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별이 빛나는 밤’, 실제 새벽하늘 풍경 담았나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2026. 11. 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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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치는 검푸른 하늘, 빛무리를 두른 별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화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환상의 풍경처럼 보인다.

그중에서도 '별이 빛나는 밤'에 담긴 하늘을 두고는 오랫동안 해석이 엇갈렸다.

1984년 미술사학자 앨버트 보임은 그림 속 별무리를 양자리로 보고, 고흐가 6월 19일 새벽하늘을 그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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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림의 사이언스 랩] 국내 연구팀 분석 결과 1889년 7월 22일 프랑스 생레미 새벽하늘과 부합
고흐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의 별 배열을 분석한 방법(아래)을 ‘별이 빛나는 밤’(위)에 적용한 결과 그림 속 별 5개가 실제 히아데스 별무리 배열과 높은 유사성을 보였다.
소용돌이치는 검푸른 하늘, 빛무리를 두른 별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화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환상의 풍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림에 실제 새벽하늘 모습이 담겨 있다면 어떨까. 국내 연구진이 천문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그림 속 천체 배치는 1889년 7월 22일 무렵 프랑스 생레미에서 본 새벽하늘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그림 속 하늘의 실체와 작품 제작 시기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V자형 별무리, 히아데스 성단으로 해석

고흐의 그림은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눈독 들여온 연구 대상이다. 별 배치부터 소용돌이 무늬에 담긴 물리적 특성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가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별이 빛나는 밤'에 담긴 하늘을 두고는 오랫동안 해석이 엇갈렸다. 이 작품은 고흐가 생레미의 요양원에 머물던 1889년 6월 중순에 그린 것으로 알려져왔다.

1984년 미술사학자 앨버트 보임은 그림 속 별무리를 양자리로 보고, 고흐가 6월 19일 새벽하늘을 그렸다고 주장했다. 반면 1986년 천문학자 찰스 휘트니는 인근 지역의 기상 기록을 근거로 이 날짜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그림 속 하늘이 특정 순간의 풍경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여러 날 밤에 본 하늘을 엮어 구성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희대 우주과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정현 에스엘랩 대표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그림 속 달과 금성, 별무리의 배치를 다시 살폈다. 오른쪽 위에는 가느다란 달이 떠 있고, 사이프러스 나무 곁에는 금성이 밝게 빛난다. 중앙에는 별들이 V자 형태로 배열돼 있다. 보임이 지목한 6월 19일 새벽하늘이라면 달이 절반 이상 차 있어야 하지만, 그림에는 가느다란 그믐달이 그려져 있다. 연구진은 V자형 별무리도 양자리가 아닌, 황소자리의 히아데스 성단으로 해석했다. 히아데스는 여러 별이 모인 성단으로, 지구에서 보면 V자 모양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진은 프랑스 현지 지형과 고흐의 풍경 드로잉을 대조해 그림에 담긴 시야 범위를 추정했다. 이어 천문 시뮬레이션으로 1889년 6~7월 생레미의 새벽하늘을 재현한 결과, 7월 22일 동트기 전 동쪽 하늘에서 그믐달과 금성 사이에 히아데스 성단이 놓이는 모습이 그림에 가장 잘 들어맞았다.

별 배열의 유사성도 수학적으로 검증했다. 그림 속 별 5개와 실제 히아데스 성단의 별들을 점으로 표시한 뒤 크기와 방향, 위치를 맞춰 차이를 계산했다. 비교 기준으로는 고흐의 다른 작품인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과 '밤의 카페 테라스'에 나타난 별 배열을 활용했다. 두 작품에서 별 위치를 얼마나 정확하게 옮겼는지 확인한 뒤 '별이 빛나는 밤'을 분석한 결과, 히아데스 성단과 높은 유사성이 나타났다.

다만 그림 속 천체 배치가 특정 날짜의 하늘과 일치한다고 해서 제작 시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 반 고흐 미술관은 고흐가 7월 2일 이미 이 작품을 본뜬 드로잉을 테오에게 보냈다는 점 등을 근거로 6월 제작설을 유지하고 있다. 또 연구진이 추정한 시야로는 그림 속 언덕과 절벽을 함께 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연구진은 고흐가 6월에 시작한 그림을 7월 22일 이후까지 수정했거나, 여러 날 관찰한 하늘을 한 화면에 담아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네의 석양, 뭉크의 붉은 하늘도 추적 대상

고흐의 작품 외에도 과학적 분석을 통해 실제 자연현상의 흔적을 찾아낸 사례가 있다. 대표적 작품이 클로드 모네의 '에트르타의 절벽, 석양'이다. 거대한 바위 절벽 곁으로 붉은 해가 저무는 이 그림이 어느 날의 석양을 담은 것인지가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2014년 천문학자들은 절벽 형태와 태양 위치를 바탕으로 모네가 그림 속 석양을 바라본 장소 및 시각을 추적했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서 그림과 일치하는 관찰 지점을 찾아내고, 천문 시뮬레이션으로 태양의 높이와 방향을 계산했다. 여기에 당시 기상 기록과 조수 기록, 모네의 편지까지 맞춰본 끝에 1883년 2월 5일 오후 4시 53분 무렵의 석양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림 속 자연현상의 정체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과학적 해석이 맞서기도 한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가 그런 사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인물 뒤로 붉은 하늘이 불길처럼 굽이치고 있다. 뭉크는 실제로 하늘이 피처럼 붉게 변하는 광경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그가 목격한 현상은 무엇이었을까. 2004년에는 붉은 하늘의 원인으로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을 지목하는 가설이 제기됐다. 대기 중으로 퍼진 화산 분출물이 유럽의 석양을 붉게 물들였고, 뭉크가 약 10년 전 기억을 되살려 그렸을 수 있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2017년에는 붉은 하늘이 화산 폭발이 아니라 '진주구름'에서 비롯됐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진주구름은 겨울철 고위도 지역의 약 15~25㎞ 상공에 있는 성층권에서 형성되며, 해가 진 뒤에도 햇빛을 받아 영롱한 빛깔로 물든다. 2018년에는 그림 속 하늘과 실제 진주구름, 화산성 석양의 색채 및 물결 모양을 비교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분석 결과, 화산성 석양보다 진주구름이 뭉크가 그린 붉은 하늘과 더 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명화 속 자연현상을 추적하는 과학 연구는 작품의 탄생 과정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예술적 상상력과 실제 자연현상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도널드 올슨 미국 텍사스주립대 천문학자는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에서 "과학적 분석이 그림의 신비로움을 훼손하지는 않는다"며 "그림이 주는 감동은 그대로이고, 우리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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