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절반 바쳤는데"…유럽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모델 붕괴

권영미 기자 2026. 11. 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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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수십년간 지탱해 온 연금제도가 무너지면서 공포와 분노가 퍼지고 있다. 유럽인들은 노후를 위해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과 사회보장비로 기꺼이 국가에 냈는데 고령화·저출생으로 인구 구성에 제도가 위협받으며 세대 간 사회적 약속이 깨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간 유럽인들은 60대에 은퇴해 국가가 보장하는 안락한 연금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확고히 믿고 있었다.

미국 근로자들이 오랫동안 기본적인 사회보장연금 외에 개인 은퇴 포트폴리오를 직접 운용해 노후를 대비하는 것과 달리, 서유럽 국가들은 평생 소득을 국가가 보장하는 '부과방식(Pay-as-you-go, 현 근로자가 은퇴자의 연금을 즉시 부담하는 방식)'을 고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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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저출생에 연금 유지 재정부담 눈덩이…세대 갈등 번져
일부 국가, 연금 삭감 단행…佛, 개혁안 유예로 문제 더 커져
고물가에 항의하고 학생·청년층의 교육여건 개선 요구에 연대하는 프랑스 노란 조끼 등의 2차 집회가 열린 24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도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하는 가운데 일부 참가자들이 정류장 지붕 위에 올라가 있다. 2026.10.25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유럽이 수십년간 지탱해 온 연금제도가 무너지면서 공포와 분노가 퍼지고 있다. 유럽인들은 노후를 위해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과 사회보장비로 기꺼이 국가에 냈는데 고령화·저출생으로 인구 구성에 제도가 위협받으며 세대 간 사회적 약속이 깨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간 유럽인들은 60대에 은퇴해 국가가 보장하는 안락한 연금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확고히 믿고 있었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 적자와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유럽 전역을 지탱하던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제도가 흔들리면서, 대륙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분노의 골이 가장 깊은 곳은 프랑스다. 세금 기반의 연금을 통해 62세 은퇴를 누려왔던 프랑스 국민들은 막대한 빚더미에 앉은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자 격렬한 시위에 나섰다. 젊은 세대가 노년층을 부양하는 묵시적 '세대 간 계약'마저 깨질 위기다.

미국 근로자들이 오랫동안 기본적인 사회보장연금 외에 개인 은퇴 포트폴리오를 직접 운용해 노후를 대비하는 것과 달리, 서유럽 국가들은 평생 소득을 국가가 보장하는 '부과방식(Pay-as-you-go, 현 근로자가 은퇴자의 연금을 즉시 부담하는 방식)'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80대에 접어들면서 연금을 지불할 청년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졌고,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이 연금 충당에 낭비되고 있다. 이는 국가 부채와 이자 비용을 폭등시켜 국방, 인프라, 교육에 대한 투자를 심각하게 잠식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부 예산의 약 3분의 1(33%), 경찰 등을 관할하는 내무부 예산의 30%가 퇴직 공무원 연금 지급에만 소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당시 2조 2000억 유로에서 올해 3조 6000억 유로(약 5400조 원)까지 치솟았다. 프랑스 국채 10년물 금리는 유럽 내 재정 위기국이었던 이탈리아 수준까지 상승했으며, 금융시장과 유럽연합(EU)의 전방위적 지출 감축 압박에 직면해 있다.

미국 워싱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EE)의 제이컵 커케가드 선임연구원은 "프랑스가 연금 시스템의 적자 폭을 줄이지 않고서는 필요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롤랑 레스퀴르 프랑스 재무장관 역시 WSJ 등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62~64세인 법정 은퇴 연령 상향이 수학적으로 피할 수 없는 수순임을 인정했다. 그는 "인구통계학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유일한 과학"이라면서 "오늘날 아기를 낳지 않는데, 20년 뒤의 생산가능인구를 늘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개혁을 주저한 대가는 가혹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2023년 정년을 64세로 올리는 법안을 강행 처리하려 하자 유혈 시위와 전국 교통마비가 이어졌고, 결국 개혁안은 유예됐다.

반면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은 연금 삭감을 단행했다. 해결하지 못한 프랑스 재정 문제는 올해 청년층 시위로 다시 터졌다. 이들은 정부가 연금을 메우느라 교육 예산을 깎아 학교에 쥐가 들끓고 교사가 부족한 데다가, 정작 자신들은 연금을 받지도 못할 것이라는 깊은 박탈감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 연금 모델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처럼 전적으로 근로자가 납부하는 연금 보험료가 곧바로 은퇴자에게 지급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덴마크·네덜란드·스웨덴의 '혼합형 모델'이다. 국가 연금과 글로벌 투자 펀드를 결합해 국내총생산(GDP)의 100~200%에 달하는 연금 자산을 굴린다. 커케가드 연구원은 이 모델은 "높은 수령액과 국가 부를 늘리는 모험 자본을 형성한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덴마크처럼 정년을 기대수명과 연동해 2070년께 은퇴 연령이 74세까지 올라가는 장기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셋째, 독일·영국의 '절충형 모델'이다. 독일은 67세로 정년을 늘리고 수령액 인상을 억제하는 공식을 도입했음에도, 적자를 메우기 위해 연간 예산의 5분의 1에 달하는 1100억 유로 이상을 매년 국고에서 쏟아붓고 있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근로자 조세로 연금을 충당할 수 있는 여력인 '연금 공간(Pension space)'에서 미국과 영국은 40%를 넘겼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0% 미만으로 떨어졌으며 2030년에는 '0'에 도달할 전망이다. 0이 된다는 것은 근로자를 쥐어짜 사회보장 기여금을 마련할 수 있는 돈이 더 이상 없다는 의미다. 이 상태에서 세금을 올리면 '어차피 일해봤자 세금과 연금으로 다 뜯긴다'고 생각해 근로의욕과 고용이 줄어들어 세수까지 줄어들게 된다.

모델 전환도 쉽지 않다. 프랑스가 기여금을 투자 펀드로 돌리면 당장 현재 은퇴자에게 줄 현금이 고갈되어 이미 GDP의 117%가 넘는 부채를 짊어진 상태에서 막대한 추가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 평생 복지를 약속했던 서유럽의 거대한 연금 사회계약이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며 대륙 전체가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ky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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