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온전히 ‘작곡가’로서 살아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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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떨어지는 아침, 우산 하나가 걸어간다. 노란 우산이 집을 나와 걷다가 파란 우산을 만나 둘이 된다. 집들이 마주한 골목에서 빨간 우산이 들어와 셋이 되고, 개울 건너는 다리 위에서 녹색 우산을 만나 넷이 되었다.
화가 류재수가 유화 그림을 그리고, 작곡가 신동일이 피아노곡을 쓴 '노란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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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떨어지는 아침, 우산 하나가 걸어간다. 노란 우산이 집을 나와 걷다가 파란 우산을 만나 둘이 된다. 집들이 마주한 골목에서 빨간 우산이 들어와 셋이 되고, 개울 건너는 다리 위에서 녹색 우산을 만나 넷이 되었다. 비는 ‘솔솔소올 솔솔소올’하고 얌전하게 내리다가 ‘솔미도솔 솔미도솔’ 소리를 내며 더 많이 내린다. 비가 많이 올 때는 음이 잘게 쪼개진다. 놀이터를 지나면서 우산은 흩어졌다가, 층층대를 오르며 한줄이 되었다가, 건널목 앞에서 아홉이 되어 모여있다. 서주에서 ‘미미미도 쏠쏠(높은), 미미미도 솔솔(낮은)’하고 고개를 내민 테마는 여러 갈래로 변주하며 바뀐 장면마다 우산 뒤를 따라온다. 숲을 지날 때 셀 수없이 많아진 우산은, 서로 부딪히며 웅성웅성 조잘대다가 드디어 넓은 운동장 안으로 들어선다. 비 오는 날 아침 학교 가는 길,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가고 책장 맨 끝에 접힌 우산들이 한데 모여있다. 뒤따라오던 피아노는 갈 곳을 잃고, 다시 ‘미미미도 솔솔’하며 서주로 돌아간다.
화가 류재수가 유화 그림을 그리고, 작곡가 신동일이 피아노곡을 쓴 ‘노란 우산’. 글은 없고 그림 뒤를 음악이 따라오는 13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1년 출판사 ‘재미마주’가 시디(CD)를 붙여 출간한 이 책은 국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왔다. 이듬해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둔 ‘국제어린이도서협의회’(IBBY)가 뽑은 ‘50년 통산 세계 어린이책 40권’에 들었고, 이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 그림책’에 뽑혔다. 그 신문은 대문짝만하게 프리랜서 제니 앨런의 글을 실었다. ‘류재수의 붓놀림이 그림에 사랑스러움을 입혀 비 오는 날의 아련한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글 없는 그림책의 작가들은 “당신이 머릿속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떠올리건 간에 내가 쓰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듯하다.…신동일의 음악은 더욱 풍부한 예술적 경험을 갖게 한다. 음악과 그림의 어울림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꿈결같이 아름다운 발레를 보는 듯하다.’ 이 책은 7개국에서 출간되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작곡가 신동일은 첫 앨범 ‘푸른 자전거’를 내고, 대학에 출강했다. 한예종에서 올해로 30년 강의를 이어오면서 앞 절반은 서양 음악을, 뒤 15년은 국악 작곡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소리꾼 김용우를 만나 국악계에 첫발을 디딘다. 김용우는 우리 국악을 재즈 아카펠라 클래식 등 여러 장르와 접목하여 국악의 현대화 대중화를 이끈 이름난 소리꾼. 신동일은 그와 앨범 작업을 함께하면서 여러 곡을 편곡했다. 그중 최고 히트곡이 ‘풍구타령’. 대장간 아궁이에 밀고 당기며 불바람을 넣는 풀무질을 방사(房事)에 비유한 서도민요다. ‘입으로 부는 풍구는 후후후후 불어두/ 눈이 맞는 풍구는 찰떡 풍구로 분다네’, 이 ‘19금(禁)’ 타령을 개사 편곡하여 국악 퓨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렇게 국악계에 이름이 알려지고, ‘피리와 장구를 위한 두 개의 장면’, 21현 가야금 협주곡 ‘인연’, 국악 동요 ‘깨어진 새알 껍지’, ‘김소월 시에 의한 3개의 관현악 소품’, 관현악곡 ‘서울에서 꿈꾸다’, ‘바다 물결’ 등 잇따라 창작곡을 발표하면서 ‘2004 KBS국악대상(작곡 지휘 부문)’을 수상한다.
왜 국악으로 건너가셨냐 물었더니, “국악과 양악 사이에 쉬이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흐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둘 다 음악이며 작곡이라는 범주 안에, 그리고 나에게는 ‘생계’까지 포함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라 한다. 그는 오랜 세월 한번도 정규직 교수가 되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다. 온전히 작곡가로서 삶을 살고 싶었다. 시간강사는 길을 가는 도중에 건너갔다 건너오는 다리 같은 것이었고, 허기지는 저녁 같은 것이었고, 그는 늘 다시 돌아와 애초 마음먹은 한 길을 가고 있다. 이 땅에서 온전히 예술가로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국악은 사실 자의 반 타의 반이라 할까요? 제가 좀 민족주의 성향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국악이 좋았고 곡도 많이 썼죠. 그런데 내 국악 앞에는 거의 ‘위촉’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습니다. ‘깨어진 새알 껍지’는 국립국악원, ‘서울에서 꿈꾸다’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김소월 소품’은 국립국악관현악단 ‘위촉’이죠. 서양 음악은 ‘위촉’하는 데도 없고, 곡을 써도 작곡료가 없지요. 창작 영역을 넓혀야 하는 우리 국악은 ‘위촉’을 하니 적어도 대가가 따라옵니다. 작곡과 생계가 그렇게 이어집니다.”
