가 슈도에페드린을 추출한 뒤 화학약품과 섞는 등의 방식으로 필로폰 약 9g을 만들었다.
일당은 해외 논문과 과학실험 영상, 과거 필로폰 제조 사건 판결문까지 찾아보며 제조법을 가다듬었다. 제조는 독한 냄새와의 싸움이었다. 창문을 모두 열어둔 채 방독면과 노란 보호복을 입고 작업했다. 가열 기구가 자꾸 고장 나 여러 대를 쟁여뒀다. 완성된 필로폰과 원료인 슈도에페드린은 생김새가 비슷해 비닐봉지에 ‘슈도’라고 적어 구분했다. 아파트 다른 동에는 주민 10여명이 살고 있었지만 범행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제보를 받은 경찰은 잠복 끝에 올 6월 평택 지제역에서 열차를 타려던 김 씨를 붙잡았다. 그의 소지품에선 필로폰이 나왔다. 일당은 수사망을 피해 경기 파주시의 별도 창고로 ‘공장’을 옮기려던 참이었다. 소방관의 도움을 받아 연 창고에선 제조 도구 약 40종 150점과 화학물질 약 20종 1.5t도 나왔다.

● 강제력 없는 판매 제한… 92만 정 풀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가 감기약 성분으로 대량의 필로폰을 제조한 일당 등 관련 사범 13명을 검거해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1층 브리핑실에서 황인기 마약범죄수사2계 계장이 브리핑 중 압수물품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2026.11.03 뉴시스
일당이 확보한 슈도에페드린 성분 감기약은 60정짜리 병 1만5360통(92만1600정)이었다. 슈도에페드린은 코막힘을 줄여 코감기에 흔히 쓰인다. 이 감기약은 일반의약품이라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달리 처방 내역이 관리되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인당 최대 나흘분만 팔고 60정 병 포장은 처방을 거쳐 팔도록 권고하지만 강제력은 없다.

일당은 이런 허점을 노리고 서울과 대구 부산 등의 약국을 무작위로 접촉한 뒤 “요양원에 봉사용으로 보낼 비염약이 필요하다”거나 “중국에 수출한다”고 둘러댔다. 일부 약국은 세금 신고를 하지 않은 제품을 대량 공급했다.

그중 한 30대 남성 한약사는 1~6월 6차례에 걸쳐 63만6600정을 팔았다. 그는 자기 아파트 주차장에서 약을 넘기거나 챗GPT에 ‘감기약으로 필로폰 제조가 가능하냐’고 묻기도 했다. 이런 점을 토대로 경찰은 이 한약사가 필로폰 제조에 쓰일 줄 알고도 감기약을 팔았다고 보고 제조 방조 혐의 등으로 송치했다. 필로폰 제조에 필요한 황산과 염산을 팔고도 거래 기록을 남기지 않은 화공약품 판매업자 2명도 함께 붙잡혔다.

경찰은 이 한약사 1명이 판 감기약만으로도 필로폰 17kg을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일부가 유통됐을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다. 또 해당 감기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해달라고 식약처에 요청했다. 황인기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2계장은 “같은 지역에서 대량·반복 구매 사례가 나타나면 식약처에 신고하게 하지만 권고일 뿐”이라며 “구속력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다겸 기자 gye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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