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도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을까

한겨레21 2026. 11. 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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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익힌 지극한 맛 중 하나는 돌보고 먹이는 맛이다.

새덕후는 2020년부터 새를 사냥하는 고양이 영상을 올려 길고양이를 조류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했으며, 길고양이 개체수 관리에 거의 유일하게 효과적인 정책으로 꼽히는 TNR(Trap 포획-Neuter 중성화-Return 방사)이 무용하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새덕후의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캣맘' '캣대디' '레인저'가 먹이 주기를 통해 고양이 개체수를 무분별하게 늘린다고 지적한다. 풍부한 먹이 자원이 개체수를 늘리는 건 당연한 상식이자 과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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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담의 빈속으로 왔다가]길 위의 생명 앞에서 맞닥뜨리는 돌봄의 곤경… 인간 영향력의 ‘경솔함’도 돌아봤으면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서 찍힌 길고양이. 안담 제공

세상에서 익힌 지극한 맛 중 하나는 돌보고 먹이는 맛이다. 어린이로서는 흙과 풀을 짓이겨 만든 가짜 밥을 상상 속 존재에게 먹이는 시늉을 즐겼다. 진짜 밥솥을 가지게 된 지금은 14분이면 완성되는 쾌속 쌀밥에 회심의 무생채를 곁들여 사람들 앞에 무심한 듯 내놓는 일을 즐긴다. 신산한 삶에 시달린 누군가의 얼굴이 ‘꼬독’하고 칼칼한 무생채 앞에서 잠시 밝아지는 순간. 그런 순간에는 돌칼을 쥐고 풀을 짓이기던 유년으로부터 내가 전혀 멀리 오지 않았다고 느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소꿉놀이를 하며 사는 것이다.

살게 두는 다정함, 죽게 두는 무정함

키우고 찌우는 일에는 커다란 재미가, 기쁨과 보람이 있다. 식물에 물을 주는 일도, 개를 키우는 일도,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다친 새를 살피는 일도 기쁨의 측면에서는 그런 소꿉놀이의 연장선에 있을지도 모른다. 돌봄은 만인이 기피하는 고단한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돌봄은 쾌락적이다. 누구나 무언가는 돌보고 싶어 한다. 돌봐지는 쪽이 느끼는 수치심이 아니라 돌보는 쪽이 느끼는 자부심을 욕망한다. 돌보는 쪽은 쉽게 좋은 사람, 이타적이고 도덕적이며 관계에 능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돌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일찍이 ‘밥 먹이고 싶은 마음’을 참고 경계하는 법 또한 배운다.

애비게일 터커의 ‘거실의 사자’는 고양이와 살아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돌봄이 주는 위험할 정도의 기쁨을 성찰하려는 사람에게도 뜻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고양이는 인간의 편애를 받은 나머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번성한 동물이다. 하나의 동물종을 가축화하면서 인간은 반드시 그 동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게 있다. 인간은 동물이 인간에게 의존해 생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구축하고 동물로부터 고기나 털, 노동력 따위를 착취해간다.

그런데 “고양이는 인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인간을 위해 일하고 인간에게 복종하는 동물로서 번영하지 않았다. 심지어 쥐도 고양이보다 개가 더 잘 잡는다. 인간은 고양이로부터 “거의 영적인 기쁨”을 얻어왔다. 인간이 고양이를 데리고 어디든 간 결과, 여러 생태계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균형을 상실했다. 고양이과를 향한 이런 경외감은 작은 고양이를 수도 없이 태어나게 하는 방향으로도 작용했지만 큰 고양이과 동물이 밀렵꾼 손에 신비한 약재로 팔려나가게 하는 방향으로도 작용했다. 이 책은 인간을 홀린 고양이의 어마무시한 ‘귀여움’을 침통한 마음으로 문제화한다.

