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뭐예요?" 젊은 세대 노린 문화전쟁인가... '암살자(들)'이어 '닥터X' 공격 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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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정치권의 전례 없는 압박이 잇따르고 있다. 영화 '암살자(들)'이 육영수 여사 피격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역사 왜곡' 비난에 휩싸인 데 이어,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의학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닥터X)는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가 등장하면서 "정치적"이라고 공격받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보수 진영이 민주화 역사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 낮은 젊은 세대로 외연을 확장하려 현대사 콘텐츠를 도구화하고 있다"며 "민간인 학살 사건인 5·18을 정치 쟁점화하고 겁박하는 건 역사적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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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피해자 다룬 '닥터X'는 방영 중단 청원
"보수 진영, 외연 확장 위해 콘텐츠 도구화"
"언론의 '논란' 표현도 극우 담론 확장시켜"

최근 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정치권의 전례 없는 압박이 잇따르고 있다. 영화 ‘암살자(들)’이 육영수 여사 피격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역사 왜곡’ 비난에 휩싸인 데 이어,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의학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닥터X)는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가 등장하면서 “정치적”이라고 공격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역사적 사실과 평가에 대한 세대 간 공통 인식이 약화된 현실과 그 틈을 세력 확장 기회로 여기는 정치적 계산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했다. 아울러 이런 소모적 갈등이 자칫 창작의 자유와 사회 통합에 악영향을 주는 '문화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우려했다.
정쟁 도구가 된 드라마·영화

지난달 2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닥터X’의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이 접수됐다. 이 드라마 6화에서 주인공인 의사 계수정(김지원)이 5·18 당시 헬기 사격으로 형을 잃고 머리에 파편이 박힌 채 46년간 살아온 피해자를 만나 수술을 권하는 내용이 방영된 직후였다. 청원자는 "(5·18 등장이) 특정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 위한 끼워 맞추기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드라마와 영화가 진영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가세했다.
‘암살자(들)’ 역시 올해 9월 개봉 직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역사 왜곡을 주장하며 제작진에 대한 국정감사 출석, 해외 영화제 개막작 상영 취소, 국내 상영 금지 및 수익 환수 등을 요구해 파장이 지속됐다.
출연 배우에 대한 공격도 지속되고 있다. 보수 단체 회원들은 지난달 ‘암살자(들)’ 주연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고, ‘닥터X’ 주연 배우 김지원은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다.
"미시담론화한 정쟁이 문화전쟁 유발"

현대사 소재 영화·드라마에 대한 지금의 정치적 공격은 유례없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다. ‘암살자(들)’이 다룬 육 여사 피격 의혹은 이미 지상파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수차례 다뤄졌고, ‘닥터X’가 다룬 5·18 역시 드라마 ‘모래시계’(1995)와 ‘오월의 청춘’(2021), 영화 ‘택시운전사’(2017) 등의 핵심 소재였으나 정치권에서 크게 문제 삼은 적은 없다.
이런 작품 비평의 변화는 ‘정치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정쟁이 거시 담론으로 이데올로기 투쟁의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미시담론, 일상의 문화적 담론으로 싸운다”며 “특히 보수 진영은 계속되는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문화전쟁을 벌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를 매개로 한 정치권 전쟁의 서막”이라는 게 윤 교수의 진단이다.
참혹한 역사의 기억과 교훈이 다음 세대에 전해지지 못한 ‘세대 망각’ 현상을 노린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보수 진영이 민주화 역사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 낮은 젊은 세대로 외연을 확장하려 현대사 콘텐츠를 도구화하고 있다”며 “민간인 학살 사건인 5·18을 정치 쟁점화하고 겁박하는 건 역사적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시민사회도 우려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29일 성명서를 내고 “국민의힘은 표심 확보와 지지층 결집, 정치적 적대감 강화, 언론의 주목 유도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예술 창작의 자유뿐 아니라 국민의 문화 향유권까지 정쟁 도구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도 지난달 30일 발표한 성명에서 ‘암살자(들)’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은 “공적 권한과 집단적 압박이 결합된 형태로 되살아난 블랙리스트에 다름 아니다”라고 규탄했다.

언론의 '논란' 표현, 시장 왜곡행위 경계해야
언론의 보도 방식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5·18은 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로 법적·역사적 평가가 확정된 사안임에도 '논란'이라는 표현으로 보수 진영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 결과적으로 극우 담론을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극우의 억지 주장을 언론이 '논란'이라 정의하고 담론의 공간을 내어주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무분별한 '문화의 정치화'는 문화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거란 우려가 크다. 김헌식 평론가는 “작품에 대한 의견은 개진할 수 있지만 방영·상영 중단 등 시장을 왜곡시키는 행동과 창작자를 위축시키는 행위는 경계해야 한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현대사를 다룬 작품의 질적 도약이 어렵고, 결국 관련 콘텐츠는 (국내 정치에서 자유로운) 넷플릭스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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