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반세기만에 ‘공산 정권 스파이’ 신원 5만명 공개한다... 문서 길이만 5km
헝가리가 공산주의 독재 정권 시기였던 1945~1989년 비밀경찰의 정보원 최소 5만명의 명단을 적어놓은 문서인 이른바 ‘요원 파일’을 4일 최초 공개한다. A4 용지 기준으로 1만6000여 장으로 한 장씩 바닥에 펼쳐놓으면 전체 길이가 5㎞에 육박할 만큼 방대한 분량이다. 이날은 1950년대 소련군이 공산 독재에 항거하던 대학생들을 유혈 진압했던 날이다. 16년간 장기 집권했던 친(親)러시아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정권이 퇴진한 뒤 지난 5월 들어선 친서방 성향의 머저르 페테르 정권이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헝가리 정부는 이날부터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명단 검색과 저장이 가능하도록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제공한다. 그동안 일부 연구원이나 피해자 유족 등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해왔지만 전 국민 누구나 열람하거나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개되는 문건은 강대국에 짓밟혔던 헝가리의 어두운 현대사를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점령당했던 헝가리는 전쟁이 끝난 뒤에는 소련의 압제로 공산국가의 길을 걷게 됐다. 1949년 일당제 국가로 수립된 헝가리 인민공화국은 비밀경찰의 정보망을 통해 사회를 감시하고 반대 세력을 억압했다. 이런 일은 1989년 공산 독재가 종식돼 민주화 시대를 맞을 때까지 계속됐다.
공산 독재 시기 정보원들은 가족, 이웃, 친구, 동료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협박·강요받았다. 공산 정권은 이들에게 물질적 보상을 약속하며 끄나풀로 포섭했다. 이렇게 활동한 정보원 5만여 명의 명단 등이 담긴 ‘요원 파일’은 헝가리 국가안보 역사기록보관소 지하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이 중 신원 조회 내역, 진술서, 보고서 등 세부 활동 기록까지 남아있는 인원은 9000명 정도이며, 전체 정보원 중 5000여 명이 생존해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전체 문건을 나란히 놓으면 그 길이만 약 4.8㎞에 달한다고 한다. 헝가리 정부는 세부 활동 기록 원문은 개인 정보 익명화 조치를 거쳐 내년 2월 추가로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문건 공개는 머저르 총리가 지난 4월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교체하며 내걸었던 약속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헝가리 의회는 지난 9월 요원 파일 등 기밀 문서를 일반에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터르 졸탄 헝가리 문화부 장관은 소셜미디어에 “민주사회는 자신의 과거를 알 권리가 있다”고 썼다.
문서가 공개된 11월 4일은 국가 애도일이다. 1956년 10월 23일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공산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대학생들의 평화적인 가두 시위가 11월 4일 소련군에 의해 무력 진압돼 2652명이 사망하고 1만9226명이 다쳤으며 20만명은 탄압을 피해 외국으로 탈출했다.
소련 붕괴와 냉전 해체 후 민주화된 다른 유럽 국가들은 헝가리에 앞서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독일은 1992년 옛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의 비밀문서를 공개했고, 2003년부터 체코·폴란드·라트비아 등에서 정보원 관련 문건이 공개됐다. 헝가리 강제 노동 수용소 생존자인 키시 미클로시는 영국 가디언에 “정부가 문건을 더 일찍 공개해야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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