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대응기금이 방만재정? 어불성설

한겨레 2026. 11. 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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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통령일 때 공화당은 늘 적자, 적자, 부채, 부채를 말했다. 뭔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랏빚이 40조달러가 된 지금은 아무 말이 없다. 적자는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할 때만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지난달 디트로이트에서 중간선거 지원 유세에 나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무엇이 맞는 말일까? 미래대응기금의 신설 자체는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한 해에 다 써버리지 않겠다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나는 법인세 원상 복구에서 교육교부금 개편을 거쳐 미래대응기금으로 이어지는 '재정개혁 3부작'의 흐름에 대한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한 세대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정부가 어떻게 쓰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판단이다.

내년에 예상치 못한 초과세수가 발생해 162.3조원(미래대응기금 상당)의 세계잉여금이 발생했다면, 국가재정법 규정에 따라 가장 큰 몫인 63조원이 지방교부세·교육교부금 정산으로 먼저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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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리포트 - 경제와 정치의 경계에서
국민의힘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위원들이 지난달 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예산처 국정감사 시작 직전 정부가 추진 중인 ‘미래대응기금’에 반대하는 내용의 인쇄물을 노트북에 붙여 놓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재경위원들의 인쇄물 부착에 대해 여당이 반발하면서 퇴장해 재경위 국감은 지연 개회했다. 연합뉴스

“내가 대통령일 때 공화당은 늘 적자, 적자, 부채, 부채를 말했다. 뭔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랏빚이 40조달러가 된 지금은 아무 말이 없다. 적자는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할 때만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지난달 디트로이트에서 중간선거 지원 유세에 나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당명만 가리면 한국 얘기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11월은 국회와 행정부 모두에게 ‘예산의 시간’이다. 예산은 숫자로 표현된 정치다. 따라서 예산을 보면 내년, 그리고 앞으로 몇 년 동안 한국 사회의 진로를 예측할 수 있다. 올해 예산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미래대응기금’이다. 이 기금의 신설을 두고 정부·여당은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미래를 위해 모아두자고 옹호하고, 야당은 정권의 쌈짓돈을 만들려 한다고 비판한다. 무엇이 맞는 말일까? 미래대응기금의 신설 자체는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한 해에 다 써버리지 않겠다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연구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2026년부터 앞으로의 3년 동안, 과거 추세를 웃도는 세수의 규모는 약 280조원 정도다. 정부는 이 돈을 해마다 그해의 세출 예산안에 담아 소진하는 대신 200조원가량은 적립하거나 국채 발행을 줄이는 데 쓰고, 나머지는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네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세수가 추세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2029년이 되면 그 적립금을 꺼내 사용함으로써 재정의 변동성을 줄이겠다는 것이 그 취지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은 ‘방만 재정’이라는 비판이다. 미래를 위해 돈을 쌓아두겠다는 기금을 두고 방만하다고 말하려면 전제가 하나 필요하다. 기금이 없었다면 그 돈이 더 알뜰하게 쓰였으리라는 것이다. 그 전제를 따져본 비판은 찾기 어렵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이 기금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두 개의 기준축이 필요하다. 하나는 법인세 원상 복구에서 교육교부금 개편을 거쳐 미래대응기금으로 이어지는 ‘재정개혁 3부작’의 흐름에 대한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한 세대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정부가 어떻게 쓰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판단이다.

먼저 법인세부터 복기해보자. 이재명 정부는 집권 첫해 윤석열 정부가 깎아준 법인세율을 되돌렸다. 모든 과표구간의 법인세율을 1% 포인트씩 올린 것을 포함해, 세제개편안 전체로 연간 8조원대의 세수를 늘렸다. 2020년 이후 5년 만의 증세였다. 반도체 특수가 찾아오기 전에, 감세로 무너진 세입 기반부터 바로잡아 놓은 것이다. 두 번째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이다. 현행 제도는 내국세의 20.79%를 교부금의 형태로 초·중등 교육에 자동으로 배정한다. 이로 인해 학령인구가 급감해도 세수가 늘면 교부금이 늘어나는 비효율이 발생해 왔다. 하지만 이 개편은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힌 데다 의무지출로 굳어져 있어 누구도 손대기 꺼렸다. 이재명 정부는 이 산식을 55년 만에 경상성장률과 학령인구 변화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바꾸려 한다. 경제 성장과 교육 수요를 함께 반영하는, 더 유연한 규칙이다.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이 역시 재정 효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 편이 미래대응기금이다. 이렇게 확보한 재원의 일부와 호황기의 추가 세수를 미래 투자와 재정 안정에 쓰려는 시도다. 이 흐름을 통째로 ‘방만 재정’이라 부르면 정작 이제부터 따져야 할 판단의 적절성에 대한 검토는 의미 없어진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재정정책의 성패는 ‘부채공포증’과 ‘증세강박증’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달려 있다고 지적해왔다. 특히 부채공포증은 국가부채를 비만 같은 질병으로 보아 지출 축소를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한다. 한국 사회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가진 재정 보수주의의 시각이다. 문제는 이 엄격함이 일방으로 작동한다는 데 있다. 재정 건전성은 세입과 세출 양쪽에 걸린 문제다. 그런데 재정 보수주의는 세입 쪽에서는 감세를 지지하면서, 건전성의 잣대는 세출에만, 그것도 주로 복지 지출에만 들이댄다. 감세가 미래의 세수를 늘릴 것이라는 전망에는 관대하면서, 교육과 돌봄 투자가 미래의 생산성을 높일 가능성에는 인색하다.

