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창업 리포트]⑧지역 생산자와 상생하는 한 끼…소녀방앗간이 알리는 식재료 가치

이한규 기자 2026. 11. 3. 11:5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단순 매장 확장을 넘어선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산나물밥, 채소영양밥, 우렁 된장찌개 등 소녀방앗간의 모든 메뉴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개발된다.

농가는 미리 거래처와 판매 물량을 확보해 생산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고 소녀방앗간 역시 필요한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소녀방앗간은 소규모 농가의 판로 개척 지원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24년 5월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이 운영하는 '임팩트 프랜차이즈' 사업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단순 매장 확장을 넘어선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경기도사회적경제원과 동아일보가 함께 발굴한 ‘임팩트 프랜차이즈’를 소개하고, 수익성과 사회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창업 모델을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식당을 창업할 때는 판매할 메뉴를 정한 후 식재료 공급처를 찾는다. 그런데 이 순서를 거꾸로 뒤집은 식당이 있다. 전국을 돌며 소규모 농가의 식재료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알릴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하는 이곳. 소규모 농가의 판로 개척을 돕기 위해 2014년에 문을 연 한식당 ‘소녀방앗간’의 이야기다.

소녀방앗간은 청송, 영양, 태백, 하동, 산청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확보한 농산물과 장류로 한식을 만든다. 생산량이 많지 않아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던 약 150명의 지역별 생산자와 거래하고 있다. 산나물밥, 채소영양밥, 우렁 된장찌개 등 소녀방앗간의 모든 메뉴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개발된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 선보인 첫 매장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고속터미널점, 용산아이파크몰점, 이화여대점 등 총 4곳의 직영점을 운영 중이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소녀방앗간 용산아이파크몰점. 소녀방앗간 제공

창업에 도전하게 만든 시골 밥상

김민영 소녀방앗간 대표는 시골에서 맛본 따뜻한 식사를 계기로 창업을 결심했다. 창업 전 F&B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홍보·마케팅을 담당했던 김 대표는 퇴사 후 휴식을 위해 경북 청송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하던 중 지역 어르신들이 차려준 시골 밥상에 매료됐다. 직접 재배한 채소와 정성 들여 빚은 재래 된장으로 만든 한 상은 도시에서 맛보기 어려운 한 끼였다.

하지만 정작 이 식재료들은 안정적인 판로를 찾지 못해 동네에서 헐값에 거래됐다. 소규모로 농산물 및 장류를 생산하는 어르신들은 지역 유통업체들이 원하는 물량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마트에 진열된다고 해도 친환경 농법으로 키우고 수작업으로 생산한 노력을 알릴 방법이 없었다. 지역 내 마트와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규모 농가의 식재료와 경쟁하기에는 불리했다.

김 대표는 ‘한식당’이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소비자가 음식의 맛을 통해 식재료의 가치를 직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나물처럼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도 다양한 메뉴에 활용하며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다. 소규모 농가의 판로 확보를 어렵게 만들던 공급 물량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고 봤다. 유통업체는 특정 식재료를 일정한 물량 이상으로 공급받아 판매하지만, 식당은 여러 종류의 식재료를 조합해 음식을 만드는 만큼 개별 농가와 상대적으로 소량씩 거래하며 메뉴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녀방앗간도 지역별 생산자의 채소, 참기름, 된장 등을 공급받아 다양한 메뉴에 사용한다.

전국을 돌면서 찾은 정직한 농가

김 대표는 양질의 식재료를 생산하는 소규모 거래처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청송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하며 인연을 맺은 지역별 청년 활동가들의 도움이 컸다. 이들이 소규모 농가를 연결해줬고 김 대표는 식재료 가치를 알리고 싶다는 목표와 식당 운영 계획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지 못했던 생산자들도 새로운 판매처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단 소규모 농가라고 해서 무조건 거래를 맺는 건 아니다. ‘정직하게 양질의 식재료를 생산하는가’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지역에서 직접 재래방식으로 된장과 참기름 등을 생산하는지 확인한다. 꼼꼼히 맛보며 메뉴에 활용할 만한 품질을 갖췄는지도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생산 방식을 살펴보며 안정적인 공급 능력이 있는지도 따진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 소규모 농가와는 계약재배로 거래를 맺는다. 소녀방앗간 본사와 농가가 연간 공급 물량과 적정 가격을 사전에 정하는 방식이다. 농가는 미리 거래처와 판매 물량을 확보해 생산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고 소녀방앗간 역시 필요한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산나물밥, 제육볶음, 된장찌개, 명란비빔밥 등 소녀방앗간이 판매하는 메뉴 예시. 소녀방앗간 제공

