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에도 밀고자가 있었다”…헝가리, 공산정권 비밀경찰 정보원 명단 공개

헝가리가 공산정권 시절 비밀경찰에 협력했던 정보원 및 정보원 포섭 대상자 등의 명단을 공개한다. 1989년 공산정권 붕괴 이후에도 대부분 비공개로 남아 있던 기록이 공개되면서 과거사 청산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가족과 이웃 사이에 감춰져 있던 상처가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헝가리 정부가 오는 4일 공산정권 시절 국가보안기관에 협력했던 정보원, 정보원 포섭 대상자들의 명단을 온라인 검색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기록에 이름이 등장하는 인물은 약 5만~6만명으로, 이 가운데 10%가량이 현재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45~1989년 사이 헝가리 공산당 정권은 광범위한 정보원 조직을 운영하며 시민들을 감시하고 반체제 활동을 탄압했다. 정보원들은 이웃과 친구, 직장 동료는 물론 가족의 언행까지 당국에 보고했다. 이 가운데는 당국의 협박이나 강압에 못 이겨 정보원이 된 경우도 있었다.
정보원 관련 기록은 부다페스트의 국가보안기록 역사문서관에 보관돼 있으며, 1989년 민주화 이후에도 대부분 비공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연구자와 피해자 가족 등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열람이 허용됐다.
그러나 지난 4월 총선에서 승리한 페테르 마자르 총리는 기록 공개를 공약했고, 지난 9월 관련 법률이 통과됐다. 여론조사에서는 헝가리인 3분의 2 이상이 공개에 찬성했다. 옛 동유럽 공산권 국가 가운데 동독은 1992년, 체코는 2003년, 라트비아는 2018년 비밀경찰 관련 기록을 공개한 바 있다.
다만 헝가리의 기록은 상당 부분 불완전한 상태다. 부다페스트의 봄이라 불리는 1956년 민주화운동과 1989년 체제 전환 과정에서 다수의 문서가 파기되거나 사라졌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기록에는 약 5만~6만명의 이름이 들어있지만 상세한 신원 조사 자료와 진술 등이 남아 있는 사람은 약 9000명 정도다. 이들의 기록은 건강 상태와 성생활 등 민감한 개인정보, 피해자 정보 등을 삭제한 뒤 내년 2월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기록 공개를 앞두고 가족과 이웃 사이에 감춰져 있던 과거가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제노동수용소 생존자이자 피해자단체 대표인 미클로시 키스는 가디언에 “사람들은 모든 가족과 동네, 거리마다 배신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한 피해자의 유족은 망명지인 런던에서 암으로 죽어가던 자신의 할머니에게 접근해 정보를 수집했던 여성 정보원의 기록을 읽고 분노했었다. 하지만 그 여성의 부모 등 가족이 헝가리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동정심을 느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정보원들의 협력 동기나 실제 활동 정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기록도 적지 않다. 앞서 헝가리에서는 2000년대 이후 일부 정보원 명단이 공개되면서 정치인과 유명 예술인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었다.
역사학자 도모코시 소콜라이는 이번 공개가 “공개적인 망신주기”로 변질되지 않고 당시의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소콜라이는 자신의 아버지도 2005년 공개된 비공식 정보원 명단에 이름이 들어있었다면서 “가족의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 두렵거나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 사실을 알아가는 편이 더 낫다”고 말했다.
명단 공개일인 4일은 소련군이 1956년 헝가리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무력 진압하기 시작한 지 70년째 되는 날이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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