일각에서는 미래대응기금이 세수 기반을 무너뜨리고, 국회의 예산 확정권을 무력화하고, 자치단체의 재정권을 축소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최악의 사례’는 재정 건전성을 중시한다던 윤석열 정부 때 나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22년 윤석열 정부는 감세가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세원을 넓혀 “재정 전체의 선순환”을 끌어낼 수 있다는 논리로 법인세율을 모든 과표구간에서 1%포인트씩 내렸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100조원을 넘던 법인세수는 2년 만에 60조원대로 주저앉았고, 2023년과 2024년 두 해 동안 90조원 가까운 세수결손이 났다. 나랏빚은 2년 새 100조원 넘게 불었다. 정부가 스스로 법제화하겠다던 재정준칙의 기준선, 곧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 3%도 두 해 내리 넘겼다. 결손을 메운 방식도 문제였다. 정부는 세입을 바로잡는 추경안을 국회에 내는 대신 외국환평형기금 등의 재원을 활용했다. 예산에 잡혀 있던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 18조6000억원을 내려보내지 않았다. 중앙정부의 세수 예측 실패를 지방과 교육 재정이 떠안은 셈이다. 필자가 미래대응기금을 향한 일부 비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랑스 재정위기와 네덜란드병까지 언급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전문가들은 그때 어떤 우려와 경고를 내놓았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사실이 미래대응기금의 타당성을 자동으로 보증하지는 않는다. 다만 비판의 기준은 같아야 한다. 기금 활용과 지방재정 축소가 문제라면 어느 정부에서든 문제여야 한다. 감세로 생긴 재정 부담과 지출로 생긴 재정 부담은 유사한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진지하다면 그 잣대는 집권 세력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재정 원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기금 도입의 적정성을 판단할 때 비교 대상도 명확해야 한다. 기금이 없었다면 늘어난 세수는 어디로 갔을까. 내년에 예상치 못한 초과세수가 발생해 162.3조원(미래대응기금 상당)의 세계잉여금이 발생했다면, 국가재정법 규정에 따라 가장 큰 몫인 63조원이 지방교부세·교육교부금 정산으로 먼저 빠져나간다. 공적자금 상환과 국가채무 상환에 돌아가는 몫은 합쳐도 50조원, 전체의 3분의 1에 못 미친다. 나머지는 추경 재원이나 다음 해 세입이 된다.

추가 세수를 내년도 예산에 전액 활용한다면 더욱 극단적인 재정의 왜곡이 발생한다는 정부 쪽 설명에도 설득력이 있다. 세출 예산안에 담아 전액을 내년도 지출에 쓸 경우 총지출 증가율이 27%대로 폭증하게 된다. 반대로 전액을 국가채무를 줄이기 위해 쓴다면, 국고채 발행 물량이 올해(약 225조원)보다 반토막 수준으로 줄어 통상적인 채권 시장의 운용이 어렵게 된다. 채무 상환을 언제나 앞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만고불변의 경제논리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주장일 뿐이다. 따라서 선택지는 ‘기금을 만들어 낭비할 것인가, 빚을 갚을 것인가’로 나뉘지 않는다. 지방과 교육에 기존 규칙대로 배분할지, 부채를 줄일지, 불황에 대비해 적립할지, 새로운 경제 질서를 선도할 산업에 투자할지를 비교해야 한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판단의 문제이다.

정부가 국회에 내놓아야 할 답은 그래서 구체적이어야 한다. 청년·성장·지방·인재라는 네 단어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사업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며, 같은 돈으로 부채를 줄이거나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것보다 왜 나은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해당사자를 설득하는 일도 피할 수 없다. 교부세 감소를 우려하는 자치단체와 지역구 의원에게는 지방계정이 어떤 원칙으로 배분되고 지역에 무엇을 남기는지 보여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채 신규발행 축소 12.5조원과 별도로 기존 국가채무 일부를 실제로 갚는 상징적 조치도 고려할 만하다. 신설 기금에 대한 우려를 덜고 정부의 재정운용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신호가 될 것이다. 예산은 정치의 가장 중요한 언어다. 누구의 필요를 먼저 채우고 어떤 미래에 투자할지는 경제적 논리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이 점에서 재정지출은 통화정책과 다르다. 통화정책은 독립된 중앙은행에 맡기지만, 재정지출을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나라는 없다. 경제학은 선택의 비용과 효과를 밝히고, 정치는 그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정부는 정책을 결정하고, 국회는 따져 묻고, 유권자는 결과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도 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학·공정위 비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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