국악과 양악 사이에 흐르는 강은 어떻게 건너는가, 물었다. 어려운 대목이다. 음악의 3요소가 ‘선율’ ‘화음’ ‘리듬’이다. 가수 안치환이 입으로 선율을, 기타로 화음을, 몸으로 박자를 타면서 하나의 음악을 완성한다. 그는 국악과 양악을 어떻게 접목하는지, 저 3요소의 결합과정을 30분 넘게 설명했는데, 알아먹은 것은 5할쯤 나머지는 귓등으로 흘렀다.
리듬이 제일 어렵다. 예컨대 국악과 재즈를 붙이면, ‘3분박’의 끝 박이 안 맞다. 재즈가 미묘하게 늦다. 그 늦음 혹은 빠름에서 장르 특유의 맛이 나온다. 둘을 맞추려면 하나가 양보해야 한다. 그런데 리듬은 체득이라, ‘양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김덕수 사물놀이’의 김덕수씨가 이 박자 꿰맞추기를 10년 걸렸다고 한다.
어찌어찌 박자를 잡으면, 선율과 화음이 남는다. 예컨대 국악의 선율이 양악의 화음을 뚫고 강을 건너야 하는데 십중팔구 물에 빠지고 만다. 신동일은 ‘대위법’(對位法)을 많이 쓴다고 했다. 대위법은 두개 이상의 독립 선율이 동시 결합하여 조화로운 곡을 짓는 작곡기법이다. 이를테면 새 두마리가 각각 자기 노래를 하며 창공을 날아가는데, 고저장단이 잘 맞아 화음을 이루면서 한마리처럼 날아간다는 말이다. 바흐(J.S. Bach)가 많이 썼다. 여기에 새 한마리가 더 날아가니, 국악이다. 국악은 노선이 달라 까딱하면 서양 새하고 부딪치고 만다. 어떻게 독자적인 자기 빛깔을 잃지 않고, 그 사이를 유유히 날아가느냐 이것이 관건이다. 신동일은 오래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국악과 양악이 앙상블을 이루는 ‘통섭(統攝)의 길’을 찾았다.
나는 치과에서, 이빨 가는 소리를 들으며 멘델스존을 읽는 그 상극의 부조화 속에서, 초발심을 내고 클래식에 기웃거려 보았다. 음반 사랴, 오디오 사랴, 진공관이 어쩌고 트랜지스터가 어쩌고, 황학동을 헤매고, 서점의 회원 등급 올라가고…, 새 음반의 비닐 껍질을 벗길 때의 그 설레는 순간들, 그런 시절을 지나면서 귀동냥하는 수준은 되었다. 그 동네에 회자 되는 전설 중에, 모차르트는 곡을 쓰다 막히면 허공에서 한조각 베어온다고 하고, 베토벤은 어느 새벽 신으로부터 전해 들은 소리를 악보로 바꿔 사람들에게 들려준다고 하는, 선사들의 무용담이 줄을 잇는다. 한 독일 의사는 감옥에서 악보를 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한다. 이 대목 정녕 가능한가? 그에게 물어봤다.
“음악을 눈으로 듣는다, 좀 이상하죠? 그것을 ‘내청’(inner hearing)이라 하는데 ‘공통관습시대’에 흔한 얘깁니다. 바로크 후기에서 낭만주의까지 서양에서 음악적 문법이 강하게 작동하던 시대를 말합니다. 문학의 기승전결처럼, 음악도 소나타 형식 등 전개되는 틀이 있어요. 악보를 깊이 보면 이야기 흘러가는 구조가 드러납니다. 이 대목 즐겁다가 저 대목 슬프고, 보이는 것이 들려오지요. 소설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는 그런 것과 비슷하다 할까요.”
그 동네에 다가가는 방편으로 그는 ‘표제 음악’을 권했다. 소나타 1번 2번, 교향곡 1번 2번 하듯이 클래식은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표제 음악은 곡에 이름을 달아 놓았으니, 아무래도 감 잡기에 좋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이 대표곡으로 꼽힌다. 5악장의 악장마다 ‘꿈 열정’ ‘무도회’ ‘들판의 풍경’ ‘단두대로의 행진’ ‘미녀들의 밤의 꿈’, 이렇게 제목이 붙어있다.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말고 ‘사랑’과 ‘행복’, ‘고독’과 ‘절망’, 그리고 피날레의 ‘축제’를, 대입하면서 귀 기울여 들어보면, “음악이 영화처럼 그려지는 어떤 순간이 온다”고 그는 말했다.
신동일은 ‘노란 우산’ 같은 피아노 모음곡에서, 어린이 음악으로, 영화 음악으로, 국악으로, 오페라로, 장르도 경계도 없이 다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가, 세월호 레퀴엠 ‘쪽빛의 노래’를 짓고, 지금은 음악에 이야기를 더한 ‘음악극’에 전념하고 있다. 작품 번호 ‘Op. 500’을 한참 넘긴 그는 우리 음악계에서 ‘닫힌 음악의 경계를 깨는 조용한 혁명가’로 통한다.
이광이 |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그쳐본 적이 없다’ 목포 김현문학관에 걸린 이 글귀를 좋아한다. 시와 소설을 동경했으나, 대개는 길을 잃고 말아 그 언저리에서 산문과 잡글을 쓴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읽다가 막히면 ‘쓴 사람도 있는데 읽지도 못하냐?’면서 계속 읽는다. 해학이 있는 글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스님과 철학자’(정리), ‘절절시시’, 산문집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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