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만 년 전 이쑤시개, 10세기 뼈 자루… 80억 인류 입을 지키는 칫솔[강인욱의 세상만사의 기원]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2026. 11. 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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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는 걸러도 양치는 거르지 못한다. 180만 년 전 이쑤시개의 흔적부터 실크로드와 요나라에서 등장한 뼈 칫솔, 현대의 나일론 칫솔까지 그 기원을 살펴보자.

영국에서는 18세기 말 칫솔의 대량생산이 시작됐고, 1938년 동물 털을 대신한 나일론 모가 상용화되면서 칫솔은 전 세계로 널리 퍼지게 됐다.

사소해 보이는 칫솔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해 온 대표적인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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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 발달과 함께한 칫솔
몽골 친톨고이 성터에서 출토된 뼈 칫솔. 오늘날과 형태가 비슷한 최초 칫솔 중 하나다. 사진 출처 니콜라이 크라딘 러시아 극동대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세수는 걸러도 양치는 거르지 못한다. 점심 직후에는 공용화장실 세면대 앞에 칫솔을 문 직장인들이 줄을 선다. 이런 한국의 풍경은 K드라마를 통해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다. 필자 역시 발굴 현장에서 며칠 씻지 못하는 것은 견뎌도 이를 닦지 못하는 것은 참기 어렵다. 물 한 모금이 아쉬운 사막이나 며칠씩 대륙을 횡단하는 시베리아 열차에서도 칫솔은 배낭 속 필수품이다. 매일 입에 무는 이 작은 도구는 언제 생겼을까. 180만 년 전 이쑤시개의 흔적부터 실크로드와 요나라에서 등장한 뼈 칫솔, 현대의 나일론 칫솔까지 그 기원을 살펴보자.

180만 년 전 이쑤시개의 흔적

이를 닦는 습관은 칫솔보다 훨씬 오래됐다.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나온 약 180만 년 전 초기 인류의 치아 옆면에는 가는 홈이 나란히 파여 있다. 연구자들은 뾰족한 막대기로 이 사이를 쑤시던 흔적으로 본다. 인류가 도구를 써서 질긴 고기를 먹는 과정에서 이쑤시개 같은 도구도 등장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도 다르지 않았다. 약 4만9000년 전 스페인 엘 시드론 동굴의 네안데르탈인 치석에서는 침엽수 나뭇조각의 흔적이 나왔고, 치아에도 무언가를 문질러 생긴 홈이 있었다. 같은 동굴에서 발견된 다른 남성의 턱뼈에는 고름집이 생길 만큼 치통을 앓은 흔적이 남았다. 그의 치석에서는 진통 성분인 살리실산을 품은 포플러의 유전자(DNA)도 나왔다. 나뭇조각으로 이 사이를 청소하고 아픈 이를 달래려고 나무껍질을 씹었을 가능성이 크다. 입안을 돌보는 일은 인간의 진화와 함께한 셈이다.

‘문명의 상징’ 된 구강 청결

19세기 일본 여성이 나뭇가지 끝을 잘게 쪼개 만든 칫솔 ‘후사요지’로 이를 닦는 모습. 사진 출처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문명이 발달하면서 이쑤시개는 화려한 장식과 함께 신분을 드러내는 장신구가 됐다. 기원전 26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의 우르 왕묘에서는 금으로 만든 화장도구가 나왔다. 여기에는 족집게와 귀이개용 숟가락, 뾰족한 꼬챙이가 들어 있었다. 허리에 차고 다니며 이 사이와 귀를 다듬던 휴대용 화장세트다. 나일강부터 아라비아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살바도라 나무의 뿌리와 가지를 씹어 솔처럼 풀어 쓰는 ‘미스왁’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기원전 1500년 무렵 이집트 의학 파피루스에도 흔들리는 이를 다스리는 처방이 등장한다.

동아시아에서도 치아 건강에 관심이 깊었다. 상나라 갑골문에도 무정왕이 치통의 원인을 묻는 장면이 있다. 서진시대 문인 육운은 삼국지의 영웅 조조가 쓰던 화장도구에 대해 기록했는데, 여기에도 이쑤시개가 등장한다.

종교 의식도 치아 위생도구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 7세기 당나라 승려 의정은 인도 승려들이 아침마다 나뭇가지를 씹어 이를 닦고 혀를 긁은 뒤 예불을 올린다고 적었다. 무함마드는 이슬람 신자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면 기도할 때마다 미스왁을 쓰라고 명했을 것’이라 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의식을 외우고 신의 뜻에 닿는 경전을 외우는 첫 번째 몸가짐이 깨끗한 입이었다.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끈 표트르 1세도 소년들을 위한 예절지침서에서 “이빨은 칼로 쑤시지 말고 이쑤시개를 쓰되, 한 손으로 입을 가려라”라고 했다. 구강 청결은 문명의 상징이었다.

우리가 아는 형태 뼈 칫솔의 등장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칫솔은 10세기 무렵 실크로드와 중국 북방에서 처음 등장한다. 필자가 2015년 카자흐스탄에서 본 카스테크 성터의 칫솔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칫솔 중 하나다. 카자흐스탄 동남부 실크로드 고갯길 아래 9∼10세기 집터에서 나왔다.

