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콘크리트 도심에 최적화인데 냄새난다고 다 베어버릴 건가···잘려 나간 은행나무의 절규

하주언 기자 2026. 11. 3. 06: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심 수종 중 탄소저장량 최다
미세먼지 저감 능력 탁월한데도
보도 확장·가로수 정비 이유로
서울시, 3년간 1879그루 제거
“새 나무 심어도 대체 안돼”
충북 괴산군 문광저수지를 찾은 시민들이 지난달 22일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나무 길을 거닐며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고 있다. 김정근 기자

최근 3년간 서울시에서 보행환경 개선과 안전 등을 이유로 제거된 은행나무가 1800여그루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기간 새로 심은 수목을 고려해도 400그루 이상이 순감소했다. 기후위기 대응 관점에서 은행나무를 보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이 2일 입수한 ‘서울시 25개 자치구 은행나무 제거·식재 현황’을 보면, 최근 3년간(2024년~올해 9월) 제거된 은행나무는 1879그루다. 같은 기간 새로 심은 은행나무는 1398그루로, 제거량에서 식재량을 뺀 순감소량은 481그루다.

연도별로는 2024년 613그루를 제거하고 565그루를 심었다. 지난해에는 648그루를 베고 405그루를 심었다. 올해는 9월까지 618그루를 자르고 428그루를 들였다. 올해 수치는 잠정 집계로 연말까지 제거량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제거 사유를 보면 보도 확장과 가로수 정비가 전체의 약 82%를 차지했다. 최근 3년간 보도 확장을 이유로 제거된 은행나무는 982그루, 가로수 정비로 제거된 나무는 551그루다. 보도 확장 과정에서 잘려 나간 은행나무는 도로 폭을 줄이고 보행 공간을 넓히는 과정에서 이식 생육이 불가능하다고 판정된 경우다. 가로수 정비는 안전진단 등을 거쳐 속이 비거나 썩어 쓰러질 위험이 큰 나무를 베어내는 사업이다.

은행나무는 서울의 대표적인 가로수로 병해충에 강하고 미세먼지 저감 능력이 뛰어나다.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을 보면, 지난해 기준 서울시 전체 가로수 28만5573그루 중 은행나무는 9만9398그루(약 35%)로 가장 많았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 4월 은행나무를 미세먼지 저감 기능이 뛰어난 대표 가로수라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한국방재학회지>(2022) 연구에서도 은행나무는 전체 가로수 중 탄소 저장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종영 나무의사가 지난 5월2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앞에서 열린 은행나무 독살 주범 환기미술관 규탄 기자회견에서 은행나무의 상태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그러나 은행나무는 가을철 열매 악취 탓에 민원이나 제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서울환경연합에 따르면 지난 3월 영등포구에서는 은행나무 암나무 26그루가 열매가 열리지 않는 수나무로 교체되는 작업이 추진됐다. 2024년 성북구에서는 암나무 221그루를 수나무로 교체하려다 주민 반발에 중단했다.

시민들은 동네의 풍경인 은행나무를 쉽게 없애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혜민씨(27)는 “지난해 동네 은행나무가 제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더 나은 방법은 없었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성북구에 사는 최모씨(29)도 “악취가 문제라면 열매를 미리 수거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도심 생태계 관점에서 은행나무를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전문위원은 “은행나무는 한여름 그늘을 드리우고 탄소를 흡수하는 수목”이라며 “나무를 베어낸 뒤 새 나무를 심는다고 해도 한자리에서 수십 년을 살아낸 은행나무의 생태적 기능을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최 위원은 이어 “열매 수집망 설치 등으로 악취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만큼 제거가 능사는 아니다”고 했다.

시는 안전진단조사와 검토를 거쳐 은행나무를 제거해왔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단순 민원만으로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병원의 진단 등 충분한 검토를 거치고 있다”며 “위험목을 정비한 빈 땅에 가로수 메워심기를 추진해 가로수 감소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공원 바닥에 지난달 31일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들이 짓밟혀 으깨져 있다. 하주언 기자

하주언 기자 e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