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향한 혐오와 싸우는 건 사명 아닌 나를 지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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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놈과 싸우니 백 번 붙어 한 번 이길까 말까 하죠. 하지만 그 한 번을 위해서 백 번을 싸워야만 합니다. 포기하면 지는 거니까요."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그는 "진정한 사죄의 본질은 오직 '재발 방지' 한 가지에 있다"고 잘라 말했다.
"사람을 때려놓고 '미안하다'고 한 뒤 또 때리거나, 다른 사람을 때린다면 그건 사죄가 아닙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이해하고, 그것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사죄예요. 일본은 그런 의미에서 사죄하지 않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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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 방지 없는 사과는 가짜…한국, '인권 대국'으로 세계의 롤모델 돼야"
한국 개봉 다큐 '호루몽' 주인공…악의적 日방송 이후 법정 투쟁 등 다뤄

(도쿄=연합뉴스) 이도연 특파원 = "강한 놈과 싸우니 백 번 붙어 한 번 이길까 말까 하죠. 하지만 그 한 번을 위해서 백 번을 싸워야만 합니다. 포기하면 지는 거니까요."
최근 도쿄 신주쿠에서 마주한 재일동포(자이니치) 3세 인권운동가 신숙옥(67) 씨의 목소리에는 인터뷰 내내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수십 년간 일본 우익 세력의 집요한 공격과 살해 협박을 견뎌낸 그의 어조는 단단했고, 특유의 설득력과 꺾이지 않는 의지가 말끝마다 묻어났다.
11일 한국에서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호루몽'은 신 씨의 치열한 투쟁과 삶을 담아낸 작품이다.
일본어로 '버리는 것'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호루몬'(내장)을 뜻하는 영화 제목처럼, 일본 사회에서 2등 시민으로 내몰린 재일동포의 애환과 끈질긴 생명력을 동시에 관통한다.
영화의 핵심 축을 이루는 것은 2017년 일본 기업 DHC의 자회사가 제작하고 도쿄MX가 방영한 시사 프로그램 '뉴스 죠시'와의 법정 투쟁이다. 당시 방송은 신 씨가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시위대의 배후에 있다는 악의적인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방송 직후 신 씨의 일상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일본 온라인 공간에서 비난과 공격이 쏟아졌고, 이는 현실의 폭력으로 이어졌다.
"집 앞에 정체불명의 차들이 진을 치고 카메라로 집 안을 찍어댔어요. 한밤중에 초인종을 눌러대고, 성적인 모욕이 담긴 괴상한 물건들이 배달됐죠. 대중목욕탕에 가면 알몸인 상태로 위안부 모욕 발언을 듣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노인에게 입에 담지 못할 성적 폭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여자라서 몇 배나 더 당하는 거예요."
![영화 '호루몽'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1/03/yonhap/20261103070126337ctyb.jpg)
인생에서 가장 혹독했던 7년간의 법정 싸움을 버텨내고 결국 DHC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배상금으로는 이례적인 고액인 550만 엔(약 4천700만원) 배상 판결과 사죄문 게시를 받아냈다.
그는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죽기 직전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법정에서는 이겼지만 괴롭힘은 현재진행형이다. 신 씨는 상징적인 표적이 된다는 것은 스토커가 평생 따라붙는 것과 같다고 했다.
"조선인을 공격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들에게 괴롭힘은 일종의 자위행위거든요. 거기서 내가 좌절하거나 굴복하면 그들에게는 힘을 확인하는 작업이 되는 겁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공격이 괴롭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연히 괴롭지요"라고 즉답하면서도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분명 제 전생은 백인 남자였을 거예요. '끔찍한 짓을 잔뜩 저질러서 지금 조선인 여자로 태어난 거겠지'라고 생각해요(웃음)."
평생을 차별에 맞서 싸워온 원동력에 대해, 그는 '사명'이라는 단어를 단호히 거부했다.
대신 "나 자신이 소중하니까, 그 소중한 나의 존재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했던 행동 중 하나"라며 "목이 마르니까 물을 마시는 것과 똑같이 삶 속에 정치가 있고 싸움이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무언가가 바뀌지 않더라도, 바뀌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해야만 하는 거죠. 만약 내가 져버리면 다음 사람은 더 힘들게 싸워야 하잖아요. 어딘가에서는 버텨내야만 하고, 그건 사명이 아니라 '어른의 일'이지요."
![재일동포 인권운동가 신숙옥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1/03/yonhap/20261103070126481xbli.jpg)
그는 승소 이후에도 일본 사회의 배제 논리는 끝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재일동포를 향했던 혐오가 이제는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일본 토론 방송에서 우익 논객들을 향해 "사죄는 상대방이 '아 사죄했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무리 '사과했다, 잘못했다'고 말해도 통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던 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기본적으로 끔찍한 짓을 저지른 나라는 '우리는 끔찍한 짓을 하지 않았다'라고 우기는 것으로밖에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무언가를 주장하면 '그거 돈이 목적이지?' 같은 식으로밖에 받아치지 못하는 거예요."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그는 "진정한 사죄의 본질은 오직 '재발 방지' 한 가지에 있다"고 잘라 말했다.
"사람을 때려놓고 '미안하다'고 한 뒤 또 때리거나, 다른 사람을 때린다면 그건 사죄가 아닙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이해하고, 그것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사죄예요. 일본은 그런 의미에서 사죄하지 않은 겁니다."
한국 사회를 향해서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국어로 "자랑스럽다"고 여러 차례 되뇌었다.
"일본은 계속 굳어서 멈춰 있는데, 한국이라는 사회는 '실험과 학습'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어요. 한국이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세계의 롤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한일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 역시 한국의 경제적 도약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경제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서게 될 때 모든 것이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한국을 얕봤기 때문에 스스로 바뀔 필요가 없었지만, 한국이 경제 대국을 넘어 '인권 대국'으로 나아간다면 일본도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젊은 세대에게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싸움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위 현장에 직접 나가지 못하더라도 가족이나 학교에서 누군가 혐오 발언을 할 때 '나는 그건 너무 심한 짓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것. 그렇게 전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어요."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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