길이 22.5cm의 뼈 자루 끝에 털을 심는 구멍 열 개를 두 줄로 파고, 양 끝에는 털 다발을 실로 묶는 구멍도 냈다. 세게 닦아도 털이 빠지지 않도록 공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발굴자 누르자노프는 이 칫솔의 등장을 이슬람과 연결시켰다. 이슬람인들은 예배 전후 입안을 정결히 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이용해 솔질을 하는데, 이 지역은 이를 발전시켜 더욱 정교한 뼈 칫솔로 바꿨다고 본다.

비슷한 시기 요나라에서도 뼈 칫솔이 쓰였다. 중국 내몽골 치펑에서 발굴된 959년 요나라 부마의 무덤에서는 뼈 칫솔 두 쌍이 나왔다. 당나라 때부터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솔이 있었지만, 이 무덤의 칫솔은 숟가락과 젓가락, 밥그릇 등 식사 도구와 함께 발견됐다. 화장을 위한 솔뿐 아니라 식사 뒤 입을 닦던 도구로 칫솔을 사용했다는 증거다.

요나라는 924년 태조 아보기가 몽골 초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원정한 뒤 위구르와 서역을 잇는 초원길을 열었다. 수도 상경에는 위구르 상인들이 모여 사는 거리까지 있었다. 이렇게 실크로드와 광범위한 교역이 있었으니 어느 한쪽이 기원이라기보다 여러 유물이 오가면서 치아를 닦는 문화도 함께 발달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무슬림의 정결 의식과 모래가 서걱거리는 초원의 환경도 칫솔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초기 뼈 칫솔은 발해가 멸망한 뒤 그 유민이 세운 몽골 초원의 친톨고이 성터에서도 출토됐다.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에서도 뼈 칫솔이 발견됐다. 유목제국의 발달과 함께 칫솔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고려 양지에서 현 양치질까지

1936년 치약 광고 속 양치질. 사진 출처 뉴스 아카이브
한반도에서 칫솔이 문헌에 본격 등장하는 것은 고려시대다. 1103년 송나라 사신단을 따라 개경에 온 손목은 ‘계림유사’에 “이 닦는 솔을 ‘양지(養支)’라 한다”고 적었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양지하다’ ‘양지질’이 등장한다. 오늘날 양치질의 어원이다. 다만 고려의 칫솔은 실물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조선 초 중국어 교재 ‘박통사’에는 솔장수에게 칫솔 값을 묻는 예문이 나온다. 당시의 교역품 중 하나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물 털로 만든 칫솔의 한계도 적지 않았다. 자칫하면 뻣뻣한 털이 치아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상하지 않게 하는 부드러운 털은 구하기 어려웠다. 값도 비쌌다. 원나라 말 시인 곽옥은 선물 받은 칫솔이 ‘금 한 냥’ 값이라며 기뻐할 정도였다.

칫솔은 오랫동안 일부 계층의 물건이었고, 많은 이들은 손가락에 소금이나 약가루를 묻혀 이를 닦았다. 칫솔이 산업제품으로 바뀐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영국에서는 18세기 말 칫솔의 대량생산이 시작됐고, 1938년 동물 털을 대신한 나일론 모가 상용화되면서 칫솔은 전 세계로 널리 퍼지게 됐다. 오늘날과 같은 나일론 칫솔의 역사는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았다.

80억 인류의 하루를 여는 칫솔

1938년 첫 시판 나일론 칫솔인 듀폰의 ‘웨스트 박사의 기적의 솔(Dr. West’s Miracle Tuft Toothbrush)’ 광고. 사진 출처 Weco
20세기에 들어 칫솔이 빠르게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도시화와 식단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고(古)인골의 치석을 분석하면 농경의 시작과 산업혁명 시기 입안 세균의 구성이 크게 바뀐 흔적이 나타난다. 거친 고기와 곡물 위주의 식단이 정제된 밀가루와 설탕 중심으로 바뀌면서 충치균이 번성하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다. 또 도시화와 함께 사람들 사이의 접촉이 급격히 늘며 칫솔은 빠르게 80억 인류의 필수품이 됐다.

입은 사람이 세상과 만나는 첫 문이다. 우리는 입으로 먹고 말하며, 기도하고 경전을 읽는다. 한 사람의 인생과 생활을 보여주는 흔적도 입에 남는다. 형질인류학자들은 인골의 치아 사이에 낀 치석과 세균을 분석해 그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를 밝혀낸다. 가장 성스러운 종교 생활, 일상의 식사,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유도 모두 입을 통해 이뤄진다. 입을 정결하게 만드는 칫솔질이 우리의 생활과 문화의 밑바닥에 놓인 이유다.

재택근무와 화상회의로 사람들이 다시 흩어지고, 입 냄새를 탓하지 않는 인공지능(AI)과 일하는 시대가 됐다. 그래도 칫솔은 세면대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먹고 말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180만 년 전 이 사이를 쑤시던 인류의 조상부터 점심 뒤 세면대 앞에 줄 선 직장인까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입을 돌봐 왔다. 사소해 보이는 칫솔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해 온 대표적인 물건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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