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만 년 전 이쑤시개, 10세기 뼈 자루… 80억 인류 입을 지키는 칫솔[강인욱의 세상만사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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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는 걸러도 양치는 거르지 못한다. 180만 년 전 이쑤시개의 흔적부터 실크로드와 요나라에서 등장한 뼈 칫솔, 현대의 나일론 칫솔까지 그 기원을 살펴보자.
영국에서는 18세기 말 칫솔의 대량생산이 시작됐고, 1938년 동물 털을 대신한 나일론 모가 상용화되면서 칫솔은 전 세계로 널리 퍼지게 됐다.
사소해 보이는 칫솔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해 온 대표적인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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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만 년 전 이쑤시개의 흔적
이를 닦는 습관은 칫솔보다 훨씬 오래됐다.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나온 약 180만 년 전 초기 인류의 치아 옆면에는 가는 홈이 나란히 파여 있다. 연구자들은 뾰족한 막대기로 이 사이를 쑤시던 흔적으로 본다. 인류가 도구를 써서 질긴 고기를 먹는 과정에서 이쑤시개 같은 도구도 등장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도 다르지 않았다. 약 4만9000년 전 스페인 엘 시드론 동굴의 네안데르탈인 치석에서는 침엽수 나뭇조각의 흔적이 나왔고, 치아에도 무언가를 문질러 생긴 홈이 있었다. 같은 동굴에서 발견된 다른 남성의 턱뼈에는 고름집이 생길 만큼 치통을 앓은 흔적이 남았다. 그의 치석에서는 진통 성분인 살리실산을 품은 포플러의 유전자(DNA)도 나왔다. 나뭇조각으로 이 사이를 청소하고 아픈 이를 달래려고 나무껍질을 씹었을 가능성이 크다. 입안을 돌보는 일은 인간의 진화와 함께한 셈이다.

동아시아에서도 치아 건강에 관심이 깊었다. 상나라 갑골문에도 무정왕이 치통의 원인을 묻는 장면이 있다. 서진시대 문인 육운은 삼국지의 영웅 조조가 쓰던 화장도구에 대해 기록했는데, 여기에도 이쑤시개가 등장한다.
종교 의식도 치아 위생도구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 7세기 당나라 승려 의정은 인도 승려들이 아침마다 나뭇가지를 씹어 이를 닦고 혀를 긁은 뒤 예불을 올린다고 적었다. 무함마드는 이슬람 신자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면 기도할 때마다 미스왁을 쓰라고 명했을 것’이라 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의식을 외우고 신의 뜻에 닿는 경전을 외우는 첫 번째 몸가짐이 깨끗한 입이었다.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끈 표트르 1세도 소년들을 위한 예절지침서에서 “이빨은 칼로 쑤시지 말고 이쑤시개를 쓰되, 한 손으로 입을 가려라”라고 했다. 구강 청결은 문명의 상징이었다.
우리가 아는 형태 뼈 칫솔의 등장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칫솔은 10세기 무렵 실크로드와 중국 북방에서 처음 등장한다. 필자가 2015년 카자흐스탄에서 본 카스테크 성터의 칫솔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칫솔 중 하나다. 카자흐스탄 동남부 실크로드 고갯길 아래 9∼10세기 집터에서 나왔다.
길이 22.5cm의 뼈 자루 끝에 털을 심는 구멍 열 개를 두 줄로 파고, 양 끝에는 털 다발을 실로 묶는 구멍도 냈다. 세게 닦아도 털이 빠지지 않도록 공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발굴자 누르자노프는 이 칫솔의 등장을 이슬람과 연결시켰다. 이슬람인들은 예배 전후 입안을 정결히 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이용해 솔질을 하는데, 이 지역은 이를 발전시켜 더욱 정교한 뼈 칫솔로 바꿨다고 본다.
비슷한 시기 요나라에서도 뼈 칫솔이 쓰였다. 중국 내몽골 치펑에서 발굴된 959년 요나라 부마의 무덤에서는 뼈 칫솔 두 쌍이 나왔다. 당나라 때부터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솔이 있었지만, 이 무덤의 칫솔은 숟가락과 젓가락, 밥그릇 등 식사 도구와 함께 발견됐다. 화장을 위한 솔뿐 아니라 식사 뒤 입을 닦던 도구로 칫솔을 사용했다는 증거다.
요나라는 924년 태조 아보기가 몽골 초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원정한 뒤 위구르와 서역을 잇는 초원길을 열었다. 수도 상경에는 위구르 상인들이 모여 사는 거리까지 있었다. 이렇게 실크로드와 광범위한 교역이 있었으니 어느 한쪽이 기원이라기보다 여러 유물이 오가면서 치아를 닦는 문화도 함께 발달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무슬림의 정결 의식과 모래가 서걱거리는 초원의 환경도 칫솔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초기 뼈 칫솔은 발해가 멸망한 뒤 그 유민이 세운 몽골 초원의 친톨고이 성터에서도 출토됐다.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에서도 뼈 칫솔이 발견됐다. 유목제국의 발달과 함께 칫솔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조선 초 중국어 교재 ‘박통사’에는 솔장수에게 칫솔 값을 묻는 예문이 나온다. 당시의 교역품 중 하나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물 털로 만든 칫솔의 한계도 적지 않았다. 자칫하면 뻣뻣한 털이 치아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상하지 않게 하는 부드러운 털은 구하기 어려웠다. 값도 비쌌다. 원나라 말 시인 곽옥은 선물 받은 칫솔이 ‘금 한 냥’ 값이라며 기뻐할 정도였다.
칫솔은 오랫동안 일부 계층의 물건이었고, 많은 이들은 손가락에 소금이나 약가루를 묻혀 이를 닦았다. 칫솔이 산업제품으로 바뀐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영국에서는 18세기 말 칫솔의 대량생산이 시작됐고, 1938년 동물 털을 대신한 나일론 모가 상용화되면서 칫솔은 전 세계로 널리 퍼지게 됐다. 오늘날과 같은 나일론 칫솔의 역사는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았다.

입은 사람이 세상과 만나는 첫 문이다. 우리는 입으로 먹고 말하며, 기도하고 경전을 읽는다. 한 사람의 인생과 생활을 보여주는 흔적도 입에 남는다. 형질인류학자들은 인골의 치아 사이에 낀 치석과 세균을 분석해 그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를 밝혀낸다. 가장 성스러운 종교 생활, 일상의 식사,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유도 모두 입을 통해 이뤄진다. 입을 정결하게 만드는 칫솔질이 우리의 생활과 문화의 밑바닥에 놓인 이유다.
재택근무와 화상회의로 사람들이 다시 흩어지고, 입 냄새를 탓하지 않는 인공지능(AI)과 일하는 시대가 됐다. 그래도 칫솔은 세면대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먹고 말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180만 년 전 이 사이를 쑤시던 인류의 조상부터 점심 뒤 세면대 앞에 줄 선 직장인까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입을 돌봐 왔다. 사소해 보이는 칫솔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해 온 대표적인 물건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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