인간의 책임은 매일 위기의 길생활을 이어가는 개체 단위의 고양이에게도 있고, 세계적으로 과잉 번식한 종 단위의 고양이에게도 있다. 이 책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져야 옳은지 아는 일은 어렵다. 한쪽은 살게 두는 다정함을, 한쪽은 죽게 두는 무정함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책의 4장과 5장에서 저자는 미국의 동물권 운동과 생태·환경 운동이 극심한 방향 충돌을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많은 동물이 있지만, 고양이는 그중에서도 생로병사 전반에 인간이 개입할 의지를 보이는 드문 종에 속한다. 인간의 개입은 고양이의 생존 확률을 늘리는 방향일 때 더 큰 지지를 얻으며 이런 정책 방향은 인간의 편애를 받지 못하는 다른 동물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조류 애호가”들과 “고양이 애호가”들은 “1870년대 후반부터 서로를 물어뜯을 듯이 굴어왔다”고 저자는 쓴다.

도시 생태계 일원으로서 인간의 할 일

최근 유튜버 ‘새덕후’가 길고양이 살처분 논쟁에 불을 붙였다. 새덕후는 2020년부터 새를 사냥하는 고양이 영상을 올려 길고양이를 조류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했으며, 길고양이 개체수 관리에 거의 유일하게 효과적인 정책으로 꼽히는 TNR(Trap 포획-Neuter 중성화-Return 방사)이 무용하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몇 개월 전 새덕후는 캣맘 금지법 청원과 함께 ‘살처분’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공론장에 들였다. 새덕후의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캣맘’ ‘캣대디’ ‘레인저’가 먹이 주기를 통해 고양이 개체수를 무분별하게 늘린다고 지적한다. 풍부한 먹이 자원이 개체수를 늘리는 건 당연한 상식이자 과학이라는 것이다.

물론 과학은 상식의 눈치를 보는 학문이 아니므로 정반대의 연구 결과도 있다. TNR로 개체수 감소 효과를 보려면 중성화율을 7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레인저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새덕후 옹호자들은 캣피더가 정서적 만족감, 도덕적 우월감을 즐길 뿐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새덕후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읽다보면 새덕후의 주장을 발판 삼아 고양이 학살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사람들의 고양감 역시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의도였든 아니든, 새덕후는 그만의 성전을 통해 고양이를 학대할 기회를 엿보던 자들에게 ‘생태계 수호’라는 도덕적 명분을 주고 폭력의 만족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고양이를 학대하는 만족감이 그토록 클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고양이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는 어렵다. 새덕후가 만든 진창에서 이 어려운 이야기를 필요한 만큼 섬세하게 해나가기란 이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생태학자가 아닌 내 입장에서는 길고양이와 새, 인간이 함께 이루는 생태계를 맘대로 분석할 수도, TNR의 효과와 한계를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러나 도시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일이 있다면 인간이 이 종으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정서적 자원을 착취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경계하는 것이리라. 측은지심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마음이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인간이 인간답다는 것이 동물에게 좋은 소식이었던 적은 드물다. 가엽게 여기는 마음, 그 누구든 먹이고자 하는 마음,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려는 마음이 어떤 종에게 악재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생태계가 다정함의 상상력이 아니라 무정함의 상상력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을까? 애비게일 터커의 말을 옮기며 글을 맺는다.

이대로는 뭇 생명체에 가망이 없다

“인간의 경외심과 무관심은 위험하게도 공존하는 경향이 있다. 동물에 관련해서는 특히 그렇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 존재이든 우리는 그것을 죽이고 만다. 이걸 보면 고양이만큼 귀엽지 않거나, 함께 생활하기 편리하지 않거나, 생존력이 뛰어나지 않은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은 어떤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다. (…) 친절과 잔혹이 기이하게 뒤섞인 우리의 태도를 직시하고 우리가 제한 없이, 때로는 경솔하게 행사하는 우리의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구의 여러 생명체는 가망이 없다.”

글·사진 안담 작가

*냉장고와 도마 앞에서 하는 생각들. 사라지고 나타나는 한 그릇의 음식에 대해 씁니다. 출출할 때 참고하세요.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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