착한 식당을 넘어 생존하는 식당으로

“착한 가게라는 이유만으로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다.” 소녀방앗간의 식당 운영 원칙이다. 소규모 농가와 상생한다는 사회적 가치만으로는 단골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생존하는 식당이 되기 위해 메뉴 개발, 상권 선정, 매출 구조 다각화에 집중했다. 우선 명란비빔밥, 제육볶음, 된장찌개 등 대중적인 한식을 중심으로 메뉴를 구성했다. 지속적인 방문을 유도하려면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 아닌 일상에서 자주 찾게 되는 메뉴를 판매해야 한다고 봤다. 실제로 제육볶음과 된장찌개 등은 창업 이후 12년간 해마다 스테디셀러에 올랐다. 매일 염도를 확인하며 저염식으로 조리하는 등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데도 주력한다. 손님이 식재료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메뉴판도 기획했다. 메뉴 옆에 식재료 생산자의 이름과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한다. 된장찌개에 사용된 재래 된장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하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손님에게 식재료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쇼룸’ 역할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매장 입지도 신중하게 선정했다. 대중적인 한식을 판매하는 점을 고려해 직장가, 대학가, 쇼핑몰, 버스터미널 등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을 중심으로 직영점을 확대했다. 방문객이 식사 메뉴를 고민할 때 평소 즐겨 먹는 한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첫 매장을 열 때는 임대료 부담도 중요하게 고려했다. 김 대표가 선택한 곳은 서울 성수동 서울숲 인근이다. 2014년 당시 성수동은 지금처럼 상권이 활성화되기 전이어서 북촌 등 다른 후보지보다 임대료가 저렴했다. 동시에 소셜벤처밸리가 형성되면서 직장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점심 장사를 공략할 수도 있었다. 이후에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 모델을 대상으로 한 임팩트 투자를 유치했고 기존 매장에서 발생한 수익을 합산해 신규 출점에 재투자했다. 창업 초반 대비 더 많은 임대료를 부담할 수 있어 동네 상권부터 대형 쇼핑몰과 버스터미널까지 다양한 입지에 매장을 선보였다. 임대료 이외에 출점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김 대표가 직접 인테리어를 기획 및 시공하기도 했다.

식당의 매출 구조를 다각화한 점도 특징이다. 매장에서는 음식에 사용하는 발효장과 전통기름 등을 별도로 판매한다. 손님이 메뉴를 통해 관심 갖게 된 식재료를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식당 인근의 기업 및 기관을 대상으로 케이터링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50명 이상의 단체 고객에게 도시락부터 뷔페까지 다양한 유형의 케이터링을 제공하며 해당 메뉴에도 지역에서 공급받은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다. 전체 매출에서 식사 메뉴 판매의 비중은 약 60%이며, 식재료 판매와 케이터링이 각각 20%를 차지한다. 소녀방앗간은 지난해까지 약 220억 원의 누적 매출액을 기록했다. 김 대표는 “트렌디한 메뉴 기반의 외식 브랜드는 창업 5년 차에 매출이 감소하는 경우가 많지만 소녀방앗간은 지속적으로 매출이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녀방앗간에 재래 된장과 재래 간장을 공급하는 경북 청송 지역 생산자의 장독대 공간. 소녀방앗간 제공

지역 생산자와의 상생 강화를 위한 가맹 사업

소녀방앗간은 소규모 농가의 판로 개척 지원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24년 5월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이 운영하는 ‘임팩트 프랜차이즈’ 사업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임팩트 프랜차이즈는 사회적 경제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프랜차이즈화해 사회 문제 해결과 수익 창출을 동시에 실현하는 사업이다. 사업 확장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도 함께 만들어지도록 설계된 점이 핵심이다.

소녀방앗간은 임팩트 프랜차이즈 사업을 통해 가맹 사업에 필요한 시스템을 정비한 후 첫 가맹점 모집에 집중하고 있다. 가맹점을 늘려 소규모 농가의 판로를 확대한다는 취지다. 가맹점마다 음식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조리 과정을 표준화했다. 임의로 조리 방식을 변경할 여지를 줄이기 위해 본사 제조시설에서 소스와 반찬을 생산해 공급한다. 메뉴별 조리 순서와 재료별 계량 기준도 매뉴얼로 정리했다. 가맹점의 매뉴얼 준수를 돕기 위한 관리 체계도 마련 중이다. 개점 전에는 직영점에서 조리 및 매장 운영 교육을 진행하고, 본사 담당자가 정기적으로 가맹점을 방문해 음식의 맛과 위생 상태를 점검할 계획이다. 단기간에 가맹점 수를 늘리기보단 성공 사례를 하나씩 쌓으며 단계적으로 가맹 사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김민영 소녀방앗간 대표는 “사회적 기업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뿐 아니라, 그 가치를 꾸준히 실현하기 위한 생존책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맹점이 늘어날수록 소규모 농가의 안정적인 판로도 함께 확대되는 사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이한규 기자 hanq@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