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은 기다림의 학문이다[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2026. 11. 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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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가타현 나가오카기술과학대에 초빙교수로 와 있다. 나를 초청한 이시바시 다카유키 교수는 30년 전 일본 쓰쿠바대 연구원으로 있을 때 내가 지도하던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이시바시 교수는 공부를 계속하려는 학생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는데, 학생들은 급여가 적은 연구원이나 교수의 길에 들어서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2026년 노벨 화학상은 소아이 겐소 일본 도쿄이과대 명예교수(76)와 앙리 카강 프랑스 파리쉬드대 명예교수(96)가 공동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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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일본 니가타현 나가오카기술과학대에 초빙교수로 와 있다. 나를 초청한 이시바시 다카유키 교수는 30년 전 일본 쓰쿠바대 연구원으로 있을 때 내가 지도하던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와 함께 시료를 만들던 때가 생각난다. 새벽에 실험을 시작하면 다음 날 동이 틀 무렵에야 끝이 났다. 과정이 한 치라도 어긋나면 실패했다. 한번 실패하면 다음 실험 순서까지 몇 주를 기다려야 했다. 3년 동안 성공한 것은 딱 두 번이었다. 그 시료를 가지고 몇 개월 동안 밤을 새워 가며 측정했다. 다행히 그 측정 결과로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이곳 연구실에는 20명 정도의 석박사과정 학생이 있다. 학생들은 자기 책상에서 도시락을 먹고, 엎드려 잠도 자고, 가끔은 떠들기도 하지만, 서로 방해하지 않으면서 각자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학생들은 석박사과정을 마치면 모두 취직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시바시 교수는 공부를 계속하려는 학생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는데, 학생들은 급여가 적은 연구원이나 교수의 길에 들어서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경향은 일본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기초과학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쏟아도 성과를 장담할 수 없는 분야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연구를 수십 년 동안 이어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2026년 노벨 화학상은 소아이 겐소 일본 도쿄이과대 명예교수(76)와 앙리 카강 프랑스 파리쉬드대 명예교수(96)가 공동 수상했다. 이들의 연구는 왜 생명체를 이루는 분자들이 왼손과 오른손처럼 대칭적인 두 형태 중 유독 한쪽을 선택했을까 하는 질문과 관련돼 있다. 노벨 물리학상은 프랜시스 할젠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교수(82)에게 돌아갔다. 그는 남극의 얼음을 이용해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관측하는 방법을 개척했다.

연구 대상과 접근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두 연구 모두 오랜 시간 미지의 세계를 탐구해 온 결과다.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어디에 도달할 수 있을지, 그 끝에서 무엇을 얻게 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소아이 교수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구를 산에 오르는 일에 비유했다. 보통 연구는 목표로 하는 산이 보이지만, 자신의 연구는 산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어둠 속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걸어가는 것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무엇을 발견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실험을 계속하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나면 그 이유를 끝까지 탐구하는 것, 그것이 기초과학의 본질이라고 했다.

나가오카에는 유명한 사케 양조장이 있다. 학교를 마치고 가끔 이시바시 교수와 시내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이런 우정의 시간이 좋다. 30년 전에는 우리가 이렇게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고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가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삶의 폭과 깊이를 더해 간다. 기초과학 역시 그런 